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예산 건전성 괜찮나

 
초이노믹스의 콘셉트는 내년 예산안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첫째도 경기부양, 둘째도 경기부양이다. 당연히 적자재정이 편성됐고, 예산안은 늘어났으며, ‘슈퍼예산’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문제는 이 전략이 민간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느냐다. 시장에 돈을 쏟아붓고도 활력이 감돌지 않으면 말 그대로 ‘빚’과 ‘고통’만 남는다. 박근혜 정부가 국민을 담보로 ‘빚 부양카드’를 꺼내든 셈이다

.2015년 정부 예산은 총 376조원이다. 올해 예산안(355조8000억원)보다 5.7% 늘어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예산을 늘려 잡았으니 나라빚도 불어날 게 뻔하다. 내년 재정적자는 33조6000억원(GDP 대비 2.1%)으로, 국가채무는 570조1000억원(GDP 대비 35.7%)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정부가 큰 빚을 내면서까지 이런 ‘슈퍼 예산안’을 내놓은 이유는 분명하다. 돈을 쏟아 부어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거다. 경기부양을 줄기차게 주장해온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이를 통해 ‘경기침체-세입감소-지출축소’라는 재정구조를 탈피하겠다는 게 정부의 방침이다.

물론 예산안에는 국민의 호주머니를 채워줄 만한 것들이 꽤 있다. 예산안이 가장 큰 폭으로 늘어난 보건ㆍ복지ㆍ고용 분야부터 보자. 총 예산은 115조5000억원으로 사상 최대 규모다. 올해보다 8.5% 늘었다. 비중이  전체 예산의 30%를 넘어선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이로 인해 달라질 것들이 꽤 있다. 먼저 정규직 전환 지원금이 나온다. 중소ㆍ중견기업 사업자가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임금을 올려주면 임금인상분의 50%(월 60만원 한도)까지 정부가 1년간 지원한다. 지원 대상은 6000명이고, 160억원의 예산이 배정됐다. 대기업이 거래처 중소기업 직원을 위해 복지기금을 만들고 일정액을 출연하면 정부도 그만큼을 사내복지기금으로 쌓는다. 100억원의 예산이 배정됐다.

실직자의 국민연금 보험료는 정부가 75%까지 지원하기로 했다. 또 기업이 부도나기 전이라도 체불임금을 선지급하는 소액체당금 지원제도가 새로 도입된다. 수혜 대상은 1만7000명 정도다. 고졸 중소기업 취업자를 위한 장려금 제도도 신설된다. 올해 2월 고교 졸업자부터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졸업 후 1년 내 정부가 정한 신성장동력산업이나 뿌리산업에 속하는 중소ㆍ중견기업 취업하면 3년간 매년 근속장려금을 100만원씩 받을 수 있다. 영세 자영업자들의 재취업 제도도 마련됐다. 연매출 1억5000만원이 넘지 않으면 무료 폐업 컨설팅을 받을 수 있고, 취업 후 6개월까지 모두 100만원의 보조금도 받을 수 있다. 고용주도 1인당 연 860만원을 지원받는다.
 
늘어난 복지예산, 실속은 글쎄

내년 겨울부터는 저소득층 가구에 난방비도 지원된다. 만 65살 이상 노인, 만 5살 이하 아동, 장애인이 있는 중위소득 40%(2012년 4인 가구 기준 월 154만원) 이하 가구가 지원대상이다. 내년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3개월간 가스ㆍ등유ㆍ연탄 등을 구입할 수 있는 전자바우처(가구당 월 1만5000원~7만2000원)도 제공된다. 세부적인 지원 규모는 내년 상반기까지 확정된다. 생계급여 지원예산이 연평균 684만원에서 720만원까지 확대되고, 긴급복지 예산도 499억원에서 1013억원으로 대폭 늘어난 덕분이다.

하지만 예산이 늘었다고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예산안과 관련해 논란이 많아서다. 전문가들은 순수 복지예산이 전체 예산의 일부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위원장은 “저소득층이나 장애인 등 취약계층을 돕거나 보육비를 지원하는 데 쓰이는 순수 복지예산은 41조5000억원에 불과하다”며 “기초연금 부분만 빼고 보면 전체적인 다른 복지는 이전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복지예산”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복지예산에서 가장 크게 증가한 예산은 공적연금이다. 내년 공적연금 예산은 39조6000억원으로 올해에 비해 3조2548억원 늘었다. 그러나 이 예산은 연금 가입자들이 낸 돈을 다시 예산으로 편성한 것이라서 엄밀하게 따지면 ‘무늬만 복지예산’이다. 복지예산 중 두번째로 증가폭이 큰 노인ㆍ장애인 분야 예산은 올해보다 2조9813억원이 늘었다. 하지만 이 역시 올해 하반기부터 지급되기 시작한 기초연금이 내년에 1년치로 지출되면서 자연스럽게 증가한 예산이다. 이런 와중에 기초생활보장 예산은 5078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고, 5세 이하 아동에게 20만원씩 지원되던 가정 양육수당은 1000억원 가량 되레 줄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분야의 예산은 아예 편성되지 않거나 줄어든 게 꽤 많다. 대표적인 게 교육예산으로 사실상 올해보다 감소했다. 표면적으로는 1.6% 늘었지만 국립대 기성회비 1조3142억원을 세입 처리한 점을 감안하면 실제론 4300억여원 줄어든 셈이다. 시ㆍ도교육청에 내려 보내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39조5000억여원으로 올해보다 1조3000억여원 줄었다. 누리과정(0~5세 무상보육)과 초등 돌봄교실 등의 국고 예산은 아예 편성조차 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의 교육 분야 주요 대선공약이던 고교 무상교육도 사실상 물 건너갔다. 지자체 선거에서 진보 교육감들이 대거 당선되면서 정부가 ‘길들이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박 대통령이 줄이겠다고 약속했던 사회간접자본(SOC)분야 예산은 오히려 약 7000억원 늘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정부는 이번 슈퍼 예산안을 짜면서 모자라는 세수는 국민 세금으로 메울 예정이다. 정부가 발표한 국세 중 일반회계는 올해보다 2.4% 늘어난 214조2000억원, 특별회계는 1.0% 증가한 7조3000억원이다. 국세 증가액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소득세다. 

정부는 내년 소득세를 올해보다 5.7%(3조1000억원) 늘어난 57조5000억원으로 예상했다. 담뱃값이 인상되고, 담배에 추가로 개별소비세가 붙으면 내년 개소세도 올해보다 29.6%(7조8000억원) 늘어날 전망이다. 반면 법인세는 올해보다 0.1% 늘어난 46조원으로 사실상 동결됐다. 일반 국민의 호주머니를 뒤져 늘어난 예산을 확충하겠다는 거다. 이런 상황에서 세월호 사고의 여파로 잠잠했던 증세 논쟁이 다시 재점화될 것으로 보인다.

예산안이 20조원 이상 크게 늘었다. 사실상 이번 예산안은 ‘위험한 줄타기’인 셈이다. 적자재정으로 경기부양에 성공해 국민 호주머니도 넉넉히 채우고 세입도 늘리면 다행이다. 하지만 돈을 쏟아 붓고도 경기부양을 하지 못하면 세금은 세금대로 내고, 빚은 빚대로 늘어날 수 있다. 이번 국회가 예산안의 성과를 고려해 철저하게 심의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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