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4가지 빈틈

냉엄한 ‘사각의 링’. 승패를 좌우하는 건 ‘빈틈’이다. 누가 ‘빈틈’을 포착해 공세를 퍼붓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냉엄한 ‘정글경제’도 마찬가지다. 경쟁자는 빈틈을 노리고, 1위 업체는 빈틈을 없애는 데 온힘을 쏟는다. 요즘 국내시장, 참 이상하다. 기 한번 제대로 못 펴던 외국업체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한국경제, ‘빈틈’이 생겼다.

# ‘가구공룡’ 이케아가 입성한다는 소식에 국내 가구업계가 들썩이고 있다. 덩치가 워낙 커서다. 이케아그룹이 2013년(회계연도 기준) 전 세계 42개 국가 345개 매장에서 거둔 매출액은 292억 유로(약 44조5000억원). 어림 잡아도 국내 가구시장 규모의 6배 이상이다. 이케아의 등장에 일부 가구업체가 곡소리를 내는 이유다. 특히 이케아는 값싸면서도 품질 좋은 DIY(조립가구)로 명성이 자자하다.
 

 
디자인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영세가구업체는 물론 대형가구업체도 상대하기 버겁다. 한편으론 국내 가구업계가 그만큼 경쟁력이 약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실제로 국내 가구업계는 연구개발(R&D)에 소홀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시장점유율 1위 업체 한샘의 지난해 매출액 대비 R&D 비용은 0.27%, 현대리바트는 0.47%에 그쳤다. 중소가구업체 역시 마찬가지다.

장엽 경민대(가구인테리어디자인) 교수가 2009년말 경기도 지역 152개 가구 업체를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신제품ㆍ디자인 전문인력이 1~2명에 불과한 회사는 전체의 절반에 달했다. 심지어 “전문인력이 없다”는 응답도 21.1%를 차지했다. 그 결과, 국내 가구 업계의 생산성은 현저히 떨어졌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국내 제조업 생산능력 지수는 2008년 89.6에서 지난해 108.7점으로 19.1점 올랐다. 하지만 가구제조업의 경우 같은 기간 109점에서 110.7점으로 1.7점으로 오르는 데 그쳤다. 어쩌면 국내 가구업계가 이케아에 ‘틈’을 줬을지 모른다.

# 2009년 국내에 첫선을 보인 애플 아이폰은 국내 휴대전화 제조업체에 ‘충격’ 그 자체였다. 스마트폰에 둔감할 거라는 예상을 뒤엎고 소비자들이 ‘아이폰’에 열광했기 때문이다. 사실 아이폰 바람이 국내시장에 스며들 만한 틈을 휴대전화 제조업체가 만든 측면도 있다. ‘위피(WIPI)’라는 단일플랫폼을 만들어 외국산 휴대전화의 국내시장 진입을 차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도입 규제를 만들어 무덤을 판 장본인도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이다. 아이폰 열풍 이후 국내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은 ‘암흑기’를 보냈다. ‘애니콜 신화’에 취했던 삼성전자는 ‘옴니아 시리즈’로 맞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아이폰과 비교해 턱없이 부족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로 욕만 먹었다. 이렇게 굴욕적 2년을 보낸 뒤에야 삼성전자는 갤럭시S2로 예전의 위상을 되찾기 시작했다. LG전자의 상황은 더 심각했다.

아이폰 열풍이 한창이던 2010년부터 2011년까지 국내 스마트폰 시장에서 LG전자의 존재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2011~2012년엔 팬택에 스마트폰 점유율 2위를 내줄 정도로 체면을 구겼다. ‘초콜릿폰’이 대박을 터뜨리면서 피처폰 왕국으로 불렸던 LG전자로선 처참한 성적표였다. 뒤늦게 전열을 가다듬은 LG전자는 2012년 9월 ‘G(옵티머스 G)’가 론칭된 후에야 재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시장의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지 못하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냉정한 진리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틈’을 보이는 순간 무서운 경쟁자가 치고 들어오기 때문이다.

중국발 ‘저가’ 스마트폰의 공세

바로 지금도 ‘위기상황’이다. 이번엔 ‘저가’를 내세운 중국 스마트폰들이 국내 IT업계를 흔들고 있다. 30만원대의 저렴한 가격, 품질, 경쟁력, 이 삼박자에 국내 소비자가 춤을 추고 있다. 지난 7월말 전국통신소비자협동조합이 해외직구업체 리퍼비쉬와 인터넷 쇼핑몰 G마켓이 제휴해 샤오미의 홍미노트와 Mi3를 ‘번들 형식’으로 팔자마자 G마켓 공기계 부문에서 판매 1위에 오르는 이변을 연출하기도 했다. 문제는 중국의 저가 스마트폰 공세가 더 강력해질 거라는 점이다.

 
중국 전자업체 화웨이는 ‘아너6’ 판매를 예고한 상태다. 9월 11일 국립전파연구원에서 전파인증까지 받은 상태로 조만간 LG유플러스의 알뜰폰 사업자(MVNO) 미디어로그를 통해 시장에 출시될 전망이다.  이런 저가열풍은 삼성전자에 위협을 주고 있다. 삼성전자는 3분기 영업이익이 10분기 만에 처음으로 5조원대로 주저앉을 것이라는 전망에 홍역을 치르고 있다.

실적 부진의 원인으로는 과도한 마케팅비용, 하이엔드 스마트폰 판매 부진으로 인한 무선사업부 평균판매가격(ASP) 하락, 아몰레드 부문 출하량 감소와 가동률 하락, 시스템반도체 부문 적자 확대, 월드컵 이후 남미ㆍ브라질 TV 판매 둔화, 에어컨 매출 감소 등이 꼽힌다. 삼성전자 포트폴리오가 지나치게 ‘스마트폰’에 집중했다는 지적도 있다. 아직까지 이렇다 할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구글과 애플 등 글로벌 IT 회사들이 적극적인 인수ㆍ합병(M&A)으로 몸집을 키우고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왔던 것과 대비된다.
 
스마트폰 세계시장 점유율 1위라는 ‘실적’에 취해 시장의 변화를 둔감하게 바라본 게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는 셈이다. 유럽연합 집행위원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2012년 R&D 투자액 부문에서 83억 유로를 지출해 세계 2위를 차지했지만 그만한 효과는 보지 못했다. 그나마 삼성은 나은편이다. 우리나라 기업의 R&D 지출 총액은 일본의 20.7%, 독일의 45.6%에 불과하다.

특정 산업에 투자가 편중돼 있는 것도 한계다. 정보ㆍ통신업 기업의 R&D 지출 비중이 약 50%로 매우 높은 반면 서비스 분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다. 인재를 육성하는 데도 소홀하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두뇌유출(Brain Drain)’ 순위는 37위에서 46위로 떨어졌다. 중국의 두뇌유출 순위는 같은 기간 51위에서 45위로 올랐다.

▲ 국내 고급두뇌 유출이 심각하다. 열악한 연구환경, 탑다운식 명령체계와 조직문화는 우수 연구인력 유출의 주된 이유다.[사진=뉴시스]
실제로 중국 정부는 ‘천인계획’ ‘백인계획’ 등으로 연구인력을 파격적으로 대우하고 고급두뇌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천인계획’은 과학기술 분야 등에서 국가적 인재 1000명을 육성하기 위해 중국계 해외석학을 영입하는 프로그램이다. 1인당 1000만 위안의 일회성 보조금을 지급(개인 소득세 면제)하고 가족에게 영주권 또는 장기거주 비자 신청자격 등을 부여한다.

김영진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중국정부는 필요한 분야에 전문지식을 지닌 이들에게는 액수 따지지 않고 파격적인 대우를 한다”며 “이런 물량공세로 자국의 우수 인재는 물론 외국 인재까지 대거 끌어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 각국의 기업들은 이렇게 경쟁력을 쌓고 두뇌를 유치하며 R&D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약육강식이 판치는 정글경제에서 살아남기 위해 온갖 전략을 가동하는 거다. 하지만 국내기업은 ‘제살 깎아먹기’ 경쟁에 급급하다.

혁신 없는 제살 깎아 먹기식 경쟁

오비맥주의 카스 ‘산화취’ 이슈는 진흙탕 싸움의 일단이다. 심지어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유럽 최대 가전전시회 IFA 기간 중 세탁기 파손 의혹을 둘러싸고 옥신각신하고 있다. 독일 베를린의 한 가전제품 판매점에서 조성진 LG전자 HA사업본부장(사장) 이 삼성전자의 신형 세탁기를 파손했다는 게 싸움의 골자다. 국내 기업들이 애먼 혈투를 벌이는 사이 글로벌 기업의 견제와 신흥국 기업의 추격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무엇이든 ‘틈’이 생기면 위기가 시작된다. 단단한 둑방도 개미구멍 하나에 무너지는 법이다. 한국경제, 위기가 시작됐다.
김미선 더스쿠프 기자 story@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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