조진수의 항공우주강국 만들기

국내 항공우주산업 기술 관련 ‘상賞’은 여전히 업적을 포괄 평가하며 연공서열로 시상하는 게 많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현재 우리 기술 수준과 능력을 정확히 분석해서 국가적 기술 달성 목표를 설정하고, 상으로 경쟁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최근 유명 저널리스트 빌 브라이슨이 쓴 「여름, 1927, 미국-꿈과 황금시대」가 회자되고 있다. 이 책은 ‘찰스 린드버그’라는 영웅의 탄생이 ‘미국을 바꾼 1927년 여름’의 첫 사건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1927년 5월 8일 파리 공항을 이륙한 단발엔진의 프랑스제 복엽기 ‘흰 새(L’Oiseau Blanc)’는 다음날 뉴욕공항에 나타나지 않았다. 2명의 파일럿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사건 발생 2주 후인 5월 20일 아침, 뉴욕의 루스벨트 공항을 이륙한 ‘세인트루이스의 정신(Spirit of Saint Louis)’호는 33시간 32분 동안 5815㎞를 날아 다음날 저녁 파리의 ‘르 부르제’ 공항에 안착했다. 세계 최초의 무착륙 대서양 횡단 기록을 수립한 것이다.

▲ 세계의 항공기 발달사를 보면, 달성목표를 명확히 명시한 ‘상賞’이 항속거리, 속도, 제작과 조종기술 향상을 가속시켰다. [사진=뉴시스]
이 역사적 사건은 당시 25세의 찰스 린드버그를 미육군 항공대 소속 우편 배달기 조종사에서 일약 국민적 영웅으로 만들었다. 동시에 미국의 항공산업 발달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다. 하지만 이 위업의 달성에 뒷이야기가 있음을 아는 이는 거의 없다. 1919년 프랑스 태생의 뉴욕 호텔 갑부인 ‘레이몬드 오테그’가 2만5000달러(현재 100만 달러ㆍ10억원 상당)의 상금을 내건 게 대서양 횡단의 원동력이었던 거다. 당시 린드버그는 유명해지거나 미국을 바꾸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대서양을 횡단한 게 아니었다. ‘상금’이 더 절실했을 것이다.

세계의 항공기 발달사를 보면 달성 목표를 명확히 명시한 ‘상賞’이 항속거리, 속도, 제작과 조종기술 향상을 이끌었다. 특히 미국은 정부ㆍ기업ㆍ개인 차원에서 수많은 상을 내걸었다. 1926년과 1927년 2년 사이 다니엘 구겐하임은 홀로 250만 달러(현재 1억 달러 상당)가 넘는 현찰을 항공관련 재단설립과 상금으로 희사했다. 일본의 아사히 신문사도 1931년에 마치 진주만 공격 가능성을 타진이라도 하듯, 세계 최초의 태평양 횡단 비행에 당시로선 거금인 10만엔(2만5000 달러)을 내걸었다.

세계 최초로 동력 비행을 성공시킨 윌버 라이트는 1908년 무정지 최장 비행기록을 내세우며 프랑스의 미슐랭 컵을 획득했다. 1996년에는 미국의 피터 디아만디스 박사가 만든 X재단이 인류 최초의 상업 우주여행에 1000만 달러(100억원)의 상금을 내걸었고, 2004년 9월 버트 루탄이 설계한 스페이스십 원이 100.95㎞를 1시간30분 비행하며 첫 상금을 거머쥐었다. 이를 통해 민간우주여행의 시대에 한층 가까워졌다.

기술 경쟁은 룰을 정하고 경쟁하는 스포츠와는 비교할 수 없는 지옥 게임이다. 논문이나 특허의 개수보다는 내용이 중요하다. 어떤 기술이든 개발 목표에 가장 빠르고 쉽게 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첫째다. 선진국의 경우 국가는 물론 개인까지 나서서 세계적인 업적을 이끌어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1억9000만㎞ 떨어진 화성에 무인 탐사선을 보내 기술 전쟁을 할 수 있는 것은 명확한 과학기술 개발목표를 설정하고, 관련 과학 기술인들에게 인센티브를 부여한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우리나라의 ‘상’도 종류와 상금이 많이 늘었지만 대부분 업적을 포괄 평가하는 데 그친다. 연공서열로 시상되는 것도 문제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현재 우리 기술 수준과 능력을 정확히 분석해서 국가적 기술 달성 목표를 설정하고, 상으로 경쟁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

다행히 국내에도 항공우주연구원이 주최하는 ‘인간동력 항공기’ 대회, 경상남도가 주최하는 ‘신비차 대회’가 열리고 있다. 또한 산업통상자원부가 주최하고 한국항공우주산업진흥협회와 한국항공우주학회가 주관해 2002년부터 시작한 ‘한국 로봇 항공기 경연대회’는 미션(대회규정)이 정확히 명기된 경연대회로 우리나라 민간 무인항공기(UAV) 기술발달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과연 올해는 누가 이 ‘상’들을 타서 한국의 ‘린드버그’가 될까.
조진수 한양대 교수 jscho@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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