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행의 재밌는 法테크

▲ 우리나라는 8년 넘게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기록중이다. 이들에 대한 충분한 관심이 필요한 때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생명은 귀중한 법익이다. 형법도 이를 폭넓게 보호한다. 그러나 자살은 처벌할 대상이 없어 처벌받지 못한다. 그렇다면 자살이 많은 이유는 뭘까. 자신만의 욕심을 챙기는 이기심이다. 이로 인해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일까. 돈, 친구, 사랑하는 사람 등등. 하지만 나의 목숨이 없고서야 이런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대부분의 사람에게 자신의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소중한 목숨을 스스로 버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하루 평균 40명이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 10년 가까이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지키고 있다. 도대체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생명은 그 무엇보다 귀중한 법익이고 형법은 이를 폭넓게 보호하고 있다. 그러나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자살은 처벌하지 않는다. 처벌할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데 처벌할 방법이 있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자살에 관여한 사람은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형법은 ‘사람을 교사 또는 방조해 자살하게 한 자’를 자살교사ㆍ방조죄로 처벌한다. 누군가의 생명은 설령 그에게 살고자 하는 의사가 없더라도 보호돼야 마땅하다. 따라서 누군가의 자살에 관여하는 행위는 그의 생명을 침해하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여기서 자살의 교사란 자살하고자 하는 의사가 없는 사람에게 자살을 결의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자살의 방조는 자살을 결의하고 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어 자살을 용이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정불화에서 비롯돼 자살로 마무리된 비극이 있다. A씨는 남편 B씨와 수년간 갈등이 심했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고, 시어머니와의 갈등은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여기에 아이들마저 속을 썩이는 통에 사는 것이 고역이었다. A씨는 사건 당일 새벽에도 B씨와 말다툼을 하다가 ‘죽고 싶다’ 또는 ‘같이 죽자’고 하며 B씨에게 기름을 사오라고 말했다. 그러자 B씨는 휘발유 1병을 사다가 A씨에게 건넸다. A씨는 B씨가 사다준 휘발유를 몸에 뿌리고 불을 붙였고, 결국 사망에 이르렀다. B씨는 자신은 A씨의 부탁에 따라 휘발유를 사다줬을 뿐이라며 자신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항변했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B씨에게 자살방조죄를 인정했다. 판결 요지는 이렇다.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휘발유를 사다주면 이를 이용해 자살할 수도 있다는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피해자에게 휘발유를 사다줘 피해자가 자살하도록 방조했다” 이렇게 드물긴 해도 다른 이의 자살에 관여한 사람들은 처벌받아 왔다. 자살의 원인은 정말 다양하다. 한가지로 설명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만 자살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사회를 거울에 비춰 본다면 최근에 왜 그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선택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

불과 50년 전만 해도 농촌에서 농작물을 수확하면 이웃과 나눠 먹었다. 서로 나누고 보살피는 전통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세상이 변했다. 이웃이 경쟁자가 됐고, 더 많이 차지해야 성공한 사람으로 대접받았다. 하지만 어느 분야든 나눠 먹어야 하는 ‘빵’의 크기는 정해져 있다. 누군가 더 먹는다면 누군가는 적게 먹어야 한다. 그리고 굶는 사람도 생긴다. 이런 사람들을 사회가 충분히 돌봐 준다면 좋겠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이렇게 벼랑 끝으로 몰린 사람들이 결국 자살을 선택한다.
조준행 법무법인 자우 변호사 junhaeng@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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