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부품기업 성장하려면…

▲ 독일 자동차산업은 2003년 이후 노사 대타협을 통해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확보했다. [사진=뉴시스]
우리나라의 자동차ㆍ전자 관련 대기업은 글로벌 시장의 ‘거목’으로 성장한 지 오래다. 하지만 이들의 가지라고 할 수 있는 부품업체는 여전히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재무건전성은 개선됐지만 채산성이 악화되고 있어서다. 한편에선 ‘독일과 일본의 생태계를 벤치마킹하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수용력이 부족한 가운데 모방에 그칠 경우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우리나라는 기업가 정신과 정부의 산업정책을 바탕으로 단기간 내에 중화학 공업을 육성, 제조강국으로 성장했다. 우리 정부는 기업간 경쟁을 촉진했고, 기업은 경영 전반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수직 계열화와 통합화를 적극 추진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다수의 대기업집단과 유수의 부품 소재업체를 육성할 수 있었다. 최근 우리나라의 부품 소재 수출이 큰 폭으로 증가하면서 무역수지 흑자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제조업의 양대 축인 자동차ㆍ전자산업을 대표하는 대기업이 부진한 영업실적을 보이자 부품 소재 협력업체를 둘러싼 우려가 커지고 있다. 또한 중국으로부터 저가 부품 소재 수입이 증가하고, 일본 부품 소재산업이 부활할 조짐을 보이자 또다시 ‘넛 크래커(nut crackerㆍ선진국과 후발 개도국 사이에 끼여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현상)’ 논의가 불거지고 있다.

 
필자가 우리 자동차와 전자산업 1차 협력업체 650개의 재무제표를 분석한 결과, 영업이익률이 전반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국내 완성차업체 비계열 협력업체의 지난해 평균 영업이익률은 2% 후반에서 3% 초반을 맴돌았고, 전자 대기업의 비그룹 협력사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4% 전반 수준으로 하락했다.

2000년대 이후 전자 대기업 비그룹 협력사의 영업이익률은 10%를 기록한 바 있고, 국내 완성차업체 비계열 협력사의 영업이익률은 7%에 육박한 바 있다. 세계 2000대 연구개발(R&D) 투자업체에 속하는 글로벌 전자업체 178개의 2012년 평균 영업이익률이 7.2%, 자동차 부품업체 94개의 평균 영업이익률이 6.5%를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국내 협력사의 성과가 낮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 협력업체의 영업이익률이 하향 추세를 보이는 이유는 뭘까. 최고경영자(CEO)의 역량 부족인지, 혹은 보유자원 배분의 비효율성 때문인지, 아니면 매출액 증가율에 못 미치는 영업이익 증가율 때문인지,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국내에서는 대기업집단의 수직계열ㆍ통합 비즈니스 모델이 효율성 측면에서 선진국의 수평분업 모델에 비해 우수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대표적인 수직계열ㆍ통합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자동차산업의 총 요소 생산성을 분석한 결과, 완성차업체와 장기전속거래를 맺은 협력사의 효율성은 시간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이런 효율성 저하는 채산성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고 판단된다.

자동차ㆍ전자 부품업체 이익률 저하

이런 협력업체의 채산성 악화는 산업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국내 자동차와 전자산업이 양적 성장을 구가하고 있지만 혁신역량의 지표라 할 수 있는 연구개발(R&D) 집약도는 선진업체와 비교해 볼 때 매우 낮은 수준이다. 국내 자동차부품업체 중 R&D 투자를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100개사의 2012년 R&D 집약도는 1.67%로 글로벌 R&D 투자 부품업체 94개의 평균 4.22%에 크게 못 미친다.

전자산업 역시 마찬가지다. 글로벌 전자업체의 R&D 집약도가 4.31%를 기록한 반면 국내 협력업체의 R&D 집약도는 2.28%에 그쳤다. 최근 선진국 자동차업체가 협력업체 선정시 납품단가와 함께 기술력을 중시하고 있고, 전자산업에서 중국업체의 추격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국내 자동차와 전자 협력업체의 혁신역량 강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는 독일과 일본기업의 강점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주지하다시피 독일과 일본은 강소기업을 다수 보유하고 있고, 우리나라와 산업구조가 유사하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확연한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독일과 비교하면, 자동차산업은 고급차와 양산차, 화학은 정밀화학과 석유화학, 기계는 정밀기계와 범용기계, 전자는 산업용전자와 스마트 가전 등 질적인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또한 거래관계나 기업문화도 우리와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산업 구조는 업종별로 대기업을 중심으로 수직계열이나 통합화를 이루고 있고, 독과점 형태를 띠고 있다.

▲ 국내 기업이 선진국의 강소기업을 벤치마킹하는 것은 좋지만 우리 실정에 맞게 변형할 필요가 있다. [사진=뉴시스]
과거 일본도 우리나라와 유사한 통합구조였지만 최근 수평분업적인 구조로 변화하고 있다. 일본 부품기업이 전문화를 통해 혁신역량을 강화한 게 원동력이다. 또한 독일이나 일본의 자동차와 전자산업은 한국에 비해 대기업의 지배력이 약한 편이다. 이에 따라 우리 기업이 선진국의 베스트 프랙티스(best practiceㆍ모범 규준)를 벤치마킹하는 건 좋지만 우리 실정에 맞게 변형해 운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수용력이 부족한 가운데 모방에 그칠 경우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국내 부품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선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동반성장과 노사간 대타협이 필요하다. 독일 자동차산업이 2003년 이후 노사 대타협을 통해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확보했고, 일본 전자산업이 비용절감과 혁신역량을 강화해 부활하고 있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그동안 국내 생산비용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의 해외직접투자가 확대됐다.

이미 자동차와 전자 대기업의 해외 생산규모는 국내 생산규모를 추월했다. 또한 대기업의 과도한 임금상승은 중소기업의 구인난을 유발하며 양극화를 심화하고 있다. 국내 제조업의 경영환경이 악화되고 있는 점은 최근 보스턴 컨설팅이 발표한 제조업 상대비용지수에서 우리나라가 미국보다 높고, 상대비용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평가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런 비용 상승은 국내 제조업체의 자동화 투자를 촉진해 우리나라는 근로자 1만명당, 생산액 10억원당 로봇 보급률이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국내 기업의 해외직접투자 확대와 국내 자동화 투자 심화는 중장기적으로 국내 일자리 자체를 감소시킬 수 있다.

日, 경쟁력 강화해 수평구조로 변화

우리 자동차와 전자 대기업은 거목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우리 뿌리산업이 착근하지 못한 가운데 가지라 할 수 있는 부품업체가 흔들리고 있다. 국내 부품업체의 재무건전성은 과거에 비해 큰 폭으로 개선됐지만 채산성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이 경쟁적으로 제조업 재육성에 나서고, 중국의 범용 부품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부품업체가 혁신역량을 강화하지 못할 경우 성장기반이 약화될 수 있다.

이미 국내 부품산업 내에서도 혁신역량 보유 유무에 따라 경영성과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우리 정부가 부품 소재산업을 적극 육성해 왔지만 국내 자동차와 전자산업의 세계화와 대형화로 인해 정책효과가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한 협력업체 일부가 부실화될 경우 대기업 공급망 전체가 멈출 수 있다는 점에서 국내 수요 대기업의 혜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hklee@kiet.re.kr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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