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직장인 가계부

직장인 삶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이제는 돈을 모아 결혼을 하겠다는 꿈도 꾸기 어려운 실정이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문화생활을 즐길 여력도 없다. 물가는 치솟고 소득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어서다. 말그대로 ‘물가高 민생苦’ 시대다. 소비자들이 한푼이라도 줄이기 위해 떨이몰까지 방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월급 빼고 안 오른 게 없다. 직장인들의 삶이 적적 팍팍해 지는 이유다.[사진=뉴시스]
# 33세의 직장인 박영현씨. 그는 IT기업에서 영업관리직으로 근무하고 있다. 그의 월급은 세후 180만원 정도. 부모와 떨어져 사는 그는 구로구 온수동에 월세를 얻어 산다. 33㎡(10평) 규모의 이곳 월세는 35만원가량. 회사 근처인 가산디지털단지역쪽에 비슷한 조건으로 월세를 얻으려면 한달 45만원이다. 인터넷ㆍTV요금ㆍ휴대전화 요금으로 10만원, 전기요금과 각종 공과금으로는 약 3만원을 쓴다. 겨울에는 난방비까지 합쳐 20만원이 고정비로 나간다. 한달 교통비 6만원, 식비와 이것저것 제하고 나면 남는 게 없다. 남자친구는 있지만 저축도 결혼도 언감생심. 친구의 분유값, 기저기값 타령을 듣고 있으면 더 그렇다.

허리 졸라매는 직장인들

# 두돌짜리 아들과 갓 돌이 지난 딸을 키우는 주부 김희진(31)씨. 그녀의 남편은 삼성전자에 다닌다. 과장 직책의 남편 연봉은 5000만원 정도. 남들은 “대기업 과장을 남편으로 둔 전업주부”라며 부러워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박씨의 남편은 매일 6시30분에 출근해 밤 12시에 퇴근하고 토요일에도 출근해 저녁 8시에 퇴근한다. 일요일에도 회사에서 걸려오는 전화에 시달린다. 그래서 두 자식을 도맡아 키워야 한다. 살림도 녹록지 않다.

남편이 벌어다 준 수입 중 3분의 2는 먹는 것, 아이 기저귀, 각종 공과금, 기름값으로 쓴다. 남은 전세 대출금을 갚아야 하기 때문에 저축할 여유는 아예 없다. 박씨의 모토는 ‘안 쓰고 안 입히고’다. 조금이라도 아껴 쓰기 위해서다. 외식은 웬만하면 안하고 커피도 집에서 타 마신다. 시댁에서 이것저것 챙겨주면 고맙다고 받아온다. 앞으로가 문제다. 아이들에게 들어갈 교육비며 전셋값이 오르기라도 하면 문제다.


 
월급은 오르지 않는데 물가는 치솟는다. 특히 커피값이 많이 올랐다. 3년 전 스타벅스에서 3900원이면 아메리카노(톨 사이즈) 마실 수 있었지만 지금은 4100원을 내야 한다. 5년 전에는 3300원이었다. 커피빈 아메리카노(스몰) 가격은 무려 4500원이다. 그나마 커피값이 저렴한 이디야도 직장인을 향해 배신의 칼날을 날렸다. 지난 10월 1일부터 아메리카노와 카페라떼를 비롯한 일부 음료 가격을 평균 227원 인상했다. 이디야의 아메리카노 가격은 기존 2500원에서 280 0원으로 올랐다.

‘질소과자’ 조롱하는 뗏목 등장

과자를 사먹는 것도 이젠 부담스럽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3년 전(2011년 8월) 초코파이(12개입ㆍ420g) 평균 판매 가격은 2536원이었는데 지난 8월 3774원으로 무려 48% 올랐다. 국민 스낵 새우깡 한봉지(90g) 가격은 같은 기간 722원에서 890원으로 23% 올랐다. 이 때문일까. 국내 과자는 제품에는 ‘질소과자’라는 불명예스러운 딱지가 붙었다. 유튜브에는 ‘질소를 샀더니 과자가 서비스?’ 라는 제목의 동영상이 등장했다.

이 동영상에는 대학생이 과자 60봉지를 이어 만든 뗏목에 올라 얕은 물을 건너는 퍼포먼스가 담겨 있었다. 내용은 얼마 없고 3분의 2 이상이 질소로 채워진 과자를 조롱하는 동영상이다. 이들은  내친김에 9월 28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 잠실한강공원에서 과자 뗏목 한강 건너기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먹거리에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다. 매년 오르는 휴대전화 요금은 가계 살림을 악화시키는 결정적인 요인 중 하나다.

한 리서치조사 기관에 따르면 휴대전화 평균요금은 2011년 상반기 4만9000원에서 올 상반기 5만5800원으로 약 12% 올랐다.  문화생활도 사치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에 따르면 올초 CGVㆍ롯데시네마ㆍ메가박스 3대 멀티플렉스 영화관 모두 ‘요금 다변화’를 이유로 2D영화 관람료를 1000원씩 인상했다. 3개 영화관 주요시간대의 영화티켓은 주중 9000원, 주말 1만원이다.

세금 부담도 늘었다. 기획재정부ㆍ안전행정부ㆍ국세청 등에 따르면 국세와 지방세를 합친 지난해 국민 1인당 평균 세금 부담은 509만1000원으로, 2010년 459만2000원보다 50만원가량 늘었다. 교통비 역시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10월부터 서울시 택시 기본요금은 기존 2400원에서 3000원으로, 거리 요금은 기존 144m당 100원에서 142m당 100원으로 올랐다. 지하철 신분당선의 기본요금은 기존 1750원에서 8월 2일 1950원(성인 교통카드 기준)으로 11.4% 올랐다.

 
물가는 치솟는데 월급은 제자리다. 올 2분기 상용근로자 5인 이상 사업체의 근로자 1인당 실질임금은 월평균 277만2643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76만7830원)보다 0.2 %(4813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증가율이 마이너스로 돌아선 2011년 4분기(-2.4%) 이후 2년 6개월 만에 최저치다. 소득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데 소비는 늘고 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근로자 가구 기준 2011년 전체 가계지출에서 비소비지출(세금, 사회보험료 등)이 차지하는 비중은 24.46%였는데 지난해 25.15%로 증가했다. 이는 직장인의 소비여력이 줄어들었음을 의미한다.

이런 이유로 합리적 소비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저렴한 수입과자나 편의점 PB제품으로 눈길을 돌리는 소비자가 갈수록 늘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설탕과자(백색 초콜릿을 포함하며 코코아를 함유한 것 제외) 수입중량은 2011년 2만942t에서 지난해 2만4660t으로 약 17%, 수입금액은 8744억 달러에서 1조2037억 달러로 약 37% 증가했다. 지하철 홍대입구역 대로변에서도 수입과자 전문점이 등장했을 정도다.

수입제품과 유통기한 임박식품, 스크래치 상품 등 소위 B급 상품 등을 모아 파는 떠리몰이라는 사이트는 오픈한 지 10개월 만에 회원수가 3만4000명, 일 1만명 이상이 방문했다. 식품 안전성을 중요시하는 국내 소비자들의 성향을 고려했을 때 이례적이다. 떠리몰 관계자는 “지난해 5월 오픈 이후 월 매출 상승률이 매달 70% 이상 성장하고 있다”며 “특히 온라인 검색을 통해 10원이라도 가격이 저렴한 제품을 구매하는 20~30대 여성고객들이 많다”고 말했다.

불편해도 저렴하면 ‘그만’

해외직구가 늘어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조금 더 저렴한 가격에 제품을 사기 위해 소비자들이 몰리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 8월 말까지 해외직구 전자상거래 규모는 988만3000건, 9억5446만7000달러를 기록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할 때 건수는 45%, 금액 기준으로는 53%나 증가했다. 중국 스마트폰을 공동구매하는 이들도 늘었다. 백화점과 대형마트의 매출 상승률이 둔화된 반면 아울렛과 소셜커머스나 온라인몰 등의 매출이 점점 늘고 있는 것도 합리적 소비풍조를 잘 보여준다.

▲ 터무니없이 높은 빙수값이 도마에 올랐다. 이 때문일까. 최근 부산 지역에는 알바시급으로 먹을 수 있는 시급빙수가 등장해눈길을 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문제는 앞으로다. 직장인들의 살림살이는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앞으로 2~3년에 걸쳐 주민세가 2배 이상 오른다. 자가용과 생계형 승합차를 제외한 자동차세는 100% 대폭 인상된다. 담뱃값도 오른다. 보건복지부는 내년부터 담뱃값을 2000원(2500원 담배 1갑 기준) 인상한다고 밝혔다. 교통비 인상도 예고돼 있다. 국토교통부는 최근 수도권 광역급행버스(M버스) 요금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는 지난 6월 광역급행버스 기본요금을 2000원에서 3000원으로 50% 올려달라는 내용으로 요금 조정을 신청했다. 현재 광역급행 버스는 30㎞ 기준 기본요금이 2000원, 이후 5㎞마다 100원씩 올라간다. 요금인상이 이뤄질 경우 경기도 지역에서 서울 지역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 교통비 부담이 가중될 전망이다.

물가감시센터 관계자는 “최근 소비자 체감 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생필품 위주로 가격 인상이 많이 이뤄졌다”며 “특히 독과점 시장에서 시장 1위 업체가 가격 인상을 선도하면 후발 기업들이 따라 나서는 동조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기업들이 이같은 방식으로 수익을 극대화하면서 서민경제를 위협하고 있다”며 “시급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지금의 위기가 서막에 불과하다. 정부가 시장에 돈을 풀면서 경기가 살아날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빚으로 일으킨 경제는 빚만 남긴다’는 말처럼 서민경제는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 이미 민생지수는 2003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민생고를 극복할 만한 대책이 필요한 이유다.
김미선 더스쿠프 기자 story@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