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부품업체 성장의 원동력

▲ 독일의 보쉬는 부품업체에 불과하지만 세계 부품회사 중 매출 순위 1위로 웬만한 완성제품업체보다 더 탄탄한 기업이다.[사진=뉴시스]
우리나라와 독일의 부품업체 육성책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독일에선 ‘히든챔피언’이 나오고, 우리나라에선 재벌 대기업에 목맨 ‘하청업체’만 양산된다. 원청-하청업체의 생태계, 이게 너무 달라서다.

제조업 하면 독일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약 1500개에 이르는 독일 히든챔피언들이 세계 제조업을 주름잡고 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독일 기업 363만여개 중 유럽연합(EU) 기준 중소기업은 99.3%에 이른다. 중소기업의 부가가치 생산비중은 전체의 46.7%, 매출 비중은 34%,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1%를 차지한다. 중요한 건 독일 히든챔피언 기업들은 대기업 협력업체나 부품회사임에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는 점이다.

자동차산업 분야만 봐도 독일 부품회사의 위상은 대단하다. 세계 자동차부품회사를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 매출 기준(2013년)으로 추렸을 때, 1위는 독일의 보쉬다. 톱5에 속한 독일 부품사는 2곳, 세계 100대 자동차부품회사에 속한 부품사만 해도 19곳에 이른다. 창조경제를 콘셉트로 삼은 박근혜 정부가 독일의 히든챔피언을 주목하는 이유다. 국내 협력업체나 부품회사들도 독일 히든챔피언처럼 성장할 수 있도록 벤치마킹하겠다는 거다.

하지만 ‘독일 히든챔피언과 같은 중소ㆍ중견기업의 육성’이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우리나라 기업환경이 독일과 달라서다. 전문가들이 독일 히든챔피언의 성공 원인으로 꼽는 건 비슷하다. 브랜드와 품질 경쟁력 제고를 통한 고부가가치 전략,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증가한 연구개발(R&D) 비중, 유기적인 산학연 협력과 정부 지원, 학벌보다는 실사구시에 맞춘 인재육성, 상생과 협력을 기반으로 한 하도급 관계, 중소기업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기업금융 등이 그것이다.

별다른 정책은 아니지만 우리와 다른 게 있다. 인재육성 전략, 협력적인 원청-하청관계,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기업금융 등 대외적 환경들이다. 기업환경이 바뀌지 않는한 R&D를 늘리고, 고부가가치 전략을 써봐야 말짱 도루묵일 수밖에 없다. 박상인 서울대(경제학) 교수는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는 개인ㆍ기업의 경제적 자유를 철저히 존중하지만 시장 지배와 경제력 남용은 국가가 막는다”며 “독일 모델로 가려면 재벌 특혜와 관치금융부터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김광희 중소기업연구원 정책본부장은 “독일의 중소기업은 금융기관을 통한 자금조달이 비교적 쉬워 투기자본보다는 은행의 장기투자를 많이 받는다”며 “중소기업 대출을 꺼리는 한국의 풍토와 다르다”고 지적했다. 이상민 한양대 교수는 “독일 기업들은 노조를 파트너로 인정하면 더 큰 이익이 생긴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며 “인적자본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독일을 벤치마킹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익성 동덕여대(EU통상) 교수는 “독일은 오랫동안 학벌보다는 현장 중심의 인재(마이스터)를 양성해 왔다”며 “그 과정에서 자신의 분야에만 집중하고 상대의 영역을 침해하지 않는 상생과 협력의 기업문화가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 ‘코끼리가 노는 곳에서 춤추지 마라’ ‘우리는 한가지 분야에만 집중하지만 그 분야에서 최고를 지향한다’는 등의 슬로건이 독일 기업에 널리 퍼져 있는 건 이 때문이다.

결국 독일을 롤모델로 삼아 벤치마킹을 하기 위해서는 재벌과 대기업이 판을 치는 시장의 틀부터 다시 짜야 한다는 거다. 사회적 약자 보호, 노동자 권익옹호, 원청-하청의 협력적 관계 등을 위해 정부가 적극 개입해 생태계를 조성하는 모델이 아니라면 독일 벤치마킹은 성공할 수 없다는 얘기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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