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컨트롤타워 흥망사

▲ 국내 그룹 대부분은 계열사의 사업을 조정·관리하는 조직을 두고 있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오리온그룹이 ‘회장실’을 폐지했다. 하지만 계열사를 통합ㆍ관리하던 파워조직의 명맥이 끊겼다고 보는 이는 드물다. 직제가 바뀌어도 ‘파워조직’은 살아 숨쉬게 마련이라서다. 구조조정본부를 없앤 삼성도, 지주회사로 전환한 LG, SK도 그랬다. 문제는 이들 파워조직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적 규제가 없다는 점이다.

오리온그룹이 8월 7일 회장실을 폐지했다. 그동안 그룹 회장실은 모기업인 오리온을 비롯한 국내외 계열사의 통합 관리ㆍ지원 업무를 맡았다.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의 ‘리스크’도 관리했다. 담 회장은 지난해 회사돈 300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징역 3년ㆍ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담 회장은 오리온 대표직을 사임하며 경영에서 한발 물러났다. 동시에 회장실도 사라졌다.

그렇다고 회장실의 기능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다. 회장실 내 전략과 법무부문은 오리온 기획관리와 인사부문으로 각각 흡수됐다. 이 때문에 ‘회장실’이라는 이름만 없어졌다는 말이 나온다. 담 회장이 경영에 다시 나서면 그 기능이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오리온뿐만 아니라 국내 그룹 대부분은 계열사의 사업을 조정ㆍ관리하는 조직을 두고 있다. 이름은 각기 다르지만 그룹 컨트롤타워로 통한다. 재계는 ‘계열사가 워낙 많고, 효율성 차원에서 이를 조정하는 역할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하지만 총수의 ‘황제경영’을 뒷받침하는 조직이라는 비판도 많다.

그룹 컨트롤타워의 파워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한 그룹이 미래가 밝은 시장에 진출하려고 한다. 계열사 A와 B가 나섰다. 그런데 그룹 단위에서 B가 하라고 지시했다. B의 주주는 환영한다. 반면 A의 주주는 뭐라고 할 말이 없다.” 최근 국내 그룹이 계열 건설사를 살리기 위해 다른 계열사를 재무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도움을 받는 회사 주주 입장에선 이익이지만 도와줘야 하는 회사 주주에겐 손해다. 자신과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데, 그룹이 건설사를 갖고 있어야 하는 이유만으로 자신에게 와야 할 몫이 건설사로 가는 것이다.

 
이런 경영시스템을 가진 대표적인 그룹은 삼성이다. 삼성은 과거 비서실에서 구조조정본부, 전략기획실을 거쳐 현재 미래전략실로 이름을 바꾸며 컨트롤타워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 시대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계열사의 사업을 조정하고, 미래 전략을 짜는 역할은 크게 다르지 않다. 총수에게 문제가 생길 때마다 총수와 함께 모습을 감췄고, 총수의 경영 복귀와 함께 다시 생겨났다.

현대차도 마찬가지다. 그룹 기획조정실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 지주회사로 전환한 SK와 LG는 컨트롤타워가 사라진 듯하지만 삼성ㆍ현대차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주회사로 형태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그룹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LG는 2003년, SK는 2007년 지주회사 체제를 구축했다. 그룹 컨트롤타워가 지닌 더 큰 문제는 막강한 파워에 비해 그만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문제가 생기면 ‘우리는 과거와 다르다’며 이름을 바꾸고 새로운 조직이라고 말하면 그만이다.

이지수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연구위원은 “국내 산업은 그룹 위주로 돌아가는데, 어떤 법률을 봐도 그런 단어는 등장하지 않는다”며 말을 이었다. “그룹은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적 실체가 없는 조직이다. 그룹 컨트롤타워나 사장단이 어떤 의사결정을 하고, 이후 그 결정이 ‘온당하냐’ ‘누가 책임을 지냐’ 등을 판단할 수 있는 법 자체가 국내에 없다. 상법이 됐든 기업집단법이 됐든 그룹을 규제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할 시점이 왔다.”
박용선 더스쿠프 기자 brav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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