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올드보이’ 최길선 현대중공업 신임회장

▲ 최길선(오른쪽 두번째) 현대중공업 전 사장이 조선ㆍ해양ㆍ플랜트 부문 총괄회장에 선임됐다. [사진=뉴시스]
최길선 전 현대중공업 사장이 회장으로 컴백했다. 실적 악화의 늪에 빠진 현대중공업을 구하기 위해서다. 그는 과거 현대중공업의 성장을 이끈 조선 전문가이자 경영인으로 꼽힌다. 때문에 그에게 거는 기대도 크다. 하지만 과제도 많다. 실적악화의 원인인 해양ㆍ플랜트 부문의 설계능력을 키우는 것도 단시간 내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조선경기침체도 좋지 않은 변수다.

영업손실 1조1037억원. 현대중공업의 올 2분기 실적이다. 창사 이래 최대 적자 규모다. 글로벌 1위 조선업체엔 충격 그 자체였다. 지난해 4분기 870억원 수준이던 현대중공업의 영업손실은 올 1분기 1889억원으로 늘었다. 2분기에는 1조원 이상으로 불어났다. 현대중공업은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회사는 포트폴리오 재편과 적자공사 수주 금지, 원가 절감 등 3대 원칙을 내걸고 수익성 위주의 영업활동에 전념하겠다고 밝혔다. 동시에 현대중공업 창업 주역이자 사장을 두 차례 지낸 최길선 전 사장을 구원투수로 불러들였다. 현대중공업은 8월 12일 최길선 전 사장을 조선ㆍ해양ㆍ플랜트 부문 총괄회장으로 선임했다.

최 신임회장은 공식적인 취임식 없이 12일부터 현대중공업 울산 본사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올 2분기 조선ㆍ해양ㆍ플랜트 3개 부문에서 대규모 영업손실을 기록한 것에 따른 비상경영 체제의 일환”이라며 “현대중공업의 생산 부문을 다시 살릴 수 있는 전문가를 영입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 신임회장은 국내 조선업의 성장을 이끈 조선 전문가로 꼽힌다. 약 40년을 조선업에 종사했고, 한국 조선산업을 세계 1위로 끌어올리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1972년 현대중공업에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이후 12년 만에 임원으로 임명됐다. 1997년 현대삼호중공업(옛 한라중공업) 사장, 2001년 현대중공업 사장, 2004년 현대미포조선 사장을 지냈고, 2005년 12월 현대중공업 사장으로 재임명돼 2009년 11월까지 일했다. 이후에는 관동대 등에서 학생을 가르쳤고, 한국플랜트산업협회장으로도 재직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주어진 일에 항상 최선을 다한다는 철칙을 갖고 있는 최길선 신임회장은 매일 594만㎡(약 180만평)에 달하는 작업현장을 둘러보는 현장경영인으로 통한다”며 그의 성과에 대해 설명했다. “최 신임회장은 과거 현대중공업의 외형성장뿐만 아니라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경쟁국인 일본은 물론 우리나라를 추격해오는 중국과의 격차를 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LNG선 건조, 세계 최초의 선박 육상건조 방식 도입, 세계 최대 초대형 컨테이너선 기록 갱신, 세계 최초의 T자형 도크 완공 등 수없이 많은 ‘세계 최초, 최대’의 기록이 그와 함께 이뤄졌다.”

최 신임회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조선경기가 급락하며 신규 수주에 어려움을 겪자 “경영위기 상황이 끝날 때까지 임금을 한 푼도 받지 않겠다”며 ‘무보수 경영’을 선언했다. 이후 2009년 11월 사임할 때까지 급여를 받지 않았다. 퇴진 과정에서 보여준 그의 행동도 화제가 됐다. 최 신임회장은 당시 송재병 현대미포조선 사장과 함께 “회사가 젊어지고 역동적으로 변해야 한다”며 동반사퇴를 선언했다. 그는 “금융위기로 인한 조선경기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선 후배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며 자진해서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다.

세계 1위 조선업체 적자만 ‘1조원’

최 신임회장의 뒤를 이어 회사 경영에 나선 인물이 이재성 현대중공업 회장이다. 이 회장은 최 신임회장보다 3년 후배로 재무, 경영관리 전문가로 통한다. 그래서 현재의 조선ㆍ해양ㆍ플랜트 부문의 실적 개선을 위해선 현장에 강한 조선 전문가인 최 신임회장이 적임자라는 것이다. 물론 이 회장은 대표이사직을 유지하며 회사 경영 전반을 총괄한다. 현대중공업은 올 2분기 조선 부문에서 55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현대중공업이 2000억원, 계열사인 현대미포조선이 2500억원, 현대삼호중공업이 1000억원의 적자를 냈다. 저가 수주 물량을 털어내지 못한 것이 손실 폭을 키운 것으로 보인다.

▲ 현대중공업이 건조한 경비함. [사진=현대중공업 제공]
양종서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박건조 가격이 하락했고 중국업체와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저가 수주가 계속해서 이뤄졌다”며 “2014년 현재 선박가격은 2009년에 비해 40~50% 하락했기 때문에 실적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글로벌 조선 시황 분석기관 클락슨에 따르면 올 2분기 신조선가 지수(선박건조 단가지수)는 140포인트를 기록했다. 2008년 2분기 186포인트에서 2009년 2분기 152포인트에 비하면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이는 최 신임회장에게 주어진 첫번째 과제인 조선부문 실적 개선을 가로막는 요인이기도 하다. 최 신임회장은 적자공사 수주를 줄이기 위해 현행 견적 심의위원회의 기능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원가 절감을 위해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중복 조직을 통합ㆍ폐지하는 등 다양한 수익성 위주의 영업활동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업황이 살아나지 않는 한 그의 역할엔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현재 조선업계는 국내 조선 3사와 중국업체가 치열하게 수주 경쟁을 펼치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해양플랜트 설계 기술력 가져야

현대중공업 실적 악화의 또 다른 원인인 해양ㆍ플랜트 부문 개선도 최 신임회장이 해결해야 할 과제다. 현대중공업은 올 2분기 해양과 플랜트 부문에서 각각 3740억원, 236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설계 변경에 따른 비용 증가가 주요 원인이었다. 현대중공업은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이탈리아, 노르웨이, 사우디 등에서 수주한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설계 변경, 공정지연 등으로 약 5000억원 규모의 손실충당금을 올 2분기 실적에 반영했다고 밝혔다.

 
사실 해양ㆍ플랜트 분야에서 이뤄지는 계약 변경은 현대중공업뿐만 아니라 국내 조선업계가 풀어야할 문제다. 이 사업은 조선과는 달리 건조 과정에서 설계가 추가 변경되는 부분이 발생한다. 하지만 수주를 하면서 이 비용을 원가에 포함하지 않아 공사가 끝난 뒤 수억 달러가량의 손실을 입는다.

안충승 한국해양대(해양공학) 교수는 “해양플랜트는 건조하면서 설계 변경으로 예상치 못한 비용이 추가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며 “설계 변경은 기술력이 높은 해외 엔지니어링업체가 하는데 추가 비용은 현대중공업이 모두 떠안는다”고 말했다. 또한 “이는 현대중공업만이 아니라 국내 조선업체 모두 같은 상황이다”며 “설계 기술력을 높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용선 더스쿠프 기자 brav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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