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여는 窓

▲ 통일을 위한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중요한 건 평화통일은 우리 국민의 마음과 손에 달려있다는 거다.[사진=뉴시스]
이제까지 통일은 ‘정부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소극적으로 대처했을지도 모른다. 주변의 탈북자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었는지도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의미 있는 통일을 위해서는 각계의 다양한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게 있다. 국민들의 마음자세다.

한글 주간을 맞아 KBS ‘우리말 달인’ 프로그램에서 남한 남학생과 탈북자 여대생을 각각 한조씩 묶어 남남북녀로 짝을 이룬 4팀이 열심히 낱말을 맞히느라 애쓰는 모습을 봤다. 이 광경은 통일을 염원하는 우리들에게 신선한 메시지였다. ‘이것이야말로 통일로 가는 길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통일은 정부가 할 일’이라 여기고 국민들은 ‘통일비용을 걱정해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도 하게 됐다.

통일에 대한 논의는 비공개 원칙 하에 진행됐고 관련 정보를 별로 접할 수 없었던 게 그간의 관행이었다. 이는 국민들이 통일에 대해 소극적이고 방관자적인 자세를 갖게 만들었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한반도 통일의 문제는 정치ㆍ군사적으로 상당히 어렵다는 거다. 통일은 남북한 국민들이 서로 함께 살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 가능한 일이다. 특히 북한주민들이 남한을 함께 살고 싶은 나라로 생각할 때 평화통일이 이룰 수 있다. ‘우리말 달인’에서 남과 북이 하나가 돼 협력하고 함께 가는 통일의 모습을 보여줬다는 데 의미가 있다.

2000년 초부터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한 입국 탈북자수는 현재 2만5000명을 넘어섰다. 이들이 남한사회에 잘 적응하고 탈북한 보람을 느껴야 진정한 통일이 가능하다. 그동안 정부의 많은 노력과 지원에도 우리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소외감을 느끼는 탈북자들이 많다. 이들을 돌아보고 감싸주고 함께 더불어 살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자세가 필요한 이유다. 이는 통일을 위해 우리 국민들의 일차적인 준비 작업이기도 하다. ‘러브 인 아사아’ TV 프로그램처럼 ‘러브 인 한반도’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이유기도 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과 ‘드레스덴 선언’ 이후 우리 사회 여러 분야에서 통일을 위한 논의와 준비 작업들이 진행되고 있다. 과학계에서도 통일을 위해 과학기술이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고민 중이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에서도 ‘남북한 과학기술협력 전략 방안’을 연구 중이며 그 결과를 책자로 출판할 계획이다. 식량ㆍ의료ㆍ가축질병ㆍ환경보전ㆍ에너지ㆍ통계ㆍ과학기술 용어 및 시스템 통합을 위한 분야별 남북한 현황 분석과 협력 방안을 연구해 보고서를 쓰고 있다.

이처럼 이제까지 정부의 울타리에 갇혀 있던 통일 담론이 사회 전 분야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것은 통일을 위해 실로 의미 있는 변화이며 우리로 하여금 통일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하는 일련의 사건이다. 과학기술계에서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탈북 과학기술자들에게 남한에서 전공에 맞는 진로를 찾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과학기술한림원이나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같은 단체가 나서야 한다.

탈북 과학기술자를 위한 연수 프로그램을 개설해 남북한 과학기술 교육시스템의 차이와 유사성, 남한 학제로의 편입 또는 진학, 산업계 진출 방법 등의 교육이 필요하다. 연수를 마친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물색해주는 사업도 진행해야 할 것이다. 원로 과학자들의 모임인 한림원 등을 활용해 탈북 과학기술자 멘토링 사업도 진행할 수 있다. 이런 일련의 노력들은 통일을 위한 의미 있는 준비 작업이 될 것이다.

이런 일들은 과학기술계 뿐만 아니라 우리사회 모든 분야에서 전공별ㆍ직업별로 수행할 수 있고 실제로도 수행해야 한다. 우리 안에서 작은 통일을 알차게 이뤄야만 베를린장벽처럼 38선이 무너지는 통일대업을 완성할 수 있다. 우리에게 통일의 과업이 아직 남아 있다고 하는 것은 이러한 통일준비작업을 위해 하늘이 베풀어준 시간이다. 우리 국민이 사랑과 포용으로 탈북자들을 끌어안아 북한 주민을 감동시킨다면 정치ㆍ군사적 갈등으로 치닫고 있는 정세를 반전시킬 수 있다. 결국 통일은 우리 국민의 손과 마음에 달려 있다. 
이철호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 chlee@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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