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인터뷰 | 김익성 동덕여대 교수

▲ 김익성 동덕여대 교수는 “규제를 만든 건 대기업”이라고 지적했다.[사진=지정훈 기자]
A국가는 쓰레기 투척 시 처벌규정이 없다. B국가는 다르다. 처벌규정이 사안별로 수두룩하다. 사람들은 언뜻 “B국가의 규제가 과도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A국가에 쓰레기를 투척하는 이가 거의 없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선진국에 비해 하도급 거래 관련 규제가 너무 많다”. 규제를 풀어달라는 대기업의 아우성인데,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는 규제를 풀어야 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고 주장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규제는 암덩어리’라며 모든 규제를 악惡으로 규정하는 발언을 쏟아낸 이후다. 그러자 하도급 거래 규제도 풀자는 주장도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선진국에 비해 하도급 관련 규제가 많다는 이유에서다. 재계는 “이제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야 할 때”라며 맞장구친다. 하도급 관련 규제를 풀면 모든 게 좋아질까. 중소기업연구원에 오래 몸담았던 김익성 동덕여대(EU통상 담당)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 실제로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비해 하도급 관련 규제가 많은가.
“계량적으로 보면 그렇다.”

✚ 그렇다면 하도급 관련 규제는 줄이는 게 옳은 방향 아닌가.
“선진국과 우리나라의 경영환경 차이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유럽 선진국에 하도급 관련 규제가 많지 않다고 해서 ‘갑甲의 횡포’를 그냥 두고 본다는 뜻은 아니다. 이미 하도급 거래에 관한 명확한 규제가 법제화돼 있고, 이를 대기업들이 잘 지키고 있기 때문에 더 많은 규제가 필요하지 않을 뿐이다.”

✚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일례로 독일에는 1500여개의 히든챔피언 기업이 있다. 대부분 대기업의 협력업체들이다. 중요한 건 이들이 세계에서 혹은 유럽에서도 업계 1~2위를 하는 기업이라는 점이다. 만약 대기업이 이런 기업에 단가인하 압박을 하면 그들은 다른 기업들과 계약을 맺을 것이다. 거래선이 다양하니 대등한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 국내 하도급 구조와는 많이 다른 것 같다.
“하도급 문화 자체가 다르다. 독일 대기업은 협력업체를 파트너로 인식한다. 협력업체에 충분히 대금을 지급하면 제품의 품질이 좋아진다는 걸 알고 있다. 때문에 대기업 스스로 공정거래 관련 규정을 꼼꼼하게 만든다. 갑을甲乙관계를 이용해 하도급을 쥐어짜고, 경쟁업체 일은 절대 못하게 막는 국내 대기업과는 차원이 다르다. 공정거래 규제를 맡고 있는 독점규제위원회에서도 하도급 거래를 심하게 규제할 이유가 없다.”

 
✚ 사내하도급 규제도 비슷한가.
“중요 기술의 비밀의 유지가 필요할 때 사내하도급 업체를 만들어 일을 맡기는 경우가 많다. 물론 오너 가족에게 사업을 떼 주기 위해 사내하도급을 이용하기도 한다. 중요한 건 사내하도급 업체도 다른 기업의 일을 맡을 수 있도록 한다는 거다. 일반 협력업체와 마찬가지로 경쟁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 거다. 당연히 추후엔 사내하도급 업체를 이용해 모회사는 더 큰 이윤을 낼 수 있다. 이를 벤치마킹해서 탄생한 곳이 일본의 노무라증권연구소다. 이곳은 다른 증권사의 연구도 병행해주면서 세계적인 경제연구소가 됐다.”

✚ 하도급 규제가 심하다는 재계의 주장을 어떻게 보나.
“대기업이 공정거래법의 설립 취지를 인정하고, 그에 맞게 행동하면 ‘남양유업법’ 같은 이름도 이상한 법을 만들 이유가 없다. 공정거래법으로도 다 규제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매번 법에 규정이 없다는 식으로 법망을 교묘히 피해가니까 공무원들은 법에 근거한 규제를 또 만들 수밖에 없다. 공무원들이 기존 법으로 재량껏 규제하지 못한 것도 잘못이다. 대기업이 만든 규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는 얘기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