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좁혀지는 한ㆍ중 수출 점유율

▲ 한국의 수출점유율 1위 품목을 중국이 거세게 추격하고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우리나라는 이른바 ‘수출수치’에 민감하다. 수출로 먹고살기 때문이다. 2012년 기준 한국의 수출점유율 1위 품목은 64개. 2008년에 비해 6개가 늘었다. 이 사실에 좋아해야 할까. 그렇지 않다. 수출점유율 1위를 위협하는 추격이 만만치 않아서다. 그 추격자는 바로 중국이다. 문제는 중국과의 격차가 그리 크지 않다는 점이다.

한해 30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중견 합성섬유업체 A사. 이 회사의 해외 영업담당 전무 B씨는 요즘 들어 속이 새카맣게 타 들어간다. 영업이익이 해마다 반토막나고 있어서다. 벌써 3년째다. 2011년 210억원이던 영업이익은 2012년에 83억원으로 줄었고, 지난해엔 32억원 밑으로 떨어졌다. 영업이익이 하락한 이유는 크게 두가지. 하나는 지속적 원화강세다. 전체 매출의 90% 이상을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이 회사에 환율처럼 무서운 복병은 없다.

또 다른 이유는 중국이다. 10여년 전부터 해외수출 판로를 중국 업체들이 조금씩 잠식하고 있어서다. A사도 고부가가치 제품군으로 옮겨가기 위해 연구개발(R&D) 비용을 늘리는 등 애를 썼다. 하지만 막강한 자금력으로 무장한 중국 업체들도 R&D에 힘을 쏟고 있다는 게 문제다. A사가 원화강세보다 중국을 더 무서워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 회사의 전무 B씨의 얘기를 들어보자. “환율보다는 중국 때문에 더 고민이다. 그나마 환율은 정부가 적극 개입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중국 업체의 시장 잠식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섬유업계에서 가격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업체들의 수출시장 잠식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더구나 이제는 품질도 만만찮다. 우리가 만드는 것들을 중국이 못 만든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효율성을 따져본 중국 업체들은 시장 파이가 큰 쪽을 쫓아가기 때문에 안 만드는 것일 뿐이다. 중국이 맘먹고 쫓아오면 우리 기업들은 모두 쓰러질 수도 있다. 그저 틈새시장을 노려보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

 
섬유업계 관계자들은 중국이 과거 저가공세만을 펼치던 때와는 다르다고 입을 모은다. 중국 섬유업체들이 한국의 기술자들을 스카우트해서 기술력을 높여 온 지도 오래됐다. 업계에서는 이미 중국 업체들이 상당한 수준까지 올라와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B씨는 “중국 업체들의 공세가 거세지고 있기 때문에 국내 중소ㆍ중견 섬유업체들이 언제 도산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섬유업계뿐만이 아니다. 철강업계도 중국 때문에 골치다. 최근 현대제철과 동국제강은 지난 5월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무역위원회에 중국 H형강 제조사들을 상대로 반덤핑 조사를 의뢰했다.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에 들어오는 중국산 H형강 때문이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중국의 철강업계를 상대로 한 반덤핑 제소로 인해 다른 산업분야가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는 걸 잘 안다”면서도 “그럼에도 이렇게 해야 하는 심정은 오죽하겠나”고 하소연했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건설업체들이 더 큰 마진을 남기기 위해 값싼 중국산 H형강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국내 시장은 물론 세계 시장까지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국경제 전반을 위협하는 중국

H형강 수ㆍ출입 현황을 보면 철강업계의 현실을 한눈에 알 수 있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 수입된 중국산 H형강은 총 62만t이다. 2003년 수입량이 약 5만~6만t이었던 걸 감안하면 10배가 늘었다. 특히 중국산 H형강 수입량은 전체 H형강 수입량(70만t)의 88%에 달한다. 같은 기간 국내산 H형강의 전체 수출량은 2003년 81만t에서 2013년 120만t으로 늘었을 뿐이다. 더구나 대對중국 수출량은 29만t에서 10만t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더 큰 문제는 중국산 H형강들이 버젓이 국내기업 상표를 달고 팔려 나가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거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한국기업 상표를 달고 수출되는 중국산 제품들 때문에 대외 신뢰도에도 금이 가고 있다”며 “아직까지는 중국이 기술력이 부족해서 가격으로 승부하고 있지만, 이미 스마트폰까지 삼성을 넘보는 마당에 언제 품질로 치고 올라올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중국이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를 위협하고 있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올 8월 국제신용평가기관 피치 레이팅스는 샤오미와 화웨이 등 중국산 스마트폰의 부상으로 삼성전자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지난해 31%에서 2015년 25%로 떨어질 수 있다고 예측했다. 중요한 점은 샤오미와 화웨이가 단순히 싼 가격만으로 승부하는 게 아니라는 거다. 중국산 스마트폰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삼성의 스마트폰이 갖추고 있는 웬만한 기능은 다 탑재하고도 가격이 싸서다. 피치 레이팅스가 삼성의 위기를 예측한 것도 이 때문이다.

업계 전반의 이런 우려는 기우가 아니다. 세계 수출시장 점유율 1위 품목들을 살펴보면 중국의 기세를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2012년 세계 수출시장 점유율 1위에서 탈락한 품목은 총 13개다. 중국은 그중 절반인 6개 품목에서 1위를 꿰찼다. 나머지 품목 7개 중 3개에서도 2ㆍ3위를 차지했다. 문제는 이 품목들이 단순히 가격경쟁력만 갖춘다고 점유율을 높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다. 철도 기관차에 쓰이는 부품이나 사진기에 쓰이는 필터 등 독일ㆍ미국ㆍ일본 등과 경합을 벌이는 품목들이 포함돼 있다.

우리나라가 신규로 수출점유율 1위를 거머쥔 16개 품목들을 봐도 상황은 비슷하다. 중국은 3개 품목에서 2위, 5개 품목에서 3위를 차지하고 있다. 2위와의 격차는 2~3%, 3위와의 격차도 고작 3~8% 차이다. 10% 이상 차이가 나는 품목은 1개에 불과하다. 중국이 맘만 먹으면 언제든 따라올 수 있는 수치다. 특히 우리나라가 세계 수출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중국과 경합 중인 품목을 보면 점유율 격차가 5% 미만인 품목이 7개로 가장 많다.

5% 이상~10% 미만과 10% 이상~15% 미만인 품목이 각각 1개, 20% 이상은 3개에 불과했다. 반면 중국이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우리나라와 경합 중인 품목은 총 94개에 달했고, 그중 51개 품목이 20% 이상의 점유율 격차를 보였다. 점유율 격차가 5% 미만인 품목은 9개에 불과했다. 우리나라가 점유율 1위를 차지한 품목은 점유율 격차가 적고, 중국이 1위를 차지한 품목은 격차가 꽤 크다는 얘기다.

중국 수출품, 고급화 추세

물론 중국이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는 품목 중 일부는 사양산업에 접어들었거나 우리나라가 전략적으로 경쟁에서 제외한 것이다. 문제는 우리나라가 전략적으로 수출점유율을 늘리고 있는 분야에서도 중국의 추격이 거세다는 거다. 더구나 중국의 추격세가 이제는 더 이상 가격경쟁력을 앞세운 것만은 아니라는 데 있다. 일례로 우리나라 수출품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메모리 반도체를 보자. 우리나라의 메모리 반도체 수출액은 약 166억 달러(약 17조원ㆍ2012년 기준)로 수출 1위 품목이다. 우리나라의 점유율은 23.9%, 중국의 점유율은 20.7%다. 고작 3.2% 차이다. 우리나라가 23%, 중국이 15.2%였던 2008년과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답보’, 중국은 ‘상승’ 국면이라는 얘기다. 수출액이 세번째로 큰 탱커(선박용)도 중국이 2008년에는 3위였지만 2012년엔 일본을 제치고 2위로 올라섰다. 이제는 중국도 고급화 경쟁에 들어섰다는 얘기다.

오세환 국제무역연구원 수석연구원은 “미국 수입시장을 기준으로 보면 중국은 여전히 고급화 품목보다는 저급화 품목의 수출 비중이 매우 높은 편”이라며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화공ㆍ자동차ㆍ석유제품 등 고급화 품목에서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가 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품목이라고 해도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결코 아니라는 거다.

 
김정덕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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