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부양책의 숨은 리스크

 
‘부동산 경기를 살리면 내수시장이 살아난다’. 최경환 경제팀의 논리다. 부동산 보유자, 이른바 ‘있는자’의 관점에선 훌륭한 정책이다. 하지만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면 ‘부동산 미보유자’의 내집 마련 기회는 더 좁아진다. 혹자는 부양책을 쓰는 게 부동산 미보유자에게도 좋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이끄는 박근혜 정부 2기 경제팀이 부동산 카드를 꺼내 들었다. 부동산 시장 활성화를 통해 침체에 빠진 내수경기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의도다. 부동산 활성화 정책은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7ㆍ24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한지 6일만인 7월 30일 후속조치를 내놨다. 추석 이후 완결판 부동산 대책이 발표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국내 부동산 시장의 거품을 막아주던 규제도 완화했다. 다주택자 차별을 줄이기 위한 청약제도 개편, 디딤돌대출 지원대상 확대, 재건축 안전진단 규제 개선,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폐지 등 각종 대책도 준비중이다. 재개발ㆍ재건축 분야에선 1가구1주택 원칙을 폐지하고 보유주택수만큼 주택을 분양받을 수 있도록 하는 도시주거환경정비법 개정도 추진할 예정이다.

부동산 활성화, 누구 위한 정책인가

정부가 부동산 시장을 활성화하는 이유는 ‘부의 효과’에 있다. 가령 보유하고 있는 1억원의 아파트 가격이 1억5000만원으로 오르면 자산이 5000만원이 늘어나는 셈이다. 이는 소비심리 개선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자산이 늘어난 만큼 소비가 증가한다는 논리다. 국내 내수경기가 위축된 이유가 ‘부동산 가격하락’에 있다고 본 정부가 ‘부동산 부양카드’를 꺼낸 것이다. 물론 ‘부동산 가격상승→자산증가→소비확대’라는 부동산 선순환론論은 설득력이 없지 않다. 늘어난 자산만큼 소비여력이 생겨서다. ‘이 참에 오래된 자동차나 가전제품을 교체하겠다’는 소비자가 늘어나고, 외식과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여유도 생길 거다. 부동산 가격상승으로 임대소득이 늘어나면 소비가 증가할 거라는 의견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박근혜 2기 경제팀의 부동산 부양책은 일단 시장에 긍정적 시그널을 울리고 있다. 무엇보다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이 최근 6주 연속 상승세를 타고 있다.부동산 114에 따르면 8월 셋째주(22일 기준) 서울시의 아파트 가격은 0.06%가 오르며 6주 연속 상승세를 기록했다. 재건축아파트와 일반아파트가 각각 0.11%, 0.05% 상승했다. 7.24 부동산 대책 발표이후 한달사이에 0.17%의 상승세률을 기록했다. 부동산 보유자는 신바람이 나는 상황이다. 춤추는 부동산을 활용해 할 수 있는 게 많아져서다. 무엇보다 부동산을 적당한 가격에 팔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게다. 임대료 장사를 하고 있다면 가격에 ‘웃돈’을 붙일 수도 있다. 강세진 새사연 이사는 “정부의 강력한 지원을 통해 소수 자산가가 주택을 독점하는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부동산 보유자는 주판알을 튕길 수 있지만 부동산이 없는 이들은 그렇지 않다.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내집 마련 꿈’은 한발자국 더 멀어질 게다. 가뜩이나 천정부지로 솟구쳐 있는 전월세 가격은 더 오를지 모른다. 이런 비판에 한편에선 이렇게 반박한다. “침체된 부동산을 살리겠다는 정책은 오류가 없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것도 ‘2007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제대로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동산 가격하락은 그만큼 위험한 변수다. 우리나라도 ‘깡통주택’이 속출하고 있지 않은가.”

언뜻 맞는 주장 같지만 오류투성이다.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당시와 지금 한국의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이어진 건 ‘부실대출’ 때문이었다. 시중은행이 주택을 담보로 신용등급이 좋지 않은 이들(Sub-prime)에게 대출을 해준 게 부메랑으로 돌아왔던 거다. 다시 말해 저신용자가 대출금을 갚지 못하자 주택을 매물로 내놨고, 그 결과 주택공급량이 늘어나면서 집값이 급락했다. 그에 따라 수많은 저신용자들은 주택을 팔레야 팔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집값이 너무 떨어져 집을 팔아도 대출금을 갚지 못했던 거다. 이런 악순환이 ‘부동산 거품’을 터뜨리는 뇌관으로 작용한 셈이다.

하지만 한국은 강도 높은 부동산 규제책을 가지고 있다. LTV와 DTI다. 수도권의 경우 LTV를 50%로 제한했고, 투기지역엔 DTI를 40%로 묶었다. 한국처럼 LTV와 DTI를 국가가 직접 나서 규제하는 곳은 거의 없었다. 집값이 하락해도 가계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었다. 반면 미 서브프라임 당시 미국의 LTV는 90%였다. 집값 하락이 금융위기로 전염돼 가계가 붕괴된 것은 이런 느슨한 규제 때문이었다. 이는 1990년대 일본 부동산 폭락 사례를 한국에 적용하기 어려운 이유기도 하다. 일본의 부동산 버블 당시 LTV는 120%에 달했다.

부동산 시장 진짜 침체기였을까

한국의 독특한 부동산 규제책은 주택가격 하락이 ‘대출리스크’로 이어지는 걸 효과적으로 막았다. 한국의 주택가격의 최고점(2008년 7월)과 최저점(2009년 1월)을 비교하면(실거래가 기준) 전국 8.45%, 서울은 18.86% 빠졌다. 특히 강남구는 21.71% 하락했다. 그러나 당시 한국의 대출시장은 튼튼했다. 최경환 경제팀이 꺼내든 ‘부동산 부양카드’가 위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팀은 냉각된 부동산 시장을 되살려 내수시장을 부활시키겠다고 했지만 전제 자체가 틀렸다. 우리나라의 부동산 시장은 냉각된 적이 없다. 다만 ‘높은 수준’에서 정상수준으로 하락하고 있었을 뿐이다. 근거는 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PIRㆍPrice to Income Ratio)과 독특한 한국의 인구구조다.

▲ 부동산 활성화 정책의 수혜는 주택을 보유하고 있는 자산가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사진=뉴시스]
PIR은 평균 수준의 주택을 연평균 소득으로 구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말한다. PIR이 10이면 10년 동안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집을 장만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일반적으로 PIR지수가 높으면 부동산 시장에 버블이 끼고 있다는 의미다. KB금융연구소가 지난해 발표한 ‘주요국의 주택가격 비교와 시사점’에 따르면 한국의 PIR은 4.8, 서울은 9.4이다. 서울은 뉴욕(6.2)ㆍ샌프란시스코(7.8)ㆍ시드니(8.3)ㆍ런던(7.8)보다 높다. 서울보다 높은 곳은 홍콩(13.5)과 밴쿠버(9.5) 정도가 있었다. 이는 주택시장의 하락세가 장기화 됐지만 여전히 주택가격이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 물론 PIR은 국제적 스탠다드가 없는 지표다. 이 지표의 값이 높으면 ‘주택가격이 비싸다’고 판단할 수는 있지만 거품이 끼었다고 해석할 순 없다.]

인구구조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의 인구구조는 ‘부동산 시장’을 지탱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는 인구구조 변화의 영향으로 부동산 시장이 붕괴된다는 ‘거품론’을 뒤집는 논리다. 거품론의 요지는 대략 이렇다. “인구가 줄고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를 하면서 주택을 판매하면 주택공급량이 많아져 집값이 폭락할 수 있다.” 베이비붐 세대(1955~1964년생)의 은퇴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베이비붐 세대는 695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4.5%를 차지하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는 이미 2010년부터 시작됐다. 이에 따라 앞으로 몇년동안은 베이비붐 세대의 퇴직 숫자가 급격하게 늘어날 전망이다.

“부동산은 생각보다 견고했다”


문제는 베이비붐 세대의 자산 중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83%에 달한다는 점이다. 베이비붐 세대가 공적연금으로 생애평균소득을 대체할 수 있는 비중은 23.91~32.73%에 불과하다.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면 노후 생계자금과 자녀 교육ㆍ결혼 또는 가계부채를 충당하기 위해 집을 투매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오는 이유다. 그렇다면 부동산 가격이 폭락할 것이라는 게 바로 ‘인구변화에 따른 거품론’이다. 하지만 이 주장은 현실과 간극이 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인구 감소 등이 부동산 시장의 새로운 변수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면서도 “그렇다고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한다고 부동산이 꽁꽁 얼어붙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인구구조 변화를 부동산 폭락론으로 연결하는 것은 비약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은퇴한 베이비붐 세대는 주택을 팔 가능성이 크지 않다. 통계청의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나이가 많아질수록 자가 거주율이 높아진다. 60대 이상의 자가 거주율은 74%가 넘는다. 여기에 주택연금 활성화라는 변수도 있다. 인구 감소 역시 마찬가지다. ‘주택구입 가능계층(35~45세)의 비중이 2016년부터 감소하기 때문에 부동산 가격이 그때를 기점으로 급격하게 하락할 것’이라는 예상은 성급한 판단일 수 있다. 주택구입의 단위는 인구가 아닌 가구수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국내의 가구수는 2030년까지 증가할 전망이다. 게다가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세대인 에코세대(1979~ 1992년)를 포함한 1인 가구의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10년 415만 가구를 기록하고 있는 1인 가구의 수는 2035년 762만 가구로 2배 가까이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1인 가구증가에 따른 주택수요가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국내 부동산 시장은 ‘부양’을 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다. 부동산이 떨어지고 있었지만 ‘폭락’의 전조로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PIR은 한국주택가격의 높은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고, 인구구조변화 역시 ‘폭락’과는 거리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경환 경제팀은 규제까지 완화하면서 부동산 부양책을 사용했다. 그것도 한국의 자랑이라는 ‘부동산 안전판’ LTV와 DTI 규제까지 일부 완화했다. 이로써 집값이 정상화 수준으로 떨어져 다수의 중산층이 부동산을 구입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졌다. 내수시장이 건전하게 회복될 수 있는 길목이 막혀버린 셈이다. 서민의 내집 마련의 꿈, 또 멀어졌다 .


Issue in Issue 동전의 양면 ‘PIR’

PIR은 거품 지표 아니다

지난해 주택금융공사의 ‘패러다임 변화와 주택금융시장 안정화 방안’ 세미나에서 이창묵 한양대(도시공학) 교수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 기준 한국의 PIR은 4.4, 서울의 PIR은 7.7을 기록했다. PIR이 10이면 10년 동안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집을 장만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일반적으로 PIR지수가 높으면 부동산 시장에 버블이 끼고 있다는 의미다. KB금융연구소가 지난해 발표한 ‘주요국의 주택가격 비교와 시사점’에 따르면 한국의 PIR은 4.8, 서울은 9.4이다.

이창묵 교수와 KB금융연구소의 값이 다른 이유는 PIR을 구하는 국제적 기준이 없어서다. 이에 따라 주택가격과 소득의 기준을 중앙값 또는 평균값으로 잡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가령 5ㆍ7ㆍ8 가운데 중앙값과 평균값은 각각 7, 6.7이다. 시세가 아닌 실거래 가격을 이용할 경우 결과는 또 달라진다. KB금융연구소는 중앙값을, 이창묵 교수는 실거래 가격을 사용했다. 또한 한국의 PIR은 전국 근로자가구 소득을 기준으로 한다. 다른 지역에 비해 주택가격이 비싼 서울의 PIR이 높게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제로 1993년 서울의 PIR은 21.5였다. 이는 금융위기 발생 직전인 2007년 뉴욕보다 3배 높은 수준이다. 이를 부동산 거품론의 근거로 삼는다면 버블은 이미 수십년 전에 터졌을 것이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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