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세 이노디자인 대표

▲ 김영세 이노디자인 대표는 “디자인이야말로 창조 경제의 엔진”이라고 말했다.[사진=지정훈 기자]
디자인 컨설팅 회사 이노디자인이 자체 브랜드 ‘이노’에 주력하고 있다. 김영세 대표는 “이노를 통해 새로운 디자인 생태계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디자인으로 제조업체와 유통업체를 수평으로 연결하겠다는 게 그의 포부다.

“제조 혁신 바이(by) 디자인, 제조업의 혁신은 디자인을 통해 이뤄야 합니다. 새로운 제품과 기왕에 없던 물건을 디자인의 힘으로 만들어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야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야 팔리고요. 제조의 혁신이란 곧 디자인의 혁신이에요.”

‘디자인 구루’ 김영세 이노디자인 대표는 “디자인이 창출하는 혁신으로 우리나라 제조업의 사양화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미 가격 경쟁력에서 뒤지는데 과거와 같은 제품을 만들어내니 세계 시장에서 외면당하는 겁니다. 디자인으로 변화시키지 않으면 우리 제조업의 국제 경쟁력이 뿌리째 흔들릴 수밖에 없어요.” “디자인이야말로 창조 경제의 엔진”이라는 그에게서 디자인을 통한 제조업 중흥의 비전을 들어봤다.

✚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제조업에 대한 무관심이 근래에 경멸로까지 바뀌었지만 제조업 부문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제조업 혁신에 디자인이 핵심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디자인이란 과연 뭔가요?   
“디자인은 단순한 데커레이션이 아닙니다. 제품의 마무리 과정도 끝내기도 아니에요. 디자인은 고객과의 접점에 있는 인터페이스(접속장치)를 바꾸는 일이자 인터페이스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죠. 제품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혁신으로, 때로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매직입니다. 디자인이 주도하는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야말로 수렁에 빠진 우리 제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첩경이라고 할 수 있죠.”

그는 2004년 세계 최초로 목걸이형 MP3 플레이어 아이리버 N10을 선보였다. 그때까지 MP3 플레이어는 목에 거는 전자제품에 지나지 않았다. 목걸이형으로 디자인해 줄에다 이어폰줄을 넣은 이 제품은 출시 첫해 100만개 이상 팔렸다.

이 제품을 디자인했을 때 그는 이노디자인 US의 거점인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주로 활동했다. 어느 날 서울에 출장 와 스타벅스에 앉아 있었다. 지나가는 젊은 사람들 목에 걸린 MP3 플레이어가 눈에 들어왔다. 멋지게 차려입은 여성조차 검은색의 투박한 제품을 목에 걸고 있었다. 목에 거는 것이라면 아예 목걸이처럼 만들면 되겠다는 생각이 그의 머리를 스쳤다. 테이블에 냅킨을 펼쳐 놓고 스케치를 시작했다. 빌 게이츠가 “디지털 라이프 시대를 선두에서 열고 있다”고 극찬한 제품이 태동하는 순간이었다. N10은 2005년 독일 디자인연구소 노르라인 베스트팔렌 디자인센터가 주는 ‘레드 닷 어워드(Red Dot Award)’ 제품 디자인 부문 디자인상을 받았다.

 
지난 해 그가 자체 브랜드 ‘이노’를 달아 내놓은 헤드폰 이노웨이브는 헤어밴드를 연상시킨다. 이 제품은 올해 ‘2014 iF 디자인 어워드’ 프로덕트 디자인 오디오ㆍ비디오 부문 본상(Winner)을 탔다. iF 디자인 어워드는 미국의 IDEA, 독일 레드 닷과 더불어 세계 3대 디자인 공모전이다.

✚ ‘이노’라는 자체 브랜드는 어떻게 해서 내놓게 됐나요?
“이노디자인는 기본적으로 디자인 컨설팅을 하는 회사입니다. 컨설팅은 앞으로도 이노의 중요한 사업 영역입니다만 기업으로서의 지속가능성을 생각하다 보니 소비자와 직접 만나는 브랜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우리 회사의 핵심 역량은 어차피 디자인력인 만큼 제조업체들과의 협업으로 우리가 디자인한 이노스러운(innotic) 제품을 계속 출시해 국내외에서 이노의 고객을 창출하겠다는 거죠. 이노를 사랑하는 사람들, 이노의 팬을 만들어 보려는 겁니다. 이노 팬덤이라고 할까요? 유통업체와도 협업을 해야죠. 다른 측면은 요즘 국내 중소 제조업체들이 힘들어하는데 이노의 주도로 디자인 중심의 통큰 협업을 한번 해 보려는 겁니다. 이노 브랜드로 우리가 디자인한 제품을 통해 시장을 만들어내는 리스크를 스스로 안기로 한 거예요. 이니셔티브도 행사하고 투자라는 모험도 하겠다는 거죠.”

✚ 일종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이군요?
“일반적으로 OEM이 특정한 기술을 사용하는 특정 브랜드의 수직적 하청 생산이라면 우리는 이노라는 생활 브랜드를 중심으로 하는 수평적인 협업 시스템을 지향합니다. 생산자들은 우리와 동등한 협업 파트너라고 할 수 있죠. 갑을관계가 아니라 서로 역할을 분담하는 상생관계라고 할까요? 앞으로 이노 디자인에 열광하는, 아직까지는 우리 입장에서 그렇게 되기를 기대하는 팬을 위해 분야를 국한하지 않고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제품을 만들 겁니다. 이게 제가 서울포럼에서 제안한 디자인 센트릭 즉 디자인을 중심으로 하는 협업을 통한 혁신의 청사진입니다. 디자인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생태계죠. 우리 회사가 허브가 되어 제조업체는 물론 유통업체도 바퀴살로 연결할 수 있어요. 아직은 꿈 같은 이야기지만 이노 중심의 거대한 디자인 컨소시엄이 만들어지는 거죠. 디자인은 이런 일종의 융합 과정에서 접착제 구실도 할 수 있습니다.”

디자인은 융합과정의 접착제

✚ 디자인 명품을 추구하는 것 같은데 예컨대 가방처럼 특정 제품만 만들지 않더라도 명품 브랜드가 될 수 있다고 보나요?
“100년 이상 된 명품 브랜드들은 가방처럼 그 시대가 요구하는 상품을 만들어 명품 반열에 올라섰습니다. 이노는 이 시대에 맞는 디자인 철학과 제품으로 명품에 도전해야죠. 기존의 명품 브랜드가 특정 제품 중심이라면 이노는 특정 라이프사이클을 지닌 고객의 니즈와 그들이 원하는 것(wants)에 초점을 맞출 겁니다. 과거 명품보다도 명품이 되기는 더 어려워요. 산업 디자인은 기능을 특화하기 위한 기술, 실용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인체공학 등도 고려하기 때문이죠”

▲ 김영세 회장의 공공디자인 작품인 나들길은 태극과 4괘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변주한 것이다.[사진=이노디자인 제공]
✚ 이노의 브랜드 콘셉트, 브랜드에 담긴 철학은 뭔가요?
“우리는 디자인 중심 회사로서 공장이 아니라 시장이 원하는 제품을 만듭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상상력을 발휘해 알아내 거기에 맞는 상품을 내놓을 거예요.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그렇게 했듯이. 하지만 비즈니스 모델은 구글 쪽에 더 가까울 거예요. 우리는 디자인의 구글을 꿈꿉니다. 장차 사용자들이 우리 제품에 대해 반복적ㆍ지속적으로 만족감을 느낀다면 언젠가 이노 브랜드를 스스로 찾을 거예요. 우리의 팬이 되는 거죠. 이런 팬이 많아지면 이노는 명품이 되는 겁니다. 이노의 디자인은 회사 이름에 담겼듯이 혁신성을 추구합니다. 기능적으로 혁신적이고 간결하게 만들어 가격은 착하죠. 아름다운 거야 기본이고요. 다른 말로 진선미를 갖춘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진실한 기능, 착한 가격, 아름다운 형태를 갖추려 합니다.”

✚ 아직은 애플, BMW 같은 브랜드에서 연상되는 제품 이미지가 그려지지 않는데요?
“고객들이 심플하고 쌈박하다고 말해주기를 기대합니다. 이 둘을 양립시키기가 만만치 않아요. 심플하려면 뭐든 빼야 하는데 그러면서 쌈박하게 만들기가 어렵거든요.”

✚ 장차 이노 브랜드의 자동차도 나올 수 있나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생각해 봤고, 나온다면 전기자동차가 될 거예요.”

김 회장은 공공 디자인에도 관심이 많다. 지하철 이촌역에서 국립중앙박물관에 이르는 255m의 나들길, 광명시 소각장(구름터), 일산 공공 자전거 시스템(피프틴) 등이 그의 작품이다. 구름터는 100m가 넘는 소각장 굴뚝과 건물 외벽을 온통 빨갛게 칠하고 그 위에 일정한 간격으로 하얀 구름을 그려 넣었다. 품평회날 너무 파격적이라며 고개를 젓던 직원들이 지금은 가장 좋아한다. 우중충했던 소각장이 지나는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가는 주목받는 건물이 됐기 때문이다. 리모델링을 한 것도 아니고 단지 페인트만 다시 칠했을 뿐인데. 그는 “공공 디자인엔 나름대로 메시지를 담는다”고 말했다.

“태극과 4괘를 주제로 우리나라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표현한 나들길엔 한국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구름터의 빨간색은 열정, 흰 구름은 상상을 나타낸 것이죠. 피프틴은 젊음이 메시지입니다.”

화이트ㆍ블루칼라 이분법은 고정관념

지난 3월 개장한 동대문디지털플라자엔 ‘YKDM(Young Kim Design Museum)’이라는 김 회장의 개인 디자인 박물관이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제안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이곳엔 그가 1986년 실리콘밸리에 이노디자인을 설립한 이래 지금까지 만든 주요 작품과 영상자료가 모여 있다. 주말이면 아이들도 많이 찾는다. 이들 가운데서 ‘YK키즈’도 나올 것이다. 중학교 3학년 때 그가 친구 집 대학생 형 방에서 마주친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이란 잡지가 그를 산업 디자인의 세계로 이끌었듯이. 그는 “이곳을 찾는 아이들이 디자이너라는 꿈을 갖게 된다면 보람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산업디자인과 출신인 그는 디자인 전공 학사로는 1회 격이다. 대학 졸업 후 미국 유학 길에 오른 그는 로스앤젤레스 공항에 내릴 때 다짐을 했다.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가면 디자인이라는 나무를 심으리라.’

김 회장은 파워 트위터리안이다. 팔로워가 10만 명이 넘는다. 트위터는 그의 멘토링 도구이기도 하다. 8월 22일 자신의 트위터에 그는 이런 글을 올렸다.
Design is ‘making change’!(디자인이란 변화를 만드는 일이다.)
De(struct)sign(ature)(고정관념을 깨라. 그래서 디자인으로 변화를 만들라.)
그는 2012년 「퍼플 피플」이란 책을 냈다. 그와 인터뷰한 방 벽 색깔도 보라색이었다.

✚ 퍼플 피플은 보통 사람과 어떻게 다른가요?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의 이분법은 산업시대의 고정관념입니다.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던 시절부터 관찰한 결과 창업자, 변화를 만들어내는 사람, 새로운 리더는 이 두 범주에 속하지 않더라고요. 특히 실리콘밸리안은 말 잘 안 듣고 하고 싶은 일만 하려 드는 사람들로 자유 복장에 출퇴근이 자유로웠죠. 그런데 이들이 세상을 위해 좋은 상품을 만들고 부가가치 창출로 회사에 돈을 벌어주더라고요. 개인도 기업도 이들처럼 바뀌어야 합니다. 기업도 조직 문화를 혁신하고 이런 퍼플 피플형 인재가 혁신을 드라이브할 수 있도록 내부 환경이 바뀌어야 합니다.”

✚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이 서로 다르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정말 좋아하는 일이라면 결국 잘하게 돼 있습니다. 그보다는 포부가 뚜렷하지 않은 게 문제죠. 수십년 기업에 몸담고서 왜 내가 평생 열심히 주어진 일만 했을까 하는 분도 있어요.”

✚ 지금까지 디자인한 것 중 최고의 걸작을 하나 꼽는다면…
“다음에 선보일 작품입니다. 아직은 최고가 없다는 거죠. 날마다 기대에 차 하루를 시작하고 지금도 무엇에 꽂히면 잠이 안 옵니다. 젊은이를 비롯해 늘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는데 디자인은 혼자 앉아서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죠. 끊임없이 사람을 연구하고 사람 중심으로 생각하고 사람에 대해 배려합니다. 어린 아이까지도. 그래서인지 젊은 세대와의 갭을 거의 못 느껴요.”
이필재 더스쿠프 인터뷰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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