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과점 업체 발가락까지 닮았다
독과점 업체 발가락까지 닮았다
  • 김미선 기자
  • 호수 106
  • 승인 2014.08.27 13: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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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필품 가격인상의 법칙

삶은 팍팍한데 물가는 계속 오른다. 특히 생필품 가격의 오름세가 가파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생필품을 파는 업체들은 입을 맞춘 듯 동일한 시기에 비슷한 폭으로 가격을 인상한다. 경쟁자가 별로 없는 독과점 형태의 시장일수록 심하다. 암묵적 담합 가능성이 크다. 발가락까지 쏙 빼닮은 ‘가격인상의 법칙’을 취재했다.

▲ 불경기 속 생필품 가격이 치솟고 있어 소비자들의 원성이 높아지고 있다.[사진=뉴시스]
생필품 가격이 줄줄이 인상되고 있다. 올해 들어 가격이 인상된 품목만 해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음료제품 가격인상이 그 신호탄이었다. 롯데칠성음료과 LG생활건강은 지난 2월 일부 음료제품의 출고가를 6.5% 인상했다. 6~7월에는 햄 가격이 크게 올랐다. 지난 6월 롯데푸드가 햄ㆍ소시지 제품 출고가격을 평균 9.4% 인상한 데 이어 7월에는 CJ제일제당이 캔햄 9.3%, 냉장햄 8.8% 수준으로 인상했다. 동원 F&B와 대상도 같은 기간 평균 9.6%, 8.1% 가격을 인상했다.

패스트푸드와 커피전문점도 더 이상 못참겠다는 듯 가격을 올렸다. 올 2~3월 롯데리아ㆍ맥도날드ㆍ버거킹은 버거ㆍ음료ㆍ디저트를 평균 100~300원 올렸다. 스타벅스코리아가 지난 7월 아메리카노와 카페라떼 등 일부 음료 가격을 최대 200원, 평균 2.1% 인상한 데 이어 커피빈도 8월 모든 제품의 가격을 200~500원 올렸다.

이런 가격인상 바람은 지난해부터 시작됐다. 2012년 12월부터 2013년 초, 밀가루값이 한차례 폭등하더니 우유값이 올랐다. 서울우유ㆍ매일유업ㆍ남양유업이 지난해 8월부터 9월까지 흰우유 L당 가격을 200원에서 220원 올렸다.  여기서 주목할 게 있다. 가격이 오른 품목의 상당수가 독과점 산업에 해당한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1인 사업자 시장점유율이 100분의 50 이상’이거나 ‘3인 이하의 사업자의 시장점유율의 합계가 100분의 75 이상’인 경우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추정한다.

▲ 2011년 6월 공정위는 고추장 행사 할인율 담합 혐의로 CJ제일제당과 대상에 10억여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사진=뉴시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최근 몇년간 가격을 인상한 밀가루ㆍ설탕ㆍ라면ㆍ고추장 산업 등이 독과점 산업에 해당한다.  밀가루산업을 살펴보자.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식품산업통계정보를 보면, CJ제일제당의 올 1분기 시장점유율은 61.2%, 2위인 대한제분은 25.5%다. 둘의 시장점유율을 합치면 86.7%에 달한다.

흥미롭게도 두 업체의 가격인상 시기와 인상률이 입을 맞춘 것처럼 비슷하다. 일례로 2012년 12월 CJ제일제당이 밀가루 가격을 8.8% 올리자 이듬해 1월 대한제분이 밀가루 가격을 8.6% 인상했다.  독과점 산업에 해당하는 설탕시장도 별반 다르지 않다. 업계 1위는 시장점유율 74.5%의 CJ제일제당, 2위는 17.3%의 삼양사다. 두 업체의 시장점유율은 90%가 넘는다. 2010년 12월 1위 업체 CJ제일제당이 가격을 9.7% 인상하자 이듬해 3월 삼양사와 대한제당이 9.9% 가격을 올렸다.

생필품 가격, 가파르게 상승

서비스 산업도 마찬가지다. 국내 영화관 시장은 CGVㆍ롯데시네마ㆍ메가박스 3개 업체가 장악하고 있는데, 시장점유율은 93.6%에 이른다. 이들의 영화관람료와 인상률 역시 쏙 빼닮았다.  지난 2월 CJ CGV가 일부 영화관의 관람료를 인상하자 7월 메가박스가 서울 시내 주요 4개 영화관의 주말 주요 시간대 관람료를 1000원 인상했다. 시장점유율이 높은 업체가 가격을 인상하면 2~3위 업체가 1~2개월 내 연달아 가격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들의 가격인상이 ‘담합’을 통해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다.

오지영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 팀장은 “일부 독과점 시장에선 동종업체들이 가격인상 시기•인상률•금액까지 동일하게 발표하고 있다”며 “암묵적 가격담합이 의심된다”고 밝혔다. 실제로 담합이 적발된 사례도 있다. 2012년 2월 공정거래위원회는 라면 4개 업체가 2001년부터 2008년까지 6차례에 걸쳐 가격을 담합했다며 농심(1080억원)ㆍ오뚜기(98억원)ㆍ한국야쿠르트(62억원) 3개사에 과징금 1300억원을 부과했다. 삼양식품은 담합 사실을 자진 신고해 과징금 120억원을 면제받았다.

국내 라면 시장에서 이들 4개 업체의 시장점유율은 96.8%에 달한다. 문제는 이처럼 독점산업군에서 생산되는 상품이나 서비스 가운데 생활필수품이나 자주 소비되는 제품이 많다는 거다. 소비자로선 필요한 물건인데 경쟁업체가 많지 않아 울며 겨자먹기로 구매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독과점 형태의 시장에 경쟁업체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이봉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경쟁이 치열하지만 협력을 중시하는 문화나 전통으로 담합이 발생하기 쉬운 환경”이라며 “결국은 시장구조를 개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하지만 “30~40년가량 3~4개사가 과점한 시장을 갑자기 10~20개 경쟁사가 존재하는 구조로 바꾸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재형 한국개발연구원 전문위원은 “1970년대 이후 독과점 형태의 시장구조나 유통구조 개선은 물가대책 정책수단의 단골 메뉴였다”며 “하지만 이는 단기간에 이뤄질 수 없고 우리 경제가 존속하는 한 끊임없이 개선해야 할 문제”라고 밝혔다. 독과점 문제를 바꿔도 물가인상의 부정적 요인을 제거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행정적 처분을 강화해 담합의 가능성을 원천 봉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개인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유일한 솔루션은 시장구조 개선

이봉의 교수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가격인하명령을 적극 활용하고 사후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방법이 있다”며 담합에 연루된 개인의 민형사책임을 강화도 방법”이라고 밝혔다. 이재형 위원도 “미국은 회사가 아닌 카르텔(담합) 책임자에게 모든 책임을 묻기 때문에 담합이 생기기 어려운 구조”라며 “국내에서도 개인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공정위의 감시역할을 강화하고 소비자단체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김홍석 선문대(법학) 교수는 “지금의 담합을 막으려면 공정위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며 “일례로 해당 시장의 독점적 지위의 사업자가 지배적 지위를 남용해 가격을 책정한 경우 강력한 행정적 처분과 사후 모니터링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공정위의 인원과 예산이 부족하다면 전국에 분포된 소비자 단체의 힘을 빌리는 방법도 있다”고 덧붙였다.
 
김미선 더스쿠프 기자 story@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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