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도 너무 다른 하도급 문화

▲ 미국의 글로벌 기업 마즈는 협력업체와 계약 시 윤리경영을 준수할 것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2011년 유럽의회는 대ㆍ중소기업 간 공정거래를 위해 규제법안을 개정했다. 하도급이 늘어나면서 발생할 불공정행위를 막기 위해서다. 이런 규제법안이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지면 어떨까. 아마 대기업의 반발이 거셌을 거다. 하지만 독일의 대기업은 단 한 곳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과연 이유가 뭘까.

공정거래위원회가 칼을 뽑았다. 올 11월까지 10만개 기업의 하도급 거래실태를 조사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조사 대상은 원사업자 5000개, 수급사업자 9만5000개. 웬만한 업체는 모두 조사하겠다는 얘기다. 재계는 또 “규제 때문에 못 살겠다”며 엄살을 피운다. 한국경영차총협회 측은 “사내하도급 실태를 현장조사하는 건 부당한 영향력의 행사”라며 “일자리 창출과 기업투자를 위축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부 보수 언론은 “파견과 사내하도급 등을 모두 규제하는 곳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며 현행 하도급 규제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다고 비판했다. 과연 그럴까.

미국에 ‘마즈(Mars)’라는 기업이 있다(설립 당시엔 영국 기업). 미국 유력 경제전문지 포춘의 ‘세계에서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에 지난해에 이어 올해(76위)도 선정된 곳이다. 스니커즈(Snickers), m&m’s 등 초콜릿을 생산하는 업체다. 1911년에 설립한 마즈의 연 매출액은 약 35조원. 현대차와 맞먹는 수준이다. 이 기업이 ‘일하기 좋은 기업’에 선정된 건 우연이 아니다. 상생과 공생이라는 철학을 기초로 직원ㆍ상사와 원청업체ㆍ협력업체 간 동등한 권리를 강조하고 준수하는 기업이라서다.

일단 자신들이 협력업체와 하도급 계약을 할 때, 상호 간에 지켜야 할 행동강령을 문서로 만들어 주고받는다. 내용은 매우 광범위하다. 마즈의 협력업체는 이런 까다로운 규정을 지킬 것을 약속해야만 거래를 할 수 있다. 식품을 취급하는 만큼 협력업체는 제품의 안전성을 확보해야 한다. 영업을 할 때에도 규정된 선에서 윤리를 준수해야 한다. 협력업체가 사용하는 소프트웨어는 정품이어야 하고 불법복제는 안 된다. 협력업체가 노동자에게 부당한 노동행위를 강요하거나 권리를 침해해서도 안 된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노동자에게도 자신의 노동환경이 어떤지 명확하게 설명하고 정보를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 마즈는 협력업체가 이런 사항을 지키지 않으면 곧바로 계약 관계를 끊는다. 반대로 마즈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협력업체들도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이런 규정을 만들라고 강요한 이가 없다는 점이다. 마즈는 이런 행동강령을 스스로 정립해 적용하고 있다.

글로벌 스탠더드는 ‘상생’

또 다른 기업이 있다.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독일 기업 ‘브로제(Brose)’다. 1908년 설립한 브로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자동차용 모터 기술을 갖춘 자동차 부품 생산업체로 한해 매출액은 약 5조원 수준이다. 자동차 전기모터 업계에서는 세계 1위다. 특이한 건 이 기업의 고객사가 세계 모든 자동차 회사라는 점이다. 독일의 메르세데스 벤츠ㆍBMWㆍ아우디ㆍ폭스바겐, 미국의 GMㆍ포드, 이탈리아의 페라리, 일본의 도요타ㆍ혼다ㆍ미쓰비시, 프랑스의 르노, 한국의 현대차그룹까지 아우르고 있다.

이 기업이 이렇게 고객선을 다양화하면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완성차 업체들이 부품업체가 경쟁사의 일감도 수주할 수 있도록 도와준 덕분이다. 스테판 하루사 브로제코리아 CEO는 지난해 대구에서 열린 한 포럼에서 “독일 완성차 업체들은 부품업체의 고객선 다양화가 부품업체의 자체적인 기술개발을 돕고, 부품의 질을 높여 결국엔 자기 이익으로 돌아온다는 걸 알고 있다”며 “고객선이 한두곳에 불과한 한국의 부품업체들도 성장을 위해서는 고객선을 다양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사례에서도 눈여겨볼 것은 독일의 완성차 업체들이 독일 정부의 지시로 이런 상생 생태계를 만든 게 아니라는 점이다. 스스로 만든 거다. 때문에 노조활동은 당연시된다. 1600여개에 달하는 독일의 히든챔피언 기업들이 대부분 협력업체임에도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자랑하는 건 이런 문화 덕분이다. 그럼에도 2011년 10월 유럽의회는 공정거래에 관한 조달관련법을 새롭게 고쳤다. 유럽 국가들 내에서 기업간 하도급이 늘어나자 중소기업을 위한 포괄적인 공정거래 규정을 만든 거다. 당시 규제가 과하다고 주장한 독일 기업은 한군데도 없다. 이미 알아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들은 어떨까. 국내 대기업을 대표하는 삼성전자를 보자. 삼성전자는 애프터서비스(AS) 분야를 떼내 삼성전자서비스에 맡겼다. 하지만 삼성전자서비스는 지난해 임금체불과 각종 부당노동행위 등을 지시한 것으로 드러나 심각한 노사갈등을 겪었다. 특히 한 직원은 생활고 때문에 자살까지 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삼성전자서비스를 탓하지 않았다. 삼성전자서비스센터를 운영하는 협력업체 사장들에게 노조 결성을 막는 ‘부당노동행위 특별교육’을 실시했다. ‘협력업체 일은 삼성전자와 무관하다’는 입장을 되풀이한 것은 물론이다.

재계 2위인 현대차그룹도 마찬가지다. 주력 계열사인 현대차는 사내하도급이냐 불법파견이냐의 문제로 현대차 노조 측과 약 4년간 법정 다툼을 벌였다. 사내하도급과 불법파견의 차이는 지휘ㆍ감독과 통제권의 행사에 하도급업체의 독립성이 확보되느냐다. 독립성이 인정되지 않으면 불법파견으로 간주된다. 똑같은 지시를 받고 똑같은 작업을 하는데, 왜 임금과 처우가 다르냐는 게 불법파견이 가진 문제의 핵심이다. 

규제 없으면 날뛸 국내 대기업

그동안 현대차는 사내하도급이라 주장했지만 최근 법원으로부터 ‘불법파견이 맞다’는 판결을 받았다. 그럼에도 현대차는 판결이 부당하다며 항소를 준비 중이다. 선진국 글로벌 기업들은 굳이 규제를 하지 않아도 공정한 거래가 서로에게 득이 된다는 생각 아래 공생을 추구하지만,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어떻게든 법망을 피해 혼자만 독식하는 구조를 추구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최근 박근혜 정부에서 규제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과 더불어 재계에서 하도급 규제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지만, 그 주장이 설득력을 얻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재계가 규제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주장하려면 먼저 자신들의 하도급 구조부터 글로벌 스탠더드로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전문가들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비중은 OECD 중 1, 2위를 다툴 정도로 높다. 그 비정규직의 대부분은 사내하도급에 속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하도급 규제를 완화하면 대기업이 자행해온 ‘갑의 횡포’를 더욱 부채질할 가능성이 크다. 그뿐만 아니라 다양한 규제 덕에 그나마 상거래 질서가 생겨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대기업 불공정행위 건수는 2008년 1023건에서 2013년 369건으로 3분의 1로 줄었다.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건수도 22건에서 16건으로 줄었다. 촘촘한 법망이 어느 정도 역할을 했다는 얘기다.

김익성 동덕여대(EU통상 담당) 교수는 “국내 대기업들은 대부분 비용을 줄이고, 노동시장에서 고용이나 산업재해의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도급을 선택한다”며 “대기업이 상생을 통해 경쟁력을 키우고, 다 함께 이득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이상 하도급 규제는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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