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실손의료보험의 이상한 가입조건

▲ 현대해상이 단독실손보험에 까다로운 가입조건을 붙여 물의를 빚고 있다.[사진=지정훈 기자]
단독실손의료보험이 보험사의 얄팍한 꼼수에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까다로운 조건을 붙여 가입을 방해하고 있어서다. 특히 현대해상은 이 보험에 가입하려는 소비자에게 ‘건강검진’까지 요구한 것으로 밝혀졌다. 단독실손의료보험은 ‘특약으로 끼워 팔리는 기존 실손보험’의 단점을 메우기 위해 금융위원회 등 정부가 만든 상품이다. 하지만 금융위는 이런 보험사의 꼼수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올해 31살의 직장인 김경수(가명)씨. 그는 최근 1만원대 단독실손의료보험(상해ㆍ질병으로 인한 통원ㆍ입원ㆍ처방조제의 실제 손실비용을 단독으로 떼어내 보장하는 보험상품)에 가입하기 위해 보험설계사를 만났다. 보험사는 현대해상화재보험이었다. 그런데 보험설계사는 고개를 갸웃했다. 설계를 하려는 순간 이전에 보지 못했던 지침이 떴기 때문이다. 내용은 이랬다. ‘건강검진 서류 제출 필수.’ 뇨당ㆍ뇨단백ㆍ뇨장혈ㆍ혈당ㆍ간수치 등을 측정한 소변검사와 혈액검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거였다. 지난 7월까지 이런 지침은 없었다. 김씨에게 특별한 병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환절기성 감기에 걸렸던 걸 빼면 지금껏 살면서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없었다. 김씨는 “건강검진에서 병력이 나오면 다른 보험에 가입하는 데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설계사의 말을 듣고 암 특약이 포함된 5만원대 실손보험에 가입했다. 보험사가 요구하는 서류를 준비하는 것도 사실 귀찮았다. 특약형 실손보험은 건강검진을 따로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독실손의료보험이 보험사의 꼼수에 판로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이 보험상품은 2012년 8월 정부(금융위원회ㆍ보건복지부ㆍ금융감독원)는 ‘실손의료보험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표준형 단독실손 상품’을 병행ㆍ판매하도록 의무화한 것이다. 암ㆍ사망 등 보장성 보험상품에 특약으로 끼워 통합상품으로 판매되던 기존 실손의료보험의 단점을 메운 상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이 보험의 장점은 여러 가지다. 무엇보다 보험 선택의 폭이 넓다. 자기부담금 비율이 10%인 상품과 20%인 상품으로 나눠져 있어 자기부담금 비율이 높으면 보험료는 더 싸진다. 가계지출을 고려해 선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중복가입이 가능한데다 특약이 아예 없어 가격이 월 1만~2만원대로 싸고, 새 상품이 출시되면 갈아타기도 쉽다. 특약 포함 상품은 전체상품을 해지해야 하는 부담이 있어 ‘갈아타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갱신주기가 1년이어서 보험료가 인상되면 그 요인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통합상품은 갱신 시 보험료를 크게 올려도 소비자가 알기 어려웠다. 물론 단점도 있다. 단독실손의료보험에 가입하면 다른 특약은 별도 가입해야 한다는 거다. 이는 보험사의 손해율(보험사가 받은 보험료 대비 지급 보험금 비율)을 고려한 부분이다. 

정부기획 보험상품, 보험사 외면

하지만 보험사로선 그리 반가운 상품이 아니다. 특약에 들어간 실손보험도 손해율이 높은데, 실손만 따로 떼어냈으니 손해율이 더 높아질 가능성이 커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보험사의 실손보험 손해율은 2011년 119%를 넘어섰다. 보험료가 적으니 판매수수료도 상대적으로 적어 보험설계사로서도 득이 별로 없다.

 
당연히 단독실손의료보험의 판매실적이 좋을 리 없었다. 지난해 이 상품을 취급한 손보사의 판매실적은 13만8881건에 불과했다. 상위 5개 손보사(삼성화재ㆍ현대해상ㆍ동부화재ㆍLIGㆍ메리츠)가 지난해 1월 한달 판매한 특약형 실손의료보험 37만건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손보사들이 단독실손의료보험 상품을 적극 판매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물론 보험사가 돈도 안 되는 상품을 굳이 홍보비까지 써가며 판매할 이유는 없다. ‘정부가 팔라고 해서 울며겨자먹기로 판매한 상품일 뿐’이라며 묵혀두면 그만이다.

문제는 손보사가 단독실손의료보험의 가입조건을 까다롭게 만들어 소비자의 선택을 방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씨의 사례에 나오는 현대해상이 건강검진을 요구한 것처럼 말이다. 현대해상 관계자는 “상품의 손해율이 높으면 기존 가입자의 보험료가 오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판매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가입 조건을 까다롭게 할 수밖에 없다”며 “단독실손의료보험의 경우 손해율이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그는 “솔직히 단독형 실손의료보험은 손보사 중 우리가 가장 많이 팔았다”며 “다른 손보사들도 건강검진을 요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상위 5개 손보사 중 단독실손의료보험 가입시 건강검진을 요구한 곳은 현대해상뿐이었다. 손해율이 높은 것도 아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까지 대형 4개 손보사의 단독실손보험 누적손해율은 20~60%에 불과했다. 결국 현대해상은 단독실손의료보험의 이익이 크지 않으니 은근슬쩍 가입조건을 까다롭게 만든 것이다. 이는 단독실손의료보험을 판매하지 않겠다는 거나 다름없다.

▲ 보험사들은 그동안 각종 불완전판매 등으로 상당한 수익을 챙겨왔다.[사진=뉴시스]
익명을 요구한 보험관련 전문가는 “보험사가 손해율을 공개하지도 않으면서 무작정 손해율이 높다며 소비자의 선택권을 침해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며 이렇게 지적했다. “현재 특약형 실손의료보험 가입자만 해도 2500만명이 넘는다. 손해율이 높다고 하면서도 보험사들이 조용히 있는 이유가 뭐겠는가. 특약으로 들어있는 보험료에서 충당하고도 남는 게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고작 13만명밖에 가입하지 않은 단독형 실손의료보험이 팔린 지 겨우 1년 반이 지났을 뿐이다. 손해율 운운하는 건 타당하지 않다. 게다가 그동안 대부분의 보험사들이 각종 불완전 판매와 보험금 지급 거부, 늑장 지급, 지급 규모 축소, 보험료 폭탄 인상 등을 통해 상당한 수익을 챙겨왔다는 걸 감안하면 어느 정도의 손해율은 감수할 수도 있다고 본다.”

금융위원회 “그런 사실 몰랐다”

더 큰 문제는 감독기관인 금융위원회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거다. 금융위 보험과 관계자는 “그런 사실이 있는지 몰랐다”며 “현대해상을 포함해 다른 손보사들이 이런 조건을 달고 있는지, 또 이런 조건을 달았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지를 충분히 검토한 다음 소비자의 선택권이 침해받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국민의 기본적인 건강을 지켜줄 의무는 보험사가 아니라 정부에 있기 때문이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단순 상해나 질병에 의한 외래진료나 입원은 정부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다. 그런데 정부가 그걸 외면하고 시장에 맡기니 문제가 되는 거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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