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자본 카지노 경계경보

▲ 카지노산업은 많은 경제적 효과를 창출하지만 사회적인 문제가 따라 온다는 단점이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어릴 때부터 귀 따갑게 들은 말이 있다. “도박에 빠지면 패가망신이니라.” 하지만 이 경고는 먹히지 않을 때가 많다. 도박의 유혹은 그만큼 치명적이다. 이런 도박이 우리 실생활에 파고든다. 정부가 도박산업 육성에 힘을 쏟고 있어서다. 말이 카지노 게임이지 도박과 다를 게 없다. 우리 정부, 카지노의 치명적 유혹에 홀려 ‘나라 빗장’을 너무 쉽게 풀어준 건 아닐까.

 “한국의 마이스 비즈니스(기업회의ㆍ포상관광ㆍ컨벤션ㆍ이벤트ㆍ박람전시회 등을 융합한 복합산업) 개발을 위해 우리는 한국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할 준비가 돼 있다. 마이스 산업을 통한 경제효과는 클 것이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큰손’ 셸던 아델슨 샌즈그룹 회장이 2012년 마카오에 복합리조트 ‘샌즈 코타이 센트럴’을 개장하면서 내뱉은 말이다. 투자 지역으로는 인천과 서울을 지목했다.

그로부터 2년이 흐른 지금, 정부는 복합리조트산업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8월 12일에는 ‘유망 서비스산업 육성을 위한 투자활성화 대책’을 통해 복합리조트 개발을 위한 복안도 내놨다. 기획재정부는 “싱가포르ㆍ마카오 등 아시아 각국이 경쟁적으로 글로벌 복합리조트를 개발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세계수준의 복합리조트 설립이 부진하다”며 “추진 중인 복합리조트 프로젝트별 애로사항을 원스톱으로 해소해 글로벌 수준의 복합리조트를 조성할 것”이라 밝혔다.

여기서 말하는 복합리조트는 사실상 카지노산업을 의미한다. 현재 정부가 추진을 허용한 영종도 복합리조트는 리포&시저스(미단시티), 파라다이스시티(국제업무단지 IBC-II), 드림아일랜드(준설토 매립지) 3곳이다. 이 중 2곳(리포&시저스ㆍ파라다이스시티)이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포함하고 있다. 드림아일랜드 계획에는 아직 카지노가 포함돼 있지 않지만 향후 추진 과정에서 카지노를 포함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서울 지역 내에서도 외국인 전용 카지노 투자 얘기가 나오고 있다. 노후화된 잠실 종합운동장을 비롯해 본사가 전남 나주로 이전하면서 매물로 나온 한국전력 부지, 용산역세권 부지 등이 강력한 후보지로 떠오르고 있다.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해 7월 발의한 ‘크루즈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도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이 법안은 크루즈선 내에서 외국인 전용 카지노사업을 허가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사행성 조장을 우려한 야권의 반대로 국회에 계류 중이다. 말하자면 세계 카지노 업계 큰손이 투자 얘기를 꺼내자 기다렸다는 듯 정부가 적극적으로 발판을 만들어주는 모양새다.

‘카지노 붐’은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세계적인 추세다. 특히 아시아가 그 중심이다. 전문가들은 경제성장으로 지갑이 두둑해진 중국인들이 세계관광시장의 고객으로 등장하자 인근 국가들이 이들을 잡기 위해 카지노산업 육성을 외치고 있다고 분석한다. 중국인들이 도박을 워낙 좋아해서다.

아시아에 부는 카지노 바람

파친코가 대부분이던 일본은 아베 총리의 지원 아래 카지노 합법화 법안 통과를 앞두고 있다. 법안이 통과하면 미국의 부동산 재벌 러시게이밍사와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기업 샌드그룹이 각각 오사카와 도쿄에 카지노를 포함하는 복합리조트를 건설할 계획이다. 카지노 설립이 현실화되면 일본이 마카오 다음으로 큰 카지노산업 왕국이 될 거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 일본은 2020 도쿄하계올림픽에 맞춰 오픈카지노를 합법화하려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대만도 지난해 말 중국과 인접한 군사기지인 마츠섬에 카지노를 설립해 2019년부터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계획을 내놨다. 사회주의국가인 베트남은 최근 카지노에 내국인 출입을 못하게 했던 기존 방침을 바꿨다. 경제적 능력이 있으면 내국인 출입도 허용하도록 한 거다. 특히 카지노업 진출요건인 경력을 10년에서 5년으로 대폭 완화하고, 자본금 기준도 낮췄다. 회교윤리국을 자처해온 싱가포르까지 시민단체와 종교단체의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고 2005년 오픈카지노(내국인 출입 허용)를 유치했다.

아시아 각국이 카지노 유치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하나다. 돈이 되기 때문이다. 2002년 사스로 주춤하던 싱가포르가 카지노를 유치한 후 관광객을 다시 끌어 모으고 있다는 사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2008년 1000만명 수준이던 싱가포르의 외국인 관광객은 2011년 1320만명으로 늘었다. 우리 정부가 카지노 유치에 나선 것도 같은 이유다. 벌써부터 영종도 복합리조트 투자효과도 나오고 있다. 인천발전연구원은 영종도에 카지노를 포함한 복합리조트(유니버설엔터테인먼트의 영종하늘도시 투자 포함시)가 들어설 경우 생산유발효과가 2016~2030년 최소 6조8000억원에서 최대 12조8000억원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현재 진행 중인 리포&시저스(2조2000억원), 파라다이스시티(1조9000억원), 드림아일랜드(2조원)의 직접 투자 금액만 해도 총 6조1000억원이다. 연구원은 직접 고용 근로자수가 2만9000~5만5000명에 이르고, 간접 고용까지 포함하면 4만2000~8만명의 고용창출효과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언론에서는 영종도를 중심으로 한 부동산 개발 호재 기사가 줄을 잇고 있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늘 그렇듯 밝은 빛이 있으면 어두운 그림자가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침체된 경기를 활성화하는 대책이 도박산업의 육성밖에 없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변정우 경희대(호텔경영학) 교수는 “이탈리아ㆍ프랑스ㆍ스위스가 카지노를 도입하고 있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경제논리에 카지노의 부정적인 면들이 묻히고 있는 게 현실이고, 선진국들조차 도박산업의 폐해를 없애지 못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카지노산업이 인기를 끄는 것은 경제의 규모화, 고용창출이라는 경제논리가 더 크게 작용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얘기다.

서천범 한국레저산업연구소 소장은 “카지노산업은 마약과 같다”며 이렇게 지적했다.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카지노처럼 더 빠르고 유용한 도구를 찾아보기 힘들다. 더구나 그 효과는 이미 각국의 사례를 통해 증명된 바 있다. 하지만 카지노는 각종 사회문제들을 수반하기 때문에 경제를 살리는 데 좋을 수는 있어도 그로 인한 폐해 또한 감당해야 한다.” 2006년 현대경제연구원이 작성한 ‘카지노 자본주의의 폐해’ 보고서는 “사행산업은 단기적으로는 경제에 도움을 주지만 중장기적으로 보면 결국 득보다 실이 많다”며 “원칙적으로는 정부가 사행산업을 없애려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카지노산업과 같은 도박산업이 가져올 부정적인 면은 ‘경제적 효과’라는 말로 다 덮어버릴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카지노는 독약 바른 사탕

카지노가 돈세탁 창구 역할을 한다는 것도 문제다. 미국 의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마카오는 중국의 돈세탁 통로로 이용되고 있다. 중국 관광객들이 정킷(junket)이라는 카지노 이용객 알선업체를 통해 법에 허용된 자금보다 더 많은 돈을 갖고 카지노에 들어와 홍콩 달러나 현지 자산으로 교체하는 수법으로 돈세탁을 한다는 거다. 카지노업계 관계자는 “카지노 천국이라 불리는 마카오 역시 심각한 사회문제를 겪고 있다”며 말을 이었다. “마카오는 일상생활 속에 카지노가 녹아 있어 카지노에 대한 거부감이 적다. 돈을 따겠다는 것보다는 게임을 즐긴다는 인식이 강해 도박중독 문제도 심각하지 않다. 다만 국민 모두가 도박산업 하나만 바라보고 살기 때문에 다양한 산업이 발달할 수 없고, 성장잠재력을 높일 수 있는 인적자원을 육성하기 어렵다.” 카지노산업이 창출하는 다양한 고용효과와 경제효과 덕분에 젊은이들이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거다. 

 
더 큰 문제는 영종도를 중심으로 유치되는 카지노가 지금은 외국인 전용이지만 얼마든지 오픈카지노(내국인도 출입)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는 거다. 그 근거로 전문가들은 강원랜드의 내국인 카지노 독점권이 2025년이면 끝난다는 점을 들고 있다. 향후 정부가 취할 수 있는 방침은 강원랜드에 독점권을 다시 허용하든지 외국인 전용 카지노로 전환해 해외 자본과 경쟁하도록 하든지다.

그런데 강원랜드는 지리적인 여건도 자본력도 영종도에 들어설 해외 카지노업체들과 경쟁이 되지 않는다. 독점권을 유지한다면 해외 카지노업체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결국 정부는 강원랜드를 폐쇄하든지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오픈카지노로 전환하든지 선택기로에 설 수밖에 없다.

오픈카지노 전환 가능성은 또 있다. 중국 정부의 정책 때문이다. 아시아 국가들이 카지노산업을 통해 끌어들이고자 하는 외국인은 바로 중국인이다. 국내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출입하는 외국인이 과거엔 대부분 일본인 관광객(2010년 기준 41.1%)이었지만 최근엔 요우커가 거의 절반(2013년 기준 46.7%)을 차지하고 있다는 통계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오픈카지노 가능성 솔솔

그런데 카지노를 출입하는 중국인이 늘어날수록 중국의 외화유출도 늘어난다. 당연히 중국 정부가 카지노 출입을 제한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중국은 마카오 카지노에 중국인 관광객이 늘어나자 규제를 신설했다. 여권을 발급할 때 마카오 최초 방문시에는 7일간, 두번째 방문시엔 2일간만 체류할 수 있도록 한 게 대표적이다. 문제는 중국이 정부 차원에서 관광객들을 규제하면 영종도에 들어올 외국계 카지노자본의 수익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그러면 외국계 카지노자본은 요우커가 빠진 자리를 내국인으로 채우려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현재 국내의 외국인 전용 카지노 16곳의 총 매출은 강원랜드 한곳과 맞먹는다. 내국인이 카지노 수익의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익명을 요구한 카지노업계 관계자는 “영종도에 들어올 외국 자본들은 수익을 내는 게 목표”라며 “그런데 계획만큼 수익을 내지 못하면 정부에 압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은 카지노산업을 외교통상의 문제로 끌고 가면서 협상을 하려 한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외국 투자회사들이 수익이 떨어질 수 있다는 걸 과연 모르고 있겠나”며 “이미 마카오와 싱가포르에 오픈카지노를 열어서 수익을 보고 있고, 일본에도 손을 내밀고 있는 샌즈그룹의 경우 절대 외국인 전용 카지노로 만족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는 오픈카지노를 밀어붙이면서도 사회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해 규제책을 마련했다.[사진=뉴시스]
물론 ‘쉽게 오픈카지노로 바꾸진 못할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정부도 이번에 추진하는 카지노는 ‘외국인 전용’이라며 오픈카지노로의 전환가능성을 일축하고 있다. 하지만 카지노산업을 유치하는 지자체 관계자들은 조금은 다른 뉘앙스의 주장을 제기한다. 배국환 인천시 정무부시장의 말을 찬찬히 들어보자. “싱가포르나 일본도 내국인 허용 카지노를 시작하거나 검토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만 뒤처져서는 안된다. 내국인 허용의 문제는 논의와 결론을 내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일찌감치 문제제기를 하고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침체 극복 대안, 카지노밖에 없나

지금 중요한 것은 우리 정부가 카지노산업에 이미 돈을 던졌다는 거다. 특별한 변수가 터지지 않는다면 영종도엔 몇년 후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포함한 복합리조트가 들어선다. 카지노산업의 폐해를 깨닫고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카지노업계 관계자는 “카지노산업은 외국인 전용이라 하더라도 사행성 조장 등 사회문제를 수반하는 산업”이라며 “정부는 강력한 규제장치를 마련한 후 카지노산업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다른 국가들이 오픈카지노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해서 무조건 쫓아갈 게 아니다”며 “카지노를 안 받아들이고도 경제를 활성화할 방법이 있는지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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