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ㆍ중ㆍ러에 부는 탈석유바람

미국발 셰일가스 혁명이 본격화되면서 세계 에너지 시장의 판이 바뀌고 있다. 러시아가 적극 대응에 나서며 중국과 손을 잡았다. 여기에 한국도 동참했다. 최근 한국과 러시아가 북한을 경유하는 파이프라인 천연가스(PNG) 라인을 건설한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어서다. 구체화된다면 한ㆍ중ㆍ러의 PNG 트라이앵글이 에너지 시장을 뒤흔들 수도 있다.

▲ 세계 에너지 시장이‘탈脫석유시대’로 흘러가고 있다.[사진=뉴시스]

최근 유라시아ㆍ중앙아시아 지역 내 에너지와 관련 흥미로운 소식들이 꽤나 들려오고 있다. 가장 화두가 되고 있는 것은 크림반도를 둘러싼 러시아-우크라이나 당국 간의 세력 다툼일 것이다. 이 사건은 양국 간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유럽, 미국의 이해관계까지 겹치면서 글로벌 분쟁으로 여겨진다. 그뿐만 아니라 남중국해의 영유권 분쟁에서 미국의 중재안을 중국이 거부하는 일이 있었고, 최근 투르크메니스탄 등 중앙아시아 지역 국가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본격적인 원유ㆍ가스 개발에 서두르고 있다. 중국이 시노펙과 페트로차이나를 필두로 셰일가스 개발에 성공했다는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다. 상당히 다양하면서도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근접지역에서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얼핏 각각의 사건은 모두 별개인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사실 하나의 보이지 않는 끈에 묶여 있다. 바로 ‘탈脫석유시대’다. 지난 10여 년간 세계적으로 겪어왔던 에너지 부족 현상(특히 원유 부족현상에 따른 고유가시대)을 탈피하기 위해 각국이 신규 에너지원의 개발ㆍ확보에 주력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전통에너지원(석유ㆍ가스ㆍ석탄) 중 가스는 미국 셰일가스의 본격 개발 이후로 세계적인 화두가 되고 있다. 당연한 것이 지금까지 가장 많이 사용된 에너지원인 석유 대비 ‘저가’라는 장점을, 석탄에 비해서는 ‘청정에너지’라는 장점을 동시에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기조에 발맞춰 중국은 연초 2013년 기준 약 170bcm수준인 자국의 가스소비를 2020년까지 420bcm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공격적인 목표를 발표했다. 바야흐로 세계적인 가스 시대의 본격 개막이다.
 
이 와중에 대한민국과 관련된 소식 하나가 심심치 않게 흘러나오며 우리의 관심을 끌고 있다. 바로 한국과 러시아가 북한을 경유하는 파이프라인 천연가스(PNGㆍPipeline Natural Gas) 라인을 건설한다는 소식이다. 북한을 경유하는 파이프라인 건설을 통해 러시아의 가스를 한국이 받아오는 계약에 합의했다는 내용이다.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러시아 가스 파이프라인을 남녘까지 연장하는데 대해 로씨야(러시아)와 남조선 사이에 합의를 보고 있다”고 8월 8일에 보도했다.

앞서 4월 29에는 러시아 의회가 북한 채무 110억 달러 중 90%에 이르는 100억 달러를 탕감해주는 비준안을 통과했다. 이는 러시아가 북한과의 경협을 활성화하는 계기를 만든 뒤 에너지 소비가 많은 한국으로 파이프라인을 연결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러시아가 최근 급박하게 가스 수출 루트의 다변화를 꾀하는 이유는 우크라이나 사태와 연관성이 어느 정도 있어 보인다. 러시아는 전체 가스 수출물량의 60%가량이 유럽으로 향한다. 꽤 높은 비중이다.

PNG, 국내 에너지 판도 바뀔까

그런데 최근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 불안 사태가 벌어졌다. 러시아로서는 수출 안정성에 대한 고민이 짙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최근 유럽의 주요 화학업체인 이네오스(룩셈부르크), 보레알리스(덴마크)가 미국으로부터 셰일가스 기반의 에탄을 받아오기로 계약을 맺었다. 그동안 최대 고객이었던 유럽이 가스 수입 루트의 다변화를 추진한 것이다. 러시아로서는 유럽 이외의 고객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된 셈이다. 그렇다면 근접국가이자 에너지 수입대국인 중국과 한국을 가장 먼저 바라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실제로 러시아는 5월 21일 중국과 최소 38bcm, 최대 80bcm 규모의 PNG를 2018년까지 보내는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러시아의 2013년 연간 가스 수출물량이 211.3bcm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해당 계약이 얼마나 큰 규모인지 짐작할 수 있다.

 
한국과의 PNG 계약이 체결될 시 어느 정도 규모의 가스가 넘어올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4월 24일 매거진 ‘파이프라인 인터내셔널(Pipeline International)’은 북한을 통해 약 10bcm 규모의 가스를 보낼 것으로 알려졌다. 이 규모는 한국의 연간 가스 수입에서 20%를 차지하는 꽤 큰 물량이다. 만약 보도된 것과 같이 러시아의 PNG가 대한민국으로 도입이 된다면 획기적인 소식이 될 것이다. 한국이 PNG를 받는데 파이프가 북한을 경유하게 된다는 것은 정치적인 해석도 가능하겠지만, 무엇보다 국내 에너지 판도가 변화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부분이다. 지금까지 국내의 가스 도입은 액화과정을 거친 뒤 수송선을 통해 들어오는 액화천연가스(LNG)ㆍ액화석유가스(LPG) 형태가 대다수였다. 그런데 파이프라인이 해외로부터 연결돼 본격적으로 도입이 된다면 판이 바뀌는 것이다.

물론 PNG와 LNG는 결국 천연가스를 운반할 때 가스 상태에서 파이프로 보내느냐(PNG), 액화를 시켜 운송수단을 통해 보내느냐(LNG)의 차이만이 있을 뿐이지 성분은 천연가스로 동일하다. 그러나 그 액화와 운송수단을 거쳐야 하는 LNG에 비해 운송비 부담이 거의 없는 PNG는 수요처 입장에서 경제적이라는 장점이 있다. 한국으로서는 지금까지 중동지역 등에서 고가로 받아올 수밖에 없던 가스 수입물량의 단가를 낮출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 수입물가의 하락과 연결될 수 있는 부분이다.

조금 더 크게 그림을 그려보면 전 세계적인 에너지 가격의 하향 안정도 생각해볼 수 있다. 결국 지금과 같이 저가의 가스로 에너지 수요가 집중되다 보면 현재 가스ㆍ석탄 대비 고가인 원유의 가격은 하향 안정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특히 최근 중국이 중앙아시아로부터 PNG로 연결한 투르크메니스탄의 가스는 기존에 개발이 되지 않던 물량이고, 중국의 셰일 가스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저가의 셰일가스를 이제 막 수출하기 시작한 것 또한 거래되지 않던 물량이 새롭게 나온 것이다.

에너지 가격 안정 후 생각해야

지금까지 세상에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에너지 소스가 동시다발적으로 개발되면서 에너지의 공급증대를 형성하고 있는 만큼 과거대비 에너지 부족 문제는 수그러들 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전 세계 에너지 가격이 하향 안정될 경우 국내외 산업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생각보다 더 클 것이다. 이를 토대로 새롭게 부흥하는 산업과 사양세로 접어드는 산업도 뚜렷하게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유라시아ㆍ중앙아시아의 에너지 개발, 한국과 러시아의 PNG 라인 건설 등 에너지 이야기는 우리가 그저 관심거리 정도로 넘어갈 수 있는 이슈가 아니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손지우 SK증권 연구위원 jwshon@s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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