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아그룹 오너 3세 이태성 상무

▲ 이운형 세아그룹 전 회장은 조용한 기업인으로 기억된다. 그의 아들 이태성 상무 역시 얼굴을 잘 드러내지 않는 편이다. [사진=뉴시스]
세아그룹 오너 3세 이태성 상무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지난해 3월 선친(고 이운형 회장)의 갑작스러운 별세 이후 정중동하던 것과 대조적이다. 최근엔 그룹의 사운社運이 걸린 대형 인수전을 이끌면서 선굵은 족적을 남기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재계 오너 3세 경영자들의 활동폭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세아그룹 오너 3세인 이태성(36) 상무의 행보가 눈에 띄게 활발해져 재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세아는 계열사 40여곳을 통해 연매출 7조원 상당을 올리는 재계 40위권의 알짜 철강전문그룹이다. 그는 지난해 3월 선친(고 이운형 회장)의 갑작스러운 별세 이후 1년여 동안 정중동의 비교적 조용한 움직임을 보여 왔다.

창업주인 고 이종덕 명예회장과 아버지 이운형 회장을 잇는 장손이지만 바로 경영권을 이어받기에는 여건이 갖춰지지 못했다. 우선 30대 중반의 나이로 경영 경험이 부족했다. 또한 그룹 경영에 이미 오너 2ㆍ3세인 삼촌(이순형 회장)과 사촌(이주성 상무)이 깊숙이 참여하고 있었다. 게다가 철강업 경기마저 나빠져 경영권을 다투기에는 부담이 컸다고 봐야 한다. 경영권 승계의 셈법이 복잡해지자 세아는 일종의 집단경영체제인 ‘가족경영’을 표방하며 과도기를 보내고 있다는 게 재계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하지만 최근 포스코특수강ㆍ동부특수강 인수 태스크포스(TF)팀을 전면에서 이끌며 보여준 그의 선굵은 행보가 단연 화제다. 이번 인수 프로젝트가 창립 54주년을 맞은 세아의 향후 사운을 좌우할 만한 굵직한 사안들이어서 더욱 그렇다. 최근 윤곽을 드러낸 그의 첫번째 작품은 이렇다. 포스코가 포스코특수강을 세아 계열 특수강업체인 세아베스틸에 매각하기로 한다는 내용의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것. 매각 지분은 포스코가 보유하고 있는 72.1%로 매각 대금만 1조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와 세아그룹은 앞으로 포스코특수강에 대한 실사 등을 거쳐 가격이나 구체적인 매각조건을 결정하게 된다. 인수가 마무리되면 세아그룹은 연산 400만t 규모의 세계 최대의 특수강 기업을 갖게 된다. 이태성 상무는 지난 6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동부특수강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는 등 특수강 업체 인수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 바 있다. 그런지 두어달 만에 1조원대의 큰돈이 들어가는 포스코특수강 인수를 이끌어 가시적인 성과를 내놓은 셈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특수강 시장에 진출해 몸집을 키우려는 현대제철을 견제하기 위해 포스코와 세아그룹이 연합전선을 펴고 있다는 해석도 내놓는다. 그래서인지 호사가들 사이에서는 세아 경영권의 유력한 계승자인 이 상무가 ‘승부수’를 던졌다느니, 경영권 승계의 첫 시험대에 올랐다느니 말들이 많다. 이런 말들은 이운형 회장 사후 1년 반이 넘도록 세아의 경영권이 확고하게 정립되지 못했음을 반증한다.

지난해 3월 이 회장이 66세의 나이로 해외출장 중 작고하기 전까지만 해도 세아는 형제경영체제를 표방해 왔다. 고 이운형 회장과 동생 이순형 회장(당시 64세)이 각각 외치外治와 내치內治를 맡아 별 잡음 없이 그룹을 이끌었다. 두 회장의 아들이자 사촌관계인 태성씨와 주성씨(당시 35세 동갑)는 이사로 각기 경영일선에 투입돼 경영수업을 받던 상태였다. 고인의 조카이자 창업주(이종덕 명예회장)의 외손자인 이휘령 사장(당시 51세), 고인의 부인인 박의숙 대표(당시 66세)와 딸 지성씨 등도 계열사 경영에 발을 들여 놓고 있는 구도였다.

자칫 경영권 분쟁이라도 날 것처럼 보는 세간의 시선을 의식한 듯 세아는 지난해 연말 그룹 인사를 통해 ‘가족경영’ 구도로 간다는 뜻을 밝히고 나섰다. 고 이운형 회장의 미망인 박의숙 세아네트웍스 사장을 회장으로 승진시키는 한편 지주회사인 세아홀딩스 부회장직도 맡겨 그룹경영의 전면에 배치했다. 이태성 상무에게도 그동안 맡아온 세아홀딩스 상무와 겸해 그룹 주력사의 하나인 세아베스틸 기획본부장을 맡겼다. 그룹과 계열사를 아우르는 경영에 나서도록 한 것.

이순형 회장의 아들 이주성 세아베스틸 상무는 세아제강 상무(경영기획본부장)로 이동시켰다. 재계는 이운형 회장 작고 후 그룹회장직을 동생 이순형 회장이 이어받았던 만큼 연말 인사로 ‘경영권의 균형’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세아그룹이 이종덕 명예회장에서 운형ㆍ순형 형제에게 넘어가서도 별 잡음 없이 ‘형제경영’을 잘 해낸 전례로 보아 태성ㆍ주성 사촌들도 경영권 분쟁이나 계열분리 등으로 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철강전문그룹인 세아는 특수강이나 강관 등을 주력 아이템으로 삼고 있다. 관심을 끌고 있는 특수강 제품 공정은 쇳물을 봉강과 선재로 만드는 1차 공정과 봉강과 선재를 수요처에 맞춰 가공하는 2차 공정으로 나뉜다. 1차 공정 계열사로 세아베스틸에 이어 포스코특수강의 합류가 예정된 상황. 2차 공정 계열사로는 세아특수강이 있다.

세아-현대제철, 숙명적 경쟁 속으로…

문제는 현대제철이 지난해 당진제철소 안에 특수강공장을 착공하면서 세아그룹을 위협하게 된 것. 현대제철은 2016년부터 봉강 60만t, 선재 40만t 등 연산 100만t 규모의 특수강소재 생산을 앞두고 있다. 봉강은 세아베스틸의 주력제품이기 때문에 두 회사의 경쟁은 불가피하다. 특히 현대제철이 동부특수강 인수까지 검토 중으로 알려지면서 세아의 위기의식이 한층 더 높아졌다고 한다.

현대제철이 2차 공정 시장에까지 진출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 게다가 세아는 현대제철에 납품하던 현대자동차 물량을 뺏길 수도 있다. 세아베스틸이 생산량의 70~80%를 현대자동차에 납품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아는 현대제철이 특수강 공장을 가동하면 현대자동차가 현대제철 제품을 공급 받지 않겠느냐며 걱정한다. 정중동의 태도를 견지했던 이태성 상무가 진두지휘하고 나선 배경이다.

 
소재산업에 종사하는 철강기업 오너나 경영자들은 원래 외부에 얼굴을 잘 드러내지 않는 편이다. 소비자들을 직접 상대하지 않고 기업 간 거래를 주로 하는 소위 B2B 사업체들의 특성이기도 하다. 이 상무의 선친 이운형 회장 역시 그랬다. 재계는 그를 ‘조용하고 점잖으며 예술을 사랑한 기업인’으로 기억한다. 세아뿐만 아니라 한국 재계를 위해 큰 몫을 할 일꾼으로 여겼었다. 그의 외아들 이태성 상무 역시 아직은 대외에 얼굴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철강협회 신년 인사회나 공식적인 모임에서 맞닥뜨리는 기자들에게 겨우 몇마디 말을 들려 줄 정도로 말을 아낀다. 재계에서는 선친의 스타일을 닮은 것 같다는 얘기가 나돈다. 회사 홍보담당자들도 이 상무에 관해 질문하면 입을 다문다. 공식적으로 얼굴 사진도 잘 내놓지 않는다. 물론 그는 삼촌 이순형 회장과 어머니 박의숙 회장, 사촌 이주성 상무 등과 그룹 현안을 협의할 것이다. 그렇더라도 그룹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장손인 그에게 보다 많은 관심을 두는 것은 한국인의 정서상 자연스런 일이다.

이번 대형 인수전을 이 상무의 경영능력에 대한 시험대이자 경영권 승계의 주요 관문으로 보는 것도 그같은 관심의 일종으로 봐야 한다. 이번 기회를 통해 그룹이 당면한 공전의 위기상황을 잘 방어해낼 경우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유리한 입지를 차지하게 될 것이란 해석이다. 비록 그가 선친의 주식 상속 등을 통해 오너 경영자 중 최대 지분율을 차지하게는 됐지만 재계 40위권의 기업군을 이끌려면 그에 상응하는 경영능력과 리더십을 갖춰야 한다는 숙제도 떠안게 됐다.
김은경 더스쿠프 객원기자 kekis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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