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

▲ 지난해 4월 브랜드 체험관 ‘이니스프리 제주하우스’ 오픈식에서 서경배 회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올해 국내 기업인 가운데 유별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가 있다. 서경배(51)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이 바로 그다. 지난해만 해도 여러 가지 악재로 고생했던 그가 올해는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다. 최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을 제치고 국내 주식부자 2위에 올랐을 정도다. 사업에는 명암이 있기 마련이지만 서 회장의 올해 사업운은 ‘대박’ 그 자체인 것 같다.

불과 1년 전인 지난해 이맘때만 해도 지금과 사정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은 당시 비상경영을 외쳐야만 했다. 방문판매 특약점 대표들과의 마찰로 ‘갑甲질’ 논란에 휩싸여 곤욕을 치렀다. 해외 계열사 구조조정 작업이 여의치 않았고, 매출도 뒤뚱거렸다. 경영성적이 뒷걸음치면서 주가도 내리막길을 걸었다. 지난해 초 100만원을 웃돌던 주가는 10월에 80만원대까지 떨어졌다. 11월 1일 마침내 서 회장은  비상경영을 선포하기에 이른다. “양에서 질로 관점을 바꾸자. 나부터, 우리 팀부터, 우리 조직부터 먼저 바꾸자”며 임직원들을 독려해야만 했다. 마케팅 전략을 새로 짜고 지난 10여년간 공을 들였던 ‘아시아 중시 전략’도 재점검했다.

효과는 올 1분기 들면서 예상보다 빨리 나타났다. ‘요우커(遊客ㆍ중국인 관광객) 입국 바람’이 거세지면서 중국발 특수가 터진 것. 면세점 매출 비중이 텃밭이었던 방문 판매를 앞지를 정도가 됐다. 인천공항 면세점 아모레퍼시픽 매장에 요우커가 몰리자 1인당 단일 품목 판매량을 10개로 제한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한국을 찾는 요우커는 올해 600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432만6869명(전체의 35.5%)으로 일본(274만7750명)을 제치고 처음 1위에 오른 후 기세가 더욱 커졌다. 이에 힘입어 아모레퍼시픽의 올 상반기 해외 매출은 지난해 동기 대비 38% 성장한 3827억원을 기록했다. 상반기 전체 매출은 2조3165억원, 영업이익은 3862억원으로 각각 늘어났다. 상반기 영업이익이 과거 2~3년의 연평균 영업이익에 육박할 정도다[그래픽 참조].

 
이런 결과는 고스란히 주가에 반영됐다. 지난해 마지막 거래일(12월 30일)에 100만원(종가)이었던 아모레퍼시픽 주가는 올 8월 13일 200만원대(206만8000원)로 올라섰다. 지난 9월 30일엔 239만2000원으로 200만원대의 같은 ‘황제주皇帝株’ 롯데제과와 롯데칠성을 추월했다. 9월 29일에는 장중 252만원으로 사상 최고가를 찍기도 했다. 10월 10일 종가는 234만원을 나타냈다. 이에 힘입어 서 회장은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을 제치고 국내 주식부자 2위 자리에 오르게 된다. ‘화장품’에 담겨 있는 소프트 파워가 ‘자동차’가 내뿜는 하드 파워를 눌렀다고나 할까. 지난 9월 30일 서 회장이 보유한 상장주식 가치는 6조7607억원(종가 기준)으로 정몽구 회장(6조5057억원)을 앞섰다. 지난해 말 2조7169억원이었던 그의 주식 평가액이 9개월 만에 약 2.5배로 늘어났고, 평가액도 4조원 이상 급증했다는 분석. [그래픽 참조]. 5년 전인 2009년 5월 15일 홍콩 그랜드하얏트호텔. 서경배 회장이 국내 유수의 언론사 기자들과 모처럼 인터뷰를 갖고 자신의 포부를 밝힌 적이 있다. “2015년 매출 5조원을 달성해 ‘화장품 글로벌 10대 기업’으로 올라서겠다.” 

요우커 특수로 위기 탈출

국내 화장품 간판기업에 만족하지 않고 ‘글로벌 명품전략’을 통해 해외에서도 당당하게 승부하겠다는 다짐이었다. ‘화장품과 여성’을 업業의 기본으로 삼아 한국→아시아→세계로 진출하는 아모레퍼시픽의 미래상을 강조한 자리였다. 당시 그가 언론에 밝힌 꿈이 현실이 되고 있다. 요우커를 앞세운 중국발 훈풍이 그의 꿈 실현을 앞당겨 줬다고나 할까. 재계는 요즘 그의 승승장구를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사업을 보란 듯이 잘해 내기가 무척 어려운 시기이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2014년 4월 현재 아모레퍼시픽그룹은 국내 재계 순위 47위(자산 기준ㆍ공기업 제외)다. 자산규모는 5조4580억원. 창업 69주년째로 10개의 계열사를 두고 있다. 서 회장은 1987년 창업오너(고故 서성환 회장) 2세로 당시 태평양그룹 경영에 참여했다. 1997년(34세) 이래 17년간 CEO를 맡고 있다. 30~40대라는 젊은 시절을 한국의 간판급 화장품회사 CEO로서 온통 ‘화장품과 여성’에 몰두한 셈이다.

이런 그가 개인적으로 한국 재계 주식부자 2위에 랭크된 것. 주식 투자자들이 그가 경영하는 아모레퍼시픽 주식에 폭발적으로 높은 값을 매겨 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동안 프랑스, 일본 등 선진시장 진출에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뭐니 뭐니 해도 ‘요우커 등 중국발 특수’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아모레퍼시픽의 올 상반기 면세점 매출의 약 70%를 중국인이 올렸을 정도다. 중국 매출은 2011년 1909억원에서 지난해 3387억원으로 2년 만에 무려 77% 늘었다. 올 2분기에도 중국ㆍ아세안 지역에서 1634억원의 매출을 올려 지난해보다 48.8%나 급성장했다. 중국시장 점유율도 2%대로 올라섰다. 업계에서는 “서 회장의 뚝심 있는 중국 투자가 비로소 열매 맺고 있다”는 평을 내놓는다. 서 회장은 10여 년 전부터 5개 글로벌 브랜드(설화수ㆍ라네즈ㆍ이니스프리ㆍ마몽드ㆍ에뛰드)를 키우기로 하고 중국 등 동남아 투자를 계속해 왔다. 그 결과, 중국 여성들이 가장 받고 싶어 하는 선물 1위가 설화수, 라네즈 등 아모레 화장품이라는 얘기까지 들린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게 아모레퍼시픽 측 입장이다.

 
서 회장은 젊은 2세 경영자로 늘 앞을 내다보며 경영에 임해 왔다. 그는 평소 “글로벌 라이벌 업체는 없다. 제품을 사주느냐, 아니냐로 고객과 경쟁할 뿐"이라는 지론을 편다. “운전할 때 80%는 앞(고객)을 보고, 15%는 옆(경쟁사)을, 5%는 뒤(과거)를 본다”는 예도 든다. 1997년 IMF 위기 때 30대 초반의 나이로 최고경영자가 된 그는 당시 증권, 전자, 건설 등 비주력 부문을 정리하고 화장품에 집중했다. 그동안의 노력이 숙성해 이번에 ‘대박’을 터트렸다는 분석이 그래서 나온다.

서경배의 철학 “나는 고객과 경쟁”

그는 아모레퍼시픽 홈페이지 CEO 인사말을 통해 “세계 속에서 아모레퍼시픽은 ‘Asian Beauty Creator’라는 이름으로 기억되고자 한다. 아시아인이 가진 아름다움에 대한 꿈을 실현하는 기업, 나아가 전 세계의 고객들에게 아시아의 문화가 품어 온 미美의 정수精髓를 선보이는 기업이 될 것”이라고 다짐한다. 지난 9월 5일 창립 69주년 기념식에서는 “창업 이후의 꿈과 신념, 그리고 업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며 “이 시대에 부여받은 소명인 ‘아시안 뷰티’를 위한 꿈의 행진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50대 초반의 나이에 이미 글로벌 화장품 경영에 일가를 이룬 그의 향후 활동이 기대된다.
김은경 더스쿠프 객원기자 kekis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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