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가 만난 프랜차이즈 CEO | 한정남 월드크리닝 대표

▲ 한정남 월드크리닝 대표는 “변화를 주도해야 무한경쟁시대에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월드크리닝 제공]
국내 세탁편의점 프랜차이즈는 10여개가 넘는다. 그중 영남지역에서 자타공인 1등 브랜드가 ‘월드크리닝’이다. 동네뿐만 아니라 대형마트 안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현재 영남지역에만 12개 지사 190여개의 가맹점을 운영하고 있다. 세탁매장에서 프랜차이즈로 성장한 한정남 월드크리닝 대표의 노하우를 들었다.

싱글족과 맞벌이 부부가 증가하면서 새롭게 각광받는 아이템이 세탁전문점이다. 그런데 세탁전문점이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 10여년 전만 해도 세탁전문점은 숙련된 기술자가 육체적 노동을 하는 업종이었다. 기술이 없다면 세탁전문점 창업을 생각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10여년 전부터 프랜차이즈 세탁 브랜드가 시장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이들을 ‘세탁편의점’이라고 부른다.

세탁전문점과 세탁편의점의 차이는 숙련된 기술자가 직접 세탁을 하느냐 여부다. 세탁편의점 프랜차이즈는 별도의 세탁공장을 지역마다 갖추고, 체인점에서는 세탁물을 접수해 세탁공장으로 보내는 형태다. 기계화ㆍ자동화 시스템을 통해 보다 많은 양을 빠르게, 더 저렴하게 제공하는 것이 장점이다. 영남지역에서 1등 세탁전문업체로 평가받는 월드크리닝의 출발은 미미했다. 한마디로 먹고살기 위해서였다.

한정남 월드크리닝 대표는 1998년까지 창원공단에서 제조업 기술 엔지니어로 일했다. 1985년부터 국산 자동차 자동화설비 업체에서 근무했다. 그런 그의 삶을 바꾼 계기는 IMF 외환위기다. 다니던 회사가 어려움을 겪게 되자 새 길을 찾아야 했다. 마산 합정동에 83㎡(약 25평) 규모의 가게에 세탁전문점을 오픈했다. 세탁전문점을 선택한 배경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당시 세탁소를 운영하던 지인의 권유가 있었다. 그에게 세탁기술도 배웠다. 세탁소가 그리 많지 않았기에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해 선택했다.”

 
하지만 그의 도전은 완벽히 준비된 건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선택한 게 가격이었다. 일반 세탁소에서 한벌당 5000~7000원을 받을 때 그는 3500원을 받았다. 가격이 저렴하다 보니 일량이 늘어났다. 문제는 수익성이었다. “결국 생산성이 문제가 됐죠.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어요. 엔지니어로 일을 하면서 배웠던 자동화 개념과 생산성을 세탁에 적용하기로 했죠.”

소상공인지원센터 등을 통해 자금을 지원받은 그는 2001년 마산 회성동에 세탁공장을 설립했다. 공장과 매장을 잇는 온라인시스템과 드라이클리닝 회수시스템도 도입했다. 그에게 날개를 달아준 건 2002년 대형마트인 홈플러스를 만나면서부터다. “홈플러스에서 먼저 세탁소 입점을 물어왔죠. 이유는 고객들이 대형마트 내에 세탁소ㆍ소아과ㆍ은행의 설치를 가장 원한다는 것이었어요.” 그해 5월 첫 입점을 시작으로 인지도를 높여가기 시작했다.

한 대표가 본격적인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한 것은 2011년부터다. 그 전에는 대형마트 직영점 위주로 매장을 넓혀갔다. 인지도와 서비스 만족도가 높아지면서 가맹 문의가 급증했다. 그는 월드크리닝의 장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세제와 세탁기계까지 인프라를 갖춘 일본의 시스템을 벤치마킹했다. 단순히 세탁을 잘하는 것을 넘어 품질을 보장하고 고객 관리와 서비스에 중점을 뒀다.” 한정남 월드크리닝 대표의 꿈은 최고의 세탁기업이다. 이를 위해 소비 트렌드와 기술 변화를 따라가기보단 변화를 주도하기 위해 노력한다. 아울러 세탁전문기업으로서의 재능기부도 활발하다. 독거노인이나 저소득층 이불세탁 등이 대표 사례다.
이호 더스쿠프 기자 rombo7@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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