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 장기화 괜찮나

▲ 경기부양을 위한 저금리 정책의 긍정적인 효과보다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사진=뉴시스]
저금리 국면이 장기화되고 있다. 정부의 경기부양의지에 한은이 ‘금리인하’로 화답한 이후다.시장은 금리인하로 소비가 진작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공산도 있다. 가계 이자소득은 줄어들고, 연금재정은 악화되고 있어서다. 특히 금융과 실물경제의 간극이 벌어져, 버블이 싹틀 수 있다는 점은 큰 리스크다.

저금리의 명분은 경기부양이다. 정부의 경기부양정책에 한국은행이 정책공조 차원에서 금리인하를 단행한 것이다. 가계부채 등 여러 우려에도 경기를 살리기 위해 한은이 통화정책측면에서 도움을 주기 위한 조치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저금리가 경기부양에 긍정적 효과를 주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0.25% 금리를 내리면 인하 1년차에 경제성장률이 0.05 ~0.1% 높아졌다는 분석이 있다”는 한은 총재의 발언처럼 소비진작 등 일시적 경기부양 효과가 있다는 점은 사실이다. 금리인하가 불러 일으키는 통화완화 기조가 ‘심리 회복’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금리인하가 경기회복, 임금상승 등에 낙관적인 기대를 유발하고 현재의 소비지출을 늘리게 한다는 얘기다.

문제는 2.50%의 낮은 금리가 1년 이상 유지되면서 저금리의 효과가 시장에 상당 부분 반영됐다는 점이다. 금리를 추가로 인하한다고 효과가 더욱 커질 것으로 보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신용등급 상위 기업의 조달금리는 무척 낮은 상태다. 추가로 금리를 떨어뜨려봤자 별 효과가 없을 게 뻔하다. 실제로 AA- 등급 회사채의 발행금리는 3% 미만까지 하락해 있어 추가 인하의 효과가 크지 않다. 신용등급 하위 기업 역시 마찬가지다. BBB- 등급 회사채는 8% 후반대 발행금리를 유지하고 있지만 추가금리 인하가 단행돼도 비슷한 수준을 유지할 공산이 크다. 이들 등급의 AA- 회사채와의 금리차이는 저금리 국면이 장기화됐음에도 금융위기 이전 3%의 2배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신용등급 상하위 기업 모두에 기준금리 인하의 정책적 효과가 나타나기 어렵다는 얘기다.
 
저금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장점은 ‘부富의 효과’다. 저금리로 인해 주식ㆍ부동산 등 자산가격이 상승하고 가계부채의 이자부담이 줄어들어 소비가 살아날 수 있다는 논리다. 특히 가계 실질소득의 증가 없이도 주식ㆍ부동산 등 자산 가격만 올려주면 소비가 해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매력적인 정책수단이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할 점은 지금 시점에서 부의 효과가 얼마나 존재할 수 있느냐다.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인하론자로 손꼽히는 하성근 위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기준금리 인하가 소비부진을 해결하는 데 있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라면서도 “그 효과가 충분치 않을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또 “기준금리 인하가 고소득층을 중심으로 급격한 소비위축을 막는 데 기여한 반면 저소득층에 미치는 효과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기준금리를 인하해도 물가상승률와 실질금리가 낮으면 부의 효과를 통해 민간소비를 촉진하기 어렵다는 거다.

경기부양 위한 저금리 괜찮나

이 주장은 현 시점에서 해당하는 것으로 불 수 있다. 1% 후반대의 인플레이션과 제로에 가까운 실질금리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기준금리 인하로 인한 부의 효과를 기대하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가계부채 증가, 청장년층 취업난으로 소비시장이 위축됐다는 점도 금리인하의 효과를 반감시킬 수 있다. 소비의 구조적 결함이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는 금리인하를 통한 소비진작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오히려 저금리로 인해 가계부채만 확대된다면 버블 붕괴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이제 우리는 저금리 정책의 실질적인 효과가 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득得보다 실失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재 저금리 통화정책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은 가계의 이자소득 감소, 연금재정 악화 가능성, 버블 심화 가능성 등이 있다.

▲ 저금리에 따른 이자소득 감소가 가계소득 감소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사진=뉴시스]
첫째 문제는 가계의 이자소득 감소다. 2013년말 현재 가계의 순이자소득은 1조8000억원이다. 10년 전인 2003년 17조4000억원에 비해 10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다. 해마다 1조5600억원 줄어든 셈이다. 게다가 대출금리보다 수신금리가 빠르게 하락해 이자소득이 더 가파르게 줄어들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가계부채의 이자부담이 줄어 소비가 살아날 수 있다는 정부의 논리는 설득력이 충분하지 않다. 되레 이자소득을 포함한 가계소득의 증가세 둔화가 가계의 재정건전성을 약화시키면서 소비수준 저조, 가계저축률 하락 등을 초래할 가능성이 더 크다.

연금재정 악화 가능성도 문제다. 국회예산처에 따르면 국민연금 이자수입은 적립금 잠식이 시작되는 2041년부터 감소세로 전환될 전망이다. 더불어 국민연금 지출증가율이 총 재정지출 증가율을 웃돌아 재정에 부담을 줄 것이다. 투자자산의 상당부분을 채권에 의존하고 있는 공적ㆍ사적 연금의 특성상 저금리가 지속될 경우 수익성의 악화는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은행과 보험사들이 취급하는 퇴직연금의 수익률은 올해 0%대로 떨어지고 있다.

버블화 심화 가능성도 골칫거리다. 국내 경제는 버블을 형성할 수 있는 대표적 원인인 과잉 유동성, 가계부채 증가, 부동산 가격상승 등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이다. 올 2분기 가계부채는 1040조원으로 1분기보다 15조1000억원 늘어났다. 5분기 연속 사상 최대치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국내경제 규모를 감안할 때 아직까지 감내할 수 있는 부채 수준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3분기 기준금리 인하로 가계부채 증가세는 더욱 가팔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침체에 빠져 있는 민간소비가 살아나기는커녕 위축될 수밖에 없다. 저금리 영향으로 신용대출이 쉬워진 점도 장기적 관점에서 큰 문제다. 레버리지(차입) 증가로 가계부채가 급증할 수 있어서다. 이는 국내 상황이 과거 일본의 자산버블 형성시기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일본 자산버블 전철 밟나

2년 전 기준금리 정상화 논리가 등장한 적 있다. 그러나 유로존 재정위기 여파로 기준금리는 정상화되지 못했다. 현재는 경기부양 논리에 밀려 금리인하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저금리의 장기화 현상이 신용버블을 만들었던 일본을 감안하면 저금리 국면을 하루빨리 마무리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저금리 등 다양한 유동성 공급 등에도 경기위축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그 결과, 시중유동성과 실물경기 사이의 괴리가 확대, 유동성 과잉 우려도 커지고 있다. 2% 초반대의 저금리 환경이 장기화될 경우 실물경제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한 채 자칫 자산가격만 부풀어 오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따라 경기회복이 가시화될 경우 점진적인 금리 인상을 통해 부동자금을 흡수해야 한다. 부동산 관련 가계대출 억제정책을 꾸준히 추진할 필요가 있다.
김명실 KB투자증권 선임연구원 makim@kbse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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