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은 레시피에 갇히지 않는다
맛은 레시피에 갇히지 않는다
  • 이필재 인터뷰 대기자
  • 호수 110
  • 승인 2014.10.01 09: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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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하 브레드피트 대표

▲ 이철하 브레드피트 대표는 “상호 논란을 잠재운 건 결국 빵 맛”이라고 설명했다.[사진=지정훈 기자]
SNS와 바이럴 마케팅으로 뜬 ‘동네 빵집’ 브레드피트의 이철하(44) 대표는 영화감독이다. 영화감독이 된 것, 빵집을 차린 것이 인생의 두번의 기회였다면 이제 이야기꾼으로서 세번째 기회를 잡고 싶다고 말했다.

“빵맛은 재료가 결정합니다. 좋은 밀, 잘 고른 소금과 물에 달렸죠. 소금에 따라 달라지는 빵맛의 변화는 경이로울 정도예요. 이 셋을 합쳐 100으로 잡으면 밀의 비중이 50% 이상, 소금이 30~40%를 차지합니다.” 여의도의 소문난 ‘동네 빵집’ 브레드피트의 이철하 대표는 “방부제, 개량제, 유화제 등의 화학물질은 일절 첨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매일 새벽 직접 반죽한 빵을 구워 당일 판매하고 무無첨가제를 고수하며 손님들에게 친절하게 제품 이야기를 해드리는 게 브레드피트의 3가지 기본 원칙입니다. 이 원칙을 지키려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지 않죠. 대량 생산을 하려면 이것저것 첨가할 수밖에 없거든요.”

브랜드 빵집은 재료를 대량 구매하고 대량 생산을 하기 위해 첨가물을 넣는다. 70~ 80% 파베이킹(사전 가공)을 하기도 한다. 필요해서 하는 일이지만 그만큼 신선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브랜드피트의 빵값은 브랜드 빵집보다 비싸다. 브레드피트는 손님과의 소통 기회를 만들려 고객이 빵을 직접 집지 못하도록 시스템을 만들었다. 태그에서 빵에 대한 설명도 빼 버렸다. 소비자와 친근해지려는 시도다. 고급 음식점은 셰프가 나와 음식에 대해 직접 소개하고 그럴 때 고객의 만족도가 높아진다는 것에 착안했다. 이렇다 보니 계산대에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다. 그 바람에 계산대의 줄이 길어져 실제보다 장사가 잘 되는 집처럼 보인다. 이런 방식을 불편해 하는 고객도 있다.

빵은 맛이 기대에 못 미치거나 불만스럽더라도 사람들이 반품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냥 발길을 끊는다. 일종의 저관여低關與 제품이랄까? 그가 늘 긴장하는 이유다. 빵은 맛을 유지하려 천연 발효종(천연 이스트)으로 매일 일정량만 열과 성을 다해 만든다. 그러다 보니 오해도 생긴다. 기자가 이 대표와 인터뷰한다고 페이스북에 한 줄 올렸더니 한 후배가 “오후면 빵이 거의 떨어지는데 아무래도 마케팅 전략 같다”고 댓글을 달았다. 이 대표는 “당일 생산 당일 판매 원칙을 지키려 문 닫을 때까지만 빵을 판매한다”고 설명했다. “전화로 예약하면 저녁 귀가 시간에 픽업할 수 있습니다. 한두 개도 예약을 받아요. 빵이 남으면 여기 저기 보냅니다. 그래도 남을 땐 가슴이 아파요. 버려야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먹어버리기도 합니다.”

브레드피트는 테이크아웃 베이커리 카페다. 그가 직접 원두를 볶는 커피는 매일 두 번 직화 로스팅을 해 24시간 안에 판매한다. 33㎡(약 10평)에 불과한 아담한 매장은 여의도의 한 주상복합빌딩 지하 1층에 자리잡고 있다.(같은 층에 2배 규모의 빵ㆍ커피 공장이 있다.) 간판이 가게 안쪽에 달려 있어 연극 무대를 연상시킨다. 전체적으로 어두운데 스팟 조명등이 빵과 커피, 직원이 일하는 주방 내부를 비춘다.

 
상호 브레드 피트(Bread Fit)는 내 몸에 딱 맞는 빵이라는 뜻이다. 섹시 가이에서 연기파 배우로 성장한 할리우드 스타이자 안젤리나 졸리의 남편 브래드 피트와 발음이 거의 같다. 이런 작명에 대해 애초에 주위에선 반대를 했다. “부모님을 비롯해 지인들이 반대했고 브랜드 컨설턴트도 위험하다며 말렸습니다. 실존 인물의 경우 범죄에 연루돼 구속당할 수도 있고 사망할 수도 있다는 것이죠. 오픈하고 나서도 한동안 사람들이 킥킥대 창피했었어요. 우리 집 빵과 커피가 맛있다고 소문이 나면서 이름 논란이 잦아들었죠. 음식점은 역시 맛입니다. 맛있는 집이 결국 원조가 되는 거예요.”

요즘은 이름 잘 지었다 소리를 듣고 이름 보고 찾아오기도 한다. 로열티 사업을 해 보려 일본과 중국에 상표 등록도 했다. 마케팅과 홍보는 처음부터 트위터 등 SNS를 활용했다. 바이럴(입소문) 마케팅이다. 비용이 안 들었고 파급이 빨랐다. 매장에서의 대화처럼 고객과 일대일 소통이 가능하다는 이점도 있었다. 지금까지 마케팅 경비는 지출한 일이 없다. 전단지조차 안 돌렸고 세일도 하지 않는다. SNS에 주력한 덕에 신제품을 출시하거나 명절 때 등 시즌이면 매출의 30 ~40%를 온라인 주문으로 판다.

상호 논란 ‘맛’으로 극복

순탄하기만 했던 건 아니다. 개업 초 동업한 선배가 1년8개월 후 주방 직원을 데리고 나가 비슷한 이름의 빵집을 차렸다. 돈 문제로 빚어진 일이었다. 혼자 남은 그는 새 셰프와 두 달간 가게 문을 닫다시피하고 빵을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레시피도 없이 빵맛을 복원했다. 직원이 그만두면서 셰프를 빼가기도 했다. 다른 셰프들과도 견해차로 갈등을 빚었다. 그는 “세상 물정 모르는 영화감독에게 큰 가르침을 준 은인들”이라고 말했다. 셰프를 포함해 현재 브레드피트의 9명 직원 중엔 빵집 출신이 없다. 비전문가로 이뤄진 팀웍. 5대째인 현 셰프는 건설업 종사자 출신으로 3년여 전 막내로 들어와 셰프가 됐다. 오페라 의상 담당 출신도 있다. 비전문가팀의 장점은 모험적인 시도를 감행한다는 것이다.

브레드피트의 빵은 빵 배달 전문 벤처 헤이브레드가 사전에 주문을 받아 새벽에 배달도 한다. 그가 프랜차이즈할 생각을 접고 누군가 빵을 배달해 줬으면 할 때 마침 헤이브레드가 생겨 의기투합했다. 단발 주문 수요는 내용물이 흔들리지 않게 특수 제작된 함을 탑재한 퀵서비스로 소화한다. 1만원어치 빵을 먹으려 2만원의 퀵 비용을 부담하는 사람들도 있다. 서울 동교동 부근 ‘어쩌다 가게’의 8개 점포가 공유하는 카페 라운지엔 그가 매일 볶는 커피 원두도 공급한다. 관리만 하는 사장이 돼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로스팅 기술을 배웠다. 좋은 커피를 마시고 싶어 하는 기업체에도 그라인딩하지 않은 커피를 배달한다. 재료로는 최상급의 생두를 사용한다. 동네 빵집은 브랜드 빵집의 골목 침투로 생존의 위기를 맞았다. 일부는 차별적인 노하우와 새 장비로 재무장해 살아남았고 다수는 브랜드 빵집과 저가 빵집에 협공당해 문을 닫았다. 브레드피트는 ‘위기의’ 동네 빵집에 대안을 제시했다.

▲ 브레드피트의 빵ㆍ커피 공정[사진=지정훈 기자]
이 대표는 현역 영화감독이다. ‘사랑 따윈 필요 없어’, ‘폐가’, 다큐멘터리 영화 ‘안녕?! 오케스트라’ 등을 연출했다. 영화감독으로 데뷔하기 전엔 CF와 뮤직 비디오 감독으로 일했다. 보아, 동방신기, 조성모 등의 뮤직 비디오를 연출했다. 잘나가는 뮤직 비디오 감독이었지만 영화로 전향한 후엔 빛을 못 봤다. 단편영화로 여러 번 상을 받았지만 장편은 흥행도 평가도 저조했다. “교만했습니다. 첫 장편영화가 부진했는 데도 두번째 영화를 잘 만들 수 있을 거 같았죠. 경제적으로도 궁핍해져 벼랑 끝에 선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담금질도 됐어요.”

‘안녕?! 오케스트라’는 MBC가 방영한 다큐멘터리를 극장용으로 만든 일종의 감독판(디렉터스컷)이다. 세계적인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이 악보도 볼 줄 모르는 안산 지역 다문화 가정 및 문제 가정 아이들과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콘서트를 준비하는 과정을 담았다. 이 과정에서 어린 시절 이민 2세로 미국에서 차별을 겪은 용재 오닐과 이 아이들이 겪는 변화를 포착했다. 이 영화를 편집하며 그 역시 영향을 받았다.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단편 영화 만드는 법을 가르치는 것도 ‘안녕…’ 이후 달라진 삶의 한 단면이다.

빵집을 차린 건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영화계가 2006년을 정점으로 내리막길에 들어서면서 개런티가 나오지 않는 비제작기에 작품 개발비 명목으로 감독에게 지급되던 사실상의 급여가 사라졌다. 브레드피트가 자리를 잡은 덕에 그는 투잡을 뛰지 않아도 되는 행복한 영화인이 됐다. 과거보다 더 행복해졌을까? “하늘의 선물일 뿐 경제적 여유가 생겼다고 만족도가 높아지지는 않습니다. 여전히 부부 싸움도 하고 사교육비에 짓눌려 있죠. 프랜차이즈화를 해 부자가 됐어도 행복도엔 차이가 없을 걸요.”

그는 브레드피트를 연부역강한 30대에 열었다면 알거지가 됐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40대는 욕심 부리지 않고 죽지 않게 잘 키우는 일에 집중할 나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부업으로 처음부터 빵집을 생각한 건 아니었다. 와인, 커피를 거쳐 커피도 파는 베이커리 카페로 발전했다. 이 셋은 인류와 함께한 가장 오래된 음식이다. 앞으로도 수요가 꾸준한 음식으로 남을 것이다. 오래된 미래? 프랑스의 농학자 파르망티에는 “빵은 자연이 준 근사한 선물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음식”이라고 말했다.

✚ 브래드피트의 경쟁력이 뭔가요?
“9명의 직원이 똘똘 뭉쳐 자기 일처럼 열심히 하고 최고의 서비스를 하는 겁니다. 빵은 기술이 아니라 기본입니다.”

그는 홀에서 일하는 2년차 막내 직원이 1년쯤 됐을 때 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나는 브레드피트를 떠나지 않을 거예요. 사장님이 가장 열심히 일하는 가게이기 때문이죠.” 그는 그 말을 듣고 고무되기도 했지만 그 말대로 하려 노력하게 되더라고 덧붙였다.

 
신뢰 쌓으려 실적 매일 공개

“청소처럼 직원들이 하기 싫어하는 궂은 일은 제가 하려고 합니다. 그게 맞는 게 그럴 때 직원들이 프라이드를 갖고 열과 성을 다하거든요. 급여와 보너스를 많이 준다고 해서 오래 있는 것도 아니에요. 와이프에게 비싼 반지 선물한다고 약발이 오래 가나요?”

빵을 더 만들려 오븐 숫자를 늘리려 했을 때 손으로 빵 반죽을 하는 직원들이 반대했다. 더 많이 만들면 손이 아프다는 것이 반대 이유였다. 사장으로선 알기 어려운 사정이었다. 그는 오븐 수를 늘리는 대신 좋은 오븐으로 설비를 바꿨다. 그는 날마다 매출액과 순이익을 전 직원에게 공개한다. 셰프와 매니저는 공개에 반대했었다. 직원들이 경영 상황을 알게 되니 번 돈을 사장이 독식하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다. “불신이 쌓이면 사장이 열심히 일해도 곱게 안 보게 돼요. 인지상정이죠.”

빵집을 차려 매일 일용할 빵을 만들면서 그가 얻은 것이 있다. 무슨 일이든 하루도 거르지 않고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를 만들지 않는 휴지기에도 영화에 대한 생각을 놓지 않고 스토리를 개발한다. 시나리오를 쓰고 각색도 한다.

✚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나요?
“한때 닥터 지바고 같은 영화를 찍는 대박 감독을 꿈꿨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영화감독으로서 영화 작가로서 꾸준히 자기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한 인간이 태어나 청소년기를 보내고 노후를 지나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영화로 만들어 보고 싶어요. 가공 인물의 전기랄까요? 작은 이야기면 어떻습니까?”

✚ 좋은 영화의 조건이 뭐라고 보나요?
“진심을 담은 빵처럼 진심을 담아낸 영화죠. 좋은 철학과 가치관을 지닌 감독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내는 이야기?”

이 대표는 독립영화를 제작 중이다. 연출은 후배 감독이 맡았다. 커피점에서 일하는 여자 아르바이트생이 주인공. 시나리오에 빵집을 하며 쌓은 경험이 녹아들었음은 물론이다. 그는 앞으로 식음료에 얽힌 스토리와 에피소드를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을 거 같다고 말했다. “이런 쪽에 능한 감독이 빛을 볼 날도 있지 않겠느냐”며 웃었다.

 
✚ 우리 영화의 문제점이 뭐라고 보나요?
“대기업이 영화산업에 뛰어들면서 다양성이 줄어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영화를 주로 만들다 보니 소수가 찾는 영화는 상영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죠. 영화로 큰돈을 번 쪽에서 다양한 영화, 소수의 목소리도 관객과 만날 수 있도록 창구를 넓혀줘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영화산업이 건강해 져요. 만일 브래드피트가 우유크림빵에 강하다고 해서 그것만 만든다면 처음엔 매출이 늘어나겠지만 결국 고객으로부터 외면당하고 말 겁니다. 흥행성이 떨어지더라도 우리 시대의 이야기를 하려는 감독들을 지원해 줘야 합니다. 제가 잘나가는 흥행 감독이라면 이런 이야기를 안 했을지도 모르죠.”
이필재 더스쿠프 인터뷰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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