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피난처 왜 문제인가

재력가에게 조세피난처는 ‘천국’에 가깝다.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조세회피를 할 수 있을뿐더러 각종 투자로 재산증식이 가능해서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해외투자자금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유독 ‘조세피난처 투자’가 늘어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조세피난처에 숨어든 ‘검은머리 외국인’이 국내 투자환경을 교란할 수 있다는 점이다.

▲ 조세피난처에 설립한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해 탈세와 국내 재투자를 노리는‘검은머리 외국인’이 증가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조세피난처를 찾는 국내 투자자금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글로벌 경기침체와 저성장 기조의 영향으로 해외직접투자가 줄어드는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투자를 위해 해외로 송금된 금액은 240억5000만 달러로 2012년 251억2000만 달러에 비해 4.2% 감소했다.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정한 조세피난처 50개국으로 투자된 금액은 2012년 4조6473억원에서 지난해 5조4186억원으로 증가했다. 2007년부터 7년동안 투자된 금액은 227억7600만 달러로 약 25조2000억원에 달했다.

조세피난처로 투자자금이 몰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곳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면 세금을 덜 낼 수 있어서다. 대표적인 조세피난처인 ‘버뮤다’와 ‘바하마’는 세금이 전혀 없다. 두 나라는 ‘조세천국(Tax Heaven)’이라고 불린다. 외환거래가 자유롭고 금융거래의 비밀이 보장된다는 장점도 있다. 실제로 조세피난처에 투자하는 것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조세피난처를 이용하는 대표적인 업종은 해운사다. 해운사는 원활한 선박자금 모집, 해운사 부도 등 위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조세피난처에 설립한 특수목적기업(SPC)을 이용한다. 문제는 조세피난처의 장점이 탈세ㆍ자금세탁ㆍ금융범죄 등에 악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국세청이 역외탈세 세무조사를 통해 세금을 부과한 경우는 총 211건, 추징금액은 1조789억원에 달한다. 2008년 과세건수 30건과 추징금액 1503억원에 비해 각각 7배, 10배 이상 늘어났다. 역외, 다시 말해 조세피난처를 이용한 자본 유출과 탈세 규모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는 얘기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오제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조세피난처 국가로 보내지는 송금액 가운데 투자를 위한 것도 있다”며 “하지만 조세피난처 투자규모 증가는 국내 자본 유출을 비롯해 해외에서의 탈세ㆍ탈루 가능성이 커졌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 6년 동안 역외탈세 조사의 징수율이 7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역외탈세 적발을 위한 조사강화와 함께 추징금 징수 강화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세피난처 악용 사례 늘어

다른 문제점도 있다. 조세피난처에 설립한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국내로 유입된 자금이 투자환경을 교란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가령 법인의 경우, 외국에서 설립되면 자본시장 법령상 외국인에 해당한다. 페이퍼컴퍼니의 실제 주인이 한국인이라고 해도 외국인 투자등록이 가능하다. 조세피난처가 ‘검은머리 외국인’의 온상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할 경우 법인 정보를 상세하게 공개하지 않아도 되고 설립 절차가 간단해 ‘검은머리 외국인’이 조세피난처를 이용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해서다.

조세피난처의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외국인 투자자로 위장하려는 이유는 다양하다. 무엇보다 주식거래를 통해 발생하는 양도소득세ㆍ법인세ㆍ종합소득세 등을 회피하기 위해서다. 각종 규제를 피하려는 목적도 숨어 있다. 여러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고 주식을 분산해 보유하면 변동 보고의무 등 자본시장법상의 규제를 피할 수 있어서다.
 
개인투자자와 비교해서도 규제를 덜 받는다. 가령 외국인 투자자(법인)는 기업공개(IPO)에 참여할 때 청약증거금이 없어 최대한 많은 주식을 배당받을 수 있다. 개인 투자자와 달리 청약한도도 존재하지 않는다. 개인투자자는 1인1계좌만 청약할 수 있지만 다수의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여러 개의 계좌를 이용한 복수청약이 가능하다. 마지막 이유는 시세조종ㆍ내부정보 이용 등을 통한 불법적인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다. 외국인 투자자로 인식되는 ‘검은머리 외국인’이 시세조정 등 주가조작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국내 주식시장이 외국인의 투자 성향에 따라 좌우된다는 점을 악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허위ㆍ고가매수 주문을 통해 주가를 조종해 시세차익을 남기는 것이다. 또한 기업의 관계자가 내부정보를 이용해 수익을 극대화하거나 손실을 사전에 피할 수 있다. 실제로 케이맨제도 등 대표적인 조세피난처에 투자한 ‘검은머리 외국인’이 내부정보를 이용해 배를 불리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양철원 단국대(경영학) 교수가 발표한 ‘조세피난처 외국인 거래의 주가예측력’에 따르면 경제규모가 작은 케이맨제도가 다른 선진국을 제치고 주식거래량(2005년 8월~2009년 8월) 3위를 차지했다. 또한 대표적 조세피난처인 케이맨제도ㆍ버뮤다ㆍ바하마ㆍ미국령 버진아일랜드ㆍ영국령 버진아일랜드 등 5개국 투자자의 월 수익률이 다른 투자자에 비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양철원 교수는 “분석 결과 순매수 금액이 높은 주식을 매입하고 낮은 주식을 공매도하는 전략을 이용해 상당한 수익률을 기록했다”며 “다른 자료와 비교했을 때 상당한 규모로 조세피난처의 외국인이 많은 사적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전했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검은머리 외국인의 국내 주식투자는 공공연한 사실”이라며 “특히 대기업의 조세피난처 투자금액이 크게 늘어나고 있고 검은머리 외국인의 수익률이 다른 투자자에 비해 높다는 점에서 시세조작 가능성을 의심할 만하다”고 말했다. 그는 “내부정보를 이용한 시세조작 등이 계속되면 피해는 정보력이 부족한 개인투자자에게 집중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검은머리 외국인 투자교란행위 막아야

이런 ‘검은머리 외국인’ 존재가 밝혀진 일례가 1600억원대의 탈세ㆍ횡령ㆍ배임 혐의로 기소돼 징역 3년과 벌금 252억원을 선고받은 이재현 CJ그룹 회장이다. 이 회장은 주요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들고 싱가포르ㆍ홍콩 등에 있는 UBS(Union Bank of Swiss) 등 7개 외국금융기관에 페이퍼컴퍼니 명의의 차명계좌를 개설했다. 이를 이용해 외국인이나 외국 법인이 주식을 거래한 것으로 가장했다.

이 회장은 차명계좌를 이용해 2004년부터 주식회사 CJ의 주식을 사고팔았고 2009년부터는 CJ프레시웨이ㆍCJ인터내셔널아시아 등 계열사 주식을 매매해 약 1200억원의 시세차익을 올렸지만 280억원가량의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았다. 대기업 총수가 ‘검은머리 외국인’으로 활동했다는 얘기다. 이 회장은 대주주의 주식 거래 양도차익은 과세 대상이지만 개인ㆍ법인이 주식을 매매하면 양도소득세가 부과되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조세피난처에 설립한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해 주식시장을 어지럽히는 검은머리 외국인의 수가 상당할 것”이라며 “조세피난처로의 투자가 늘어나는 만큼 이를 악용할 수 있는 가능성도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금융당국의 철저한 감시와 관리ㆍ감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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