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은 왜 명예회복 노리나

▲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대우그룹 해체 원인이 김대중(DJ) 정부의 핵심 관료들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사진=뉴시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그룹 해체 15년 만에 ‘반격’에 나섰다. 그는 대우그룹 해체 원인을 부실경영이 아닌 김대중(DJ) 정부의 핵심 관료들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정부의 ‘기획 해체’다. 세계경영을 기치로 내걸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경영자 김우중. 그는 왜 침묵을 깨고 명예회복에 나섰을까. 그것도 죽은 권력을 상대로….

“억울함도 있고 비통함도 분노도 없지 않았지만 되돌릴 수 없는 과거이기 때문에 감수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제 시간이 충분히 지났으니 적어도 잘못된 사실은 바로잡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역사에서 우리가 한 일과 주장을 정당히 평가받고 과연 대우 해체가 합당한지를 명확히 밝혀지기를 기대한다.” 김우중(78) 전 대우그룹 회장이 대우그룹 해체 15년 만에 ‘반격’에 나섰다.

김 전 회장은 8월 26일 대우그룹 임직원 모임인 대우인회와 대우세계경영연구회가 주최한 ‘제45회 대우특별포럼’에 참석, “잘못된 사실을 바로잡아야 한다”며 1997년 외환위기(IMF) 당시 대우그룹이 방만ㆍ부실 경영의 결과로 해체됐다는 세간의 평가를 반박했다. 김 전 회장은 ‘대우그룹 해체는 경영실패로 인한 것이 아닌 정부의 기획 해체에 가깝다’는 회고록 「김우중과의 대화 - 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저자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를 내며 대우사태의 책임을 김대중(DJ) 정부의 핵심 관료들에게 물었다. 그간 대우그룹 패망 비사秘史를 공개하고 재평가를 받자는 전 대우그룹 임직원들의 주문에 묵묵부답했던 모습과는 달랐다.

“대우, 정부 기획 해체” 주장

대우그룹은 1967년 김 전 회장이 설립한 대우실업에서 출발, 약 30년 만인 1998년 41개 계열사, 396개 해외법인에 자산총액이 76조7000억원에 달하는 재계 2위의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외환위기의 파도를 넘지 못하고 1998년 8월 12개 계열사가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돌입하며 그룹이 해체됐다. 김 전 회장은 회고록을 통해 DJ정부 경제 관료들이 대우를 부실기업으로 몰고 갔다는 소위 ‘기획 해체론’을 주장했다. 1997년 DJ는 김 전 회장과 경제 관료들을 경합시키고, 양쪽의 얘기를 다 들으려고 했다. 그렇지만 1998년 7월 금융감독위원회는 ‘기업어음(CP) 발행 한도 제한조치’와 10월 ‘회사채 발행 한도 제한조치’를 내린다.

회사채 발행 제한 조치 이틀 후 노무라 증권에서 ‘대우에 비상벨이 울린다’는 보고서를 발표했고, 금융권은 본격적으로 자금회수에 들어갔다. 당시 강봉균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은 1997년 11월28일 김 전 회장이 DJ를 만나기 직전에 ‘김우중 회장 접견 자료’를 DJ에게 제출한다. 이 보고서는 대우그룹의 총차입금이 1997년 말 28조7000억원에서 1998년 9월 말 47조700억원으로 9개월 사이에 19조원이나 늘어난 사실을 강조했다.

 
또한 보고서는 “단기부채가 계속 늘고 있는 현상을 보면 이익 산출의 투명성에 의문이 크다”며 “밀어내기식 수출과 이로부터 창출된 매출채권을 기반으로 운전자금을 조달하는 형태를 지속했다”고 밝혔다. 대우가 ‘부실’로 인해 금융시장의 신뢰를 잃고 있는 상황에서 가공수출을 늘려 자금난을 넘기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DJ는 경제 관료들의 손을 들어줬다. 대우에 대한 금융권의 자금회수가 이어졌고, 1999년 8월 ‘워크아웃’으로 처리된다.

대우의 유동성 위기에 대해 김 전 회장은 본말本末이 전도됐다고 말한다. 수출금융이 막혀서 16조원이 갑자기 필요해졌고, 금융권이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맞추기 위한 구조조정을 하면서 3조원의 대출을 회수해 갔다는 것이다. 대우의 잘잘못 여부와 관계없이 외부 여건 때문에 할 수 없이 19조원을 조달해야 했는데 이것이 왜 기업부실의 증거냐고 반문한다.

김 전 회장은 “그 당시 우리가 수출금융을 풀어달라고 요청하던 것에 대해 정부나 언론에서는 대우가 무슨 큰 특혜를 요구하는 듯이 얘기했는데 절대 아니다”며 “통상적인 금융을 정상화해 달라는 것이었을 뿐이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은 정부나 금융기관에서 만들어 놓은 시스템에 따라서 활동을 한다”며 “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것이 왜 기업 잘못인가. 시스템 고장 난 걸 고쳐달라는 것이 왜 특혜를 요구하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은 외환위기의 파도를 넘지 못하고 1998년 워크아웃에 들어가며 해체됐다. 사진은 대우그룹 전직 임원이 만든 ‘대우인회’의 2007년 정기총회. [사진=뉴시스]
또한 김 전 회장은 “정부에서 갑자기 수출이 나쁜 것처럼 얘기하고 수출금융이 막혀 벌어진 일들을 우리가 잘못한 걸로 몰아붙이는 건 도대체 말이 되지 않는다”며 “의도가 있었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김 전 회장은 정부의 ‘밀어내기식 수출’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그는 “그러면 현지법인에 과잉재고가 있어야 할 것 아닌가”라며 “워크아웃에 들어가고 삼일회계법인이 실사를 나왔을 때 그런 부분이 잡혀야 되는데 지금까지도 그런 재고에 대해서 아무 얘기가 없다”고 지적했다.

김 전 회장은 삼성과의 자동차 빅딜 무산, 사재출연과 워크아웃 과정에서도 정부 경제팀의 ‘의도’가 작용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제 관료들이 나를 제거하려는 ‘프로그램’을 갖고 있었다고 믿고 있다”며 “DJ는 정치적 이유 때문에 대우와 삼성 간의 자동차 빅딜을 적극 밀었지만 경제 관료들은 빅딜이 깨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전 회장은 사재 1조3000억원을 포함해 총 13조원의 자산을 채권단에 내놓고 마지막 회생 작업을 할 때도 정부 측이 10조원의 자금지원을 약속한 뒤에 4조원밖에 주지 않았다고 밝혔다.

“대우정신은 계승해 나갈 것”

경제정책 최고 책임자들이 즉각적으로 대우그룹과 김 전 회장에 대해 부정적인 발언을 쏟아내 ‘워크아웃’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김 전 회장은 “대우그룹을 청산가치로 실사해 30조원이나 자산가치를 낮춰서 ‘부실기업’으로 낙인 찍고 경영권 박탈과 워크아웃을 합리화했다”고 주장했다. 김 전 회장은 앞으로 남은 여생을 글로벌 인재를 키우는 데 보내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제 저는 미래를 담보할 수 없는 나이가 됐다”며 “남은 인생 동안 마지막 봉사라고 여기고 우리 젊은이들이 해외로 많이 뻗어나갈 수 있도록 성심껏 도와주려고 한다. 이들이 대우의 정신을 계승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은 베트남에 머무르며 대학생들을 청년사업가로 육성하는 ‘글로벌청년사업가(GYBMㆍGlobal Young Business Manager)’ 프로그램을 통해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다.
박용선 더스쿠프 기자 brav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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