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이순신공세가㉟

▲ 적진 앞에서 뱃머리를 돌리자 적병은 기세등등해졌지만 이순신의 퇴각은 계략의 일부였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순신의 함대는 적진 앞에서 뱃머리를 돌렸다. 이를 본 적병은 기세등등해졌다. 절반은 배에 올라 따라나오고, 절반은 육지로 올라 대포를 쏘면서 싸움을 재촉했다. 순신의 부하 제장들은 ‘적과 싸우자’고 요청했지만 순신은 ‘퇴각하라’는 영을 접지 않았다. 순신은 다른 싸움을 계산하고 있었다.

풍신수길의 대반격에 대비하기 위해 출전을 미루던 순신은 원균으로부터 날아온 소식을 접수했다. 적선 10여척이 사천 곤양 등지에 출몰해 마을을 불사르고 재물을 약탈, 백성의 피해가 무쌍하다는 거였다. 곧바로 출병해 원균을 도우라는 관문까지 3~4차례 도착했다. 하지만 순신의 함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원균은 하는 수 없어 남해 노량 근처의 깊숙한 항만을 택해 잠복하였다.

그 무렵 순신은 정탐의 보고를 종합하고 있었다. 2차 출정길에 오를 만반의 준비를 한 것이다. 순신은 2차 출정 전 전라감사 이광에게 “전라우수사 이억기를 재촉하여 내 뒤를 따라  오도록 하라”고 글을 보냈다. 순신의 함대가 원균 쪽으로 향했다. 이를 본 원균은 전선 3척을 끌고 나와 구세주 맞듯 순신을 반겼다. 순신은 전 함대에 “전라우수사 이억기를 기다려서 전라좌우도, 경상우도 등 3도가 연합행동을 하려 했지만 기다릴 수 없으니 어서 행선하라”고 영令을 내렸다. 순신의 함대가 기세당당하게 노량목을 통과할 때 곤양쪽에서 적의 중선 1척이 나타났다. 방답첨사 이순신李純信과 남해현령 기효근 등이 북을 울리고 기를 휘두르며 적선을 쫓아갔다. 적군이 마침내 붙잡히자 적군은 배를 버리고 상륙도주하였다. 적선을 깨뜨려 불살라 버린 뒤 장졸들은 기뻐 날뛰었지만 순신은 ‘적을 가벼이 보는 것 같다’며 우려의 시선을 접지 않았다.

▲ 거북선이 선봉에 서고, 다른 배들이 일본군을 공격했다. 조선군의 공격에 일본군은 도망가기 바빴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이윽고 순신의 함대는 적진 앞에 당도했다. 400여명이나 될 듯한 적병이 장사진을 벌이고 붉은 기와 흰 기를 많이 꽂아서 그 광채가 찬란하였다. 진 안쪽의 군사들이 분주히 왕래하는 것을 보니 장수의 지휘를 듣는 듯했다. 선창에는 누각처럼 생긴 배가 있고, 크고 작은 선박 12척이 정박해 있었다. 배에도 군사가 수백명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순신의 함대를 발견한 적장들은 칼을 빼어 들고 교만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자 순신의 제장들은 분기를 참지 못하고 활을 쏘는 한편 총통까지 발사했다. 하지만 거리가 워낙 멀어서 적중될 리 만무했다.

순신은 뱃머리를 돌려 퇴각하라 하였다. 군관 송한련이 항의했다. “적장과 적선을 살려두고 어디를 달아난단 말이오”라는 거였다. 녹도만호 정운, 광양현감 어영담, 전 만호 송희립 같은 맹장들도 싸우지도 않고 퇴각하는 걸 불만스럽게 여겼다. 경상우수사 원균은 이운룡을 돌아보며 “이순신도 겁을 내어 달아나는 걸”이라며 비웃었다. 그러나 이운룡만은 달랐다. 그는 퇴각하는 모양새를 취하는 저간에 필시 계책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실제로 순신은 제장들의 불가不可하다는 말을 듣지 않은 채 퇴각하라고 재촉할 뿐이었다.

순신이 퇴각령을 내린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었다. 육지가 가까운 곳에서 싸우면 적병은 위급할 때 상륙해 도망가기 쉽다. 또 수심이 얕은 곳에서 장시간으로 맞붙어 싸우면 조수의 관계로 어려움에 봉착할 위험도 따른다. 배들이 얕은 바닥에 올라앉기도 하고 개흙에 박혀서 꼼짝 못하기도 할 염려가 있어서다. 순신의 함대가 뱃머리를 돌리는 걸 본 적병은 더욱 기세등등해졌다. 절반은 배에 올라 따라나오고, 절반은 육지에 모여 대포를 쏘면서 싸움을 재촉했다. 조선 수군이 물러가는 걸 조소하는 듯 보였다. 

방심한 적군 틈새로 거북선 돌진

이런 광경을 본 순신의 부하 제장들은 다시 한번 적과 싸우길 청했다. 그러자 순신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었다. 자신의 장졸이 싸울 뜻이 강하고, 적병이 오만하면 승산이 높다고 계산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저녁 밀물이 되돌아들기 시작하니, 정말 때를 만난 셈이었다. 기다리던 순신은 장령을 내렸다. “뱃머리를 돌려라. 들어오는 조수를 따라 들어가 쳐라!” 23척의 대맹선은 일제히 키를 돌려 사천 포구로 풍우처럼 돌진했다. 최전선 선두에는 거북선을 배치했다. 거북선이 금빛 번쩍거리는 두눈을 부릅뜨고 입으로 연기와 화염을 토하며 전ㆍ좌ㆍ우로 천지현자 각양 대포를 맹렬히 방사하자 적군의 죽음이 무수하였다.

 
부르짖는 적군의 소리가 실로 참담하여 일대 비극을 이루었다. 견디지 못한 일부 적군은 배를 버리고 물에 뛰어들어 산으로 도망갔지만 열에 하나밖에 되지 않았다. 적선 12척 중 1척만은 남겨두고 나머지 11척은 당파하여 불사르니 산으로 도망친 적병들이 멀리서 바라보고 발을 구르며 통곡하였다. 이것이 1952년 5월 29일 2차 출전의 첫번째 싸움 ‘사천해전’이다. 난중일기에는 “적선 13척을 불사르고 물러나 주단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순신은 손수 승전고를 울려 싸움을 끝냈다. 해는 이미 저물어 황혼이 됐다. 순신은 전 함대를 몰고 모자랑포(경남 사천시 용현면 주문리)로 이동해 밤을 지내기로 했다. 그래서 뱃머리를 돌려 배질을 하는데 장수들은 승전의 기쁨에 의기충천했다. 다만 군관 나대용과 이설이 적의 탄환을 맞아서 장졸들에게 위문을 받았지만 급소를 맞은 게 아니어서 그리 대단치 않았다. <다음호에 계속>
정리 | 이남석 대표 cvo@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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