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산련 새 선장 성기학 영원무역 회장

▲ 성기학 섬산련 회장은 “정부 지원에 기대기보다 섬유업계 스스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사진=뉴시스]
성기학(67) 영원무역 회장이 우여곡절 끝에 올 8월 27일 제13대 한국섬유산업연합회(이하 섬산련) 회장에 취임했다.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로 더 잘 알려진 그는 이미 자신의 섬유패션사업에서 일가를 이뤘다는 평을 듣는 기업인이다. 그런 만큼 임기 3년 동안 ‘성기학號 섬산련’의 선장 역할도 잘 해낼 것이란 기대가 크다.

지난 8월 27일 오후 5시,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섬유센터 17층 대회의실. 이곳에선 성기학 영원무역 회장의 ‘섬산련 회장’ 취임식이 열렸다. 각계 손님과 관계자 100여명이 참석해 ‘성기학號 섬산련’의 순항을 기원했다. 행사는 이관섭 산업부 차관의 축사, 성기학 회장의 취임사, 노희찬 명예회장(전임 회장)의 건배 제의, 리셉션 순으로 진행됐다. 성낙인 서울대 총장도 자리를 함께해 눈길을 끌었다. 섬유패션업계 단체장, 섬산련 임직원, 영원무역 임직원 등도 다수 참석했다. 재계가 이렇게 각별한 관심을 보인 것은 그가 표류하고 있는 한국 섬유패션산업에 시원한 구원투수가 돼 줄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영원무역을 통해 노스페이스 신화를 일궈낸 솜씨를 살려 한국 섬유패션산업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솔루션과 이정표를 제시해 줄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성 회장은 1974년 영원무역을 창업해 해외 유명 아웃도어ㆍ스포츠 브랜드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제품을 수출하는 세계적인 아웃도어 패션 전문업체로 성장시켰다. 특히 1997년 세계적인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를 국내에 론칭해 아웃도어 업계 1위 브랜드로 일궈냈다. 현재 영원무역그룹의 매출은 연 1조5000억원 규모로 ‘섬유업계의 삼성전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국내 아웃도어 시장을 연 7조원 규모로 성장시키는 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창업 40년 동안 숱한 시행착오를 극복하며 한국 섬유패션산업의 글로벌화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가 이번에 제13대 섬산련 회장 자리를 맡게 된 데는 이같은 그의 평판이 크게 작용했다. 갈길 잃은 한국 섬유패션산업의 구원투수로 그가 등용되기까지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지난 7월까지만 해도 그가 섬산련 회장이 될 줄은 몰랐다. 연초부터 업계 중진 4명이 13대 섬산련 회장직을 놓고 치열한 경합을 벌여왔기 때문. 김웅기 세아상역 회장, 박상태 성안 회장, 염태순 신성통상 회장, 최병오 패션그룹형지 회장(가나다 순) 등이 그들이다. 이들의 경합이 너무 치열하다 보니 업종간 세勢대결로까지 비쳤다는 후문이다. 업계의 단합과 새로운 이정표가 절실했던 시기에 이처럼 잡음이 일자 지난 7월 7일 열린 ‘섬산련 회장 5인 추대위원회’ 1차 회의에서 성 회장을 갑자기 후보로 올렸던 것이다. 위원회는 업계를 위해 기존 후보가 아닌 ‘제3의 인물’을 추대하자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고, 성 회장의 수락을 받아내는데 매달렸다.

 
문제는 그가 쉽게 수락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전 12대 회장 선임 때도 거론됐지만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간의 평판에도 그는 ‘은둔형 경영자’란 얘기를 들을 정도로 자기 사업에만 몰두하는 스타일의 사업가였다. 언론 노출 등 대외활동에 소극적인 편이었다. 업계 원로 등이 이번만은 그가 맡아야 한다며 설득에 나서 결국 허락을 받아냈다. 이윽고 지난 19일 임시총회에서 만장일치로 회장에 추대됐다. 경합했던 4인의 기존 후보자들도 승복의 발언을 했다.

만장일치 추대, 일할 여건 갖춰 

회장 추대 과정과 관련해 그는 “앞으로 난관은 있겠지만 (만장일치로 추대됐기 때문에) 일할 여건은 만들어졌다”며 “이제 업계에서는 원로 축에 속하기 때문에 회장직에 오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대외활동에 소극적이란 평에 대해서는 “영원무역 사업은 B2B(기업간 거래)가 주력이기 때문에 언론을 통해 이야기할 것이 적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며 “앞으로 적극적인 대화를 통해 섬산련의 발전 방향을 구체화해 나갈 것”이라고 응답했다.

이런 곡절 끝에 취임한 그가 섬산련을 통해 제시하게 될 한국 섬유패션산업의 발전방안은 무엇일까. 구체적인 대안은 좀 더 기다려봐야 알겠지만, 취임 간담회 등을 계기로 그의 생각이 조금은 드러나고 있다. 성 회장은 국내 섬유산업이 위기를 극복하려면 “정부 지원에 기대기보다는 자체 경쟁력부터 키워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는 “미국이 철강산업을 보호하겠다고 나서자 오히려 산업 자체가 경쟁력을 잃지 않았느냐”며 “정부 보호 아래 비능률을 이어나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또 “경쟁적으로 좋은 제품을 개발하려고 노력해 더 싸고 좋은 품질을 만들어야 물건이 팔리게 된다”며 “국내 기업끼리, 우리 동포끼리 서로 도와야 한다는 논리로 접근하면 결국 둘 다 망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면방과 화섬은 물론 의류ㆍ패션 등 섬유업계 전반에 대해 기술 개발과 제품 경쟁력 향상에 초점을 두고 섬산련 예산을 집행하겠다는 뜻도 갖고 있다. 북한투자에도 관심이 많다. “북한 투자 기회가 오면 실기하지 않고 신속하게 대응하도록 힘을 기르고 준비를 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섬산련은 자동차협회ㆍ전자진흥회ㆍ기계진흥회 등과 어깨를 나란히 겨루는 국내 굴지의 업종 단체다. 회장직에 고 박용학 전 대농그룹 명예회장(2대ㆍ1980〜1983년),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4대ㆍ1986〜1989년), 노희찬 삼일방직 대표(11, 12대ㆍ2008〜2014년) 등 한국의 간판급 기업인들이 거쳐 갔다. 임기 3년. 1975년 국내 주요 섬유업체들이 모여 설립했다. 현재 화섬협회ㆍ섬유직물수출입조합ㆍ의류산업협회 등 27개 섬유 업종별 단체와 38개 회원업체로 구성돼 있다. 한해 수입은 건물 임대료(163억원)와 정부 지원금(약 41억원), 회원사 회비, 사업수입 등을 포함해 230여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섬유패션산업은 1960~80년대에 걸쳐 한국의 경제발전을 주도한 업종이다. 1971년엔 총수출의 41%를 차지했으며, 1987년 100억 달러 수출 쾌거도 이뤄냈다. 2013년 수출은 160억 달러, 수입은 135억 달러였다. 무역수지 흑자 25억 달러로 전체 무역수지 흑자(441억 달러)의 5.5%를 점유했다.

 
“北 투자 기회, 실기 않겠다”

섬산련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한국)경제를 이끈 섬유산업, 미래를 이끌 창조산업’이란 문구가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니다. 지금은 힘이 많이 빠졌지만 아직도 사업체수 4만5200개로 제조업 전체의 12.5%, 고용 30만7000명으로 제조업의 8.3%를 각각 점유하고 있다(2012년 국내기준). 한국 섬유패션산업은 원사, 직물, 염색가공, 패션ㆍ의류 등 업 스트림(Up Stream)에서 다운 스트림(Down Stream)까지 균형된 생산기반을 갖췄고 생산기술도 고르게 발달해 있다.

성 회장은 “한국 섬유패션산업은 잘 꿰면 보물인데 흩어져 있다”며 “직조ㆍ제면ㆍ염색ㆍ옷ㆍ신발ㆍ핸드백ㆍ유통 등 다양한 사업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를 추스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중국ㆍ홍콩 등에 빼앗긴 바이어 방문이 늘도록 서울ㆍ대구가 세계 섬유산업의 길목이 되도록 하겠다”는 다짐도 했다.  
김은경 더스쿠프 객원기자 kekis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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