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 경제효과, 검증한 적 있나?”
“사면 경제효과, 검증한 적 있나?”
  •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 호수 111
  • 승인 2014.10.13 11: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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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자가당착

▲ 2001년 분식회계로 엔론이 파산하자 경영진들은 모두 중형을 선고받았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최근 황교안 법무부장관과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경제활성화를 위해 재벌 총수들을 사면하자는 운을 뗐다. 여론의 향배를 간보겠다는 의도가 다분하다. 과연 재벌 총수들이 사면되면 경제가 살아날까. ‘재벌 총수 봐주기’는 어떤 사회적, 경제적 문제를 야기할까.

2012년 대선에서 경제민주화가 주요 쟁점으로 부상하기 이전부터 재벌 총수들은 범죄의 유형이나 심각성과 무관하게 항상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다시 말하자면, 가중처벌을 받도록 명시된 경제범죄를 저질러도 재벌 총수들은 실질적으로 처벌을 면제받은 것이다. 삼성 후계자 이재용씨 남매가 에버랜드 전환사채(CB)와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저가로 인수한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룬 삼성특검 과정에서 이건희 삼성 회장은 배임ㆍ탈세 혐의로 2009년 8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확정 선고받았다. 그리고 3개월 후인 2008년 12월 사면됐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사면 절차도 비슷하다.

재벌 총수들에 대한 이런 형량과 사면은 법치주의 근간을 훼손하고,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회자되는 이유가 됐다. 이에 따라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횡령ㆍ배임 이득액이 300억원 이상이면 기본적으로 징역 5년에서 8년을 선고해야 하며, 감경되더라도 징역 4년에서 7년, 가중되는 경우엔 징역 7년에서 11년까지 선고할 수 있는 양형기준을 만들었다. 또한 2012년 대선 과정에서는 야당 후보자들뿐만 아니라 당시 여당 후보자였던 박근혜 대통령까지도 이런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에 대한 국민과 정치권의 관심이 고조된 2012년 8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사건의 1심 재판부는 2883억원대의 손해를 끼친 혐의를 인정해 양형기준의 최소한인 징역 4년을 김 회장에게 선고했다. 그러나 대선 이후인 2003년 4월 항소심 재판부는 양형기준을 무시하고 1797억원의 배임을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징역 3년으로 감형했고, 이후 대법원은 일부 법리오해와 심리미진을 이유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달라진 건 없었다.

결국 파기환송심은 1585억원 상당의 손해를 끼쳤다는 배임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김 회장이 1597억원을 법원에 공탁하고 경제 건설에 이바지한 공로와 함께 건강 상태가 나쁜 점이 참작된다면서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같은 날, 2000억원대의 사기성 기업어음(CP)을 발행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던 구자원 LIG 회장도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됐다.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라는 재벌 총수에 대한 사법처리 공식이 부활한 것이다.

황 법무부장관과 최 경제부총리의 최근 언급은 법원의 변심(?)에서 한발 더 나아가 법치주의와 경제민주화의 시계를 2012년 이전으로 되돌리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결국 징역 4년을 선고받고 수감 중인 최태원 SK그룹 회장, 징역 4년 6월을 선고받고 병보석 중인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 항소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상고한 이재현 CJ그룹 회장 그리고 재판을 받고 있는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등에게도 유사한 특혜를 주자는 제언이라서다. 

양형기준 무시한 법원 판결 ‘속출’

재벌 총수에 대한 이런 사법적 특혜의 논거는 항상 ‘경제 살리기’였다. 사면된 재벌 총수들은 경제 살리기에 매진하고 투자를 늘리겠다고 맹세해 왔다. 그런데 과연 재벌 총수들의 사면 이후 한국 경제가 살아났는가. 재벌 총수들이 계획에 없던 투자를 늘렸다면 정치적 논리에 의한 투자로, 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총수가 수감 중이거나 병보석 중이라서 투자 계획을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면, 재벌의 총수 1인 황제경영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더구나 이는 전문경영인(CEO)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는 평소의 주장과 상반되는 것이다. 특히 가석방이나 사면이 되면 병마를 떨치고 일어나는 기적(?)이 여러 차례 일어났는데, 이는 재벌 총수와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흔드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재벌 총수의 사면이 한국 경제 성장에 미친 효과를 실증적으로 검증한 어떤 연구도 노력도 그동안 없었다. 다시 말해 박근혜 정부는 검증되지 않은 주장으로 법치의 근간을 흔들려 하고 있는 것이다. 설사 재벌 총수 가석방과 사면이 경제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온다고 치자. 그렇다 하더라도 법치주의와 주식회사 제도의 근간을 훼손하는 부정적 효과를 압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유재산권 제도와 함께 현대 시장 경제 체제의 근간을 이루는 법제도는 주식회사 제도다. 산업혁명 이후 대자본이 필요한 기업은 주식회사의 형태를 띠게 됐다. 하지만 경영자나 대주주의 분식회계, 횡령ㆍ배임 등의 범죄는 주식회사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범죄다. 경영자나 대주주의 분식회계, 횡령ㆍ배임 등 범죄의 중대성은 미국의 경우를 보면 법원에 의해 명확히 인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참고: 파트1].

또 한가지 주목할 건 주식회사 수가 훨씬 많은 미국보다 우리나라에서 주식회사 제도를 흔들 만한 범죄가 더 많이 발생하느냐다. 이유는 재벌 봐주기 판결과 사면이라는 관행에 있는 게 아닐까. 이런 관행을 용인하고 허용하는 사법부와 행정부가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자가당착에 빠진 건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비정상적인 재벌 봐주기가 계속되는 데는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 때문이다. 특히 상위 재벌에 경제력이 집중되는 현상이 2000년대 이후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게 더 큰 문제다. 2003년 10대 재벌의 총 매출액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50.6 %였지만 2012년에는 84.1%로 급격히 늘어났다. 10대 재벌의 총 자산도 2003년 GDP 대비 48.4%에서 2012년에는 84%로 급증했다. 경제력이 집중된 재벌은 입법ㆍ행정ㆍ사법ㆍ언론ㆍ학계 등에 영향력을 행사해 공익보다는 재벌 총수 일가의 사익을 우선시하는 의사결정을 일삼하고 있다. 

경제력 집중이 야기하는 문제들

올해 6월 스페인에서는 공작부인이기도 한 크리스티나 공주가 기소됐다. 신성불가침 영역으로 여겨졌던 스페인 왕족이 형사법원에 서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비영리재단의 공금 580만 유로(약 85억원)를 횡령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던 우르단가린 공작은 부인인 크리스티나 공주가 자신의 사업에 아무런 관여를 하지 않았다며 보호하려 했다. 하지만 이들 부부 사이에 주고받은 이메일이 공개되면서 크리스티나 공주가 남편의 횡령을 일부분 조력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결국 공작 부부는 유죄가 확정될 경우 최고 19년형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사법부와 정치권에 미치는 한국 재벌 총수일가의 영향력을 스페인 왕족들도 부러워하지 않을까. 한국 재벌의 가공할 영향력을 지금 우리는 똑똑히 목도하고 있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는 2012년 경제민주화의 열기를 통해 이른바 무소불위로 보였던 재벌의 영향력도 국민이 그 폐해를 자각할 땐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sanpark@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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