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해운사만 맥 못 추는 이유

▲ 국내 해운사가 불황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미국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세계 경기가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 동시에 국제교역량이 증가하며 해운업계 역시 회복기를 맞이했다. 이에 따라 머스크 등 글로벌 해운사가 성장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는 모습이다. 반면 국내 해운사는 여전히 불황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영업 전략이 업황에 부합하지 못했거나 정부의 지원이 미흡했기 때문이다. 글로벌 해운시장과 성장이 멈춘 국내 해운업계를 들여다봤다.

한국은 상장 해운사 6개 중 5개 회사가 매출액 기준 상위 100위 안에 들고, 4개 회사가 50위 안에 드는 해운 대국이다. 한진해운은 세계 6위고, 현대상선은 8위에 올라있다. 그러나 수익성은 최악이다. 한진해운은 2011년 이후 14분기 중 3분기를 제외하고 모두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현대상선은 14분기 연속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팬오션은 현재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중이다. 2013년 이후 연속적으로 흑자를 기록한 업체는 대한해운ㆍKSS해운ㆍ흥아해운에 불과하다.

수익성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보니 주가수익률 역시 좋지 않다. 영업이익을 내고 있는 대한해운ㆍKSS해운ㆍ흥아해운의 경우, 연초 대비 주가수익률이 150위 안에 들었다. 그러나 대형선사인 현대상선은 162등이고, 한진해운과 팬오션은 200등 밖에 머물러 있다. 대형선사일수록 돈을 못 벌고 주가가 하락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이는 한국만의 얘기다. 세계 1위 해운업체인 머스크는 사업 규모도 1위고, 주당순이익도 1위다. 연초 대비 주가수익률은 72위다. 현재 머스크의 주가는 연일 신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수많은 해운사가 대규모 적자에 시달렸다. 그러나 이들은 빠르게 손실을 복구했고, 주가 방어에도 성공했다. 반면 국내 업체는 여전히 ‘최악의 불황’이라며 바닥을 해매고 있다. 이유는 크게 두가지로 요약된다. 개별업체의 영업 전략이 업황에 부합하지 못했다는 점과 미미한 정부 지원이다. 일본 대형선사의 경우, 2009년부터 고비용 용선계약을 해지하고 ‘조기 반선’을 감행했다.

 
2009년 3월 일본유센(NYK), MOL, K-Line 일본 대형 3사는 조기반선 등으로 특별손실 총액 302억엔(2900억원)을 기록했다. 다음해 3월에는 337억엔을 반영했다. 이들은 조기반선 손실 반영 이후 그 이상의 이익을 기록했다. 덴마크의 머스크는 ‘조기 투자’를 단행했다. 2011년에 총 20척의 1만80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를 발주했다. 해당 선박은 2013년 이후 12척이 인도됐고, 2015년까지 나머지가 인도될 예정이다. 머스크는 초대형선박 인도 이후 박스당 운임이 7% 이상 하락했음에도 2013년에 전년대비 3배 수준의 영업이익(EBIT)을 거뒀다.

반면 한국 해운업체의 경우, 고비용 용선계약을 이행하다 장기 적자에 직면했다. 다른 선사들이 낮은 선가에서 원가경쟁력이 있는 선박을 발주할 때 우리나라 업체는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수익성 높은 사업부를 매각하고, 선박도 매각하기에 이르렀다. 정부지원책의 속도와 규모 또한 한국 해운업체의 경쟁력을 낮추는데 한몫했다. 주요 해운국가들은 장기 불황기로 들어가는 초입에 주요 해운사를 대상으로 대규모 지원을 실시하고, 자금 부담을 덜어줬다.

중국 정부의 자국해운 지원책은 세계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중국 정부는 해운사에 선박해체보조금을 지원해서 신규선대로 교체하도록 도와주고, 원가경쟁력을 높이는 데 일조하고 있다. 차이나 코스코에 약 2억2444만 달러(2300억원), 차이나 쉬핑에 15척 노후선박 해체 대가로 3500만 달러, 컨테이너 선사인 차이나 쉬핑 컨테이너 라인(CSCL) 5척에 대한 650만 달러를 지원했다.

소형 컨테이너, 무관심이 호황 불러

금융권의 지원책은 지원기간이 길고, 그 규모도 한국에 비해 크다. 국영 차이나 쉬핑그룹이 향후 5년간 자국은행으로부터 지원받기로 한 금액은 8조2000억원이다. 이 회사는 자금조달을 위해 중국개발은행과 전략적 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반면 한국은 정부 지원 시기가 늦었고, 규모도 작고, 기간 역시 짧아 해운업체가 기초체력(펀더멘털)을 개선하기에는 부족했다. 뒤늦게 해운업체의 회사채 상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회사채신속인수제도를 시행했지만, 2년의 상환유예는 해운사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영구채 발행도 검토에 그치고 말았다. 결국 지원책에 대한 논의만 이뤄지는 가운데 해운업체의 현금은 마르고, 이자비용은 늘어났다.

이처럼 한국 해운업체의 훼손된 경쟁력이 빠르게 회복하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1997년 외환위기(IMF) 당시 낮아진 원가경쟁력을 회복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금융위기로 원가경쟁력은 더욱 낮아졌다. 경쟁력이 낮은 해운업체는 전체적인 업황 개선기에 선두업체보다 낮은 회복을 기대해볼 수 있지만, 이 정도의 회복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저성장’이라는 환경에도 지속가능한 이익을 낼 수 있는 업체를 찾아야 한다. 과거 투기발주 수요가 적었던 영역에서 영업해 왔거나 경쟁강도가 높더라도 비용(운항원가와 비운항원가)을 줄일 수 있는 업체가 제격이다.

운항원가를 줄일 수 있는 업체는 원가경쟁력이 높은 신조선 투자를 한 회사다. 국내 해운사 중에서는 LPG 수송을 주로 하고 있는 KSS해운과 소형컨테이너 운송업이 핵심인 흥아해운이 있다. KSS해운은 2010년 6월 이후 LPG선박을 신규 발주하기 시작해 최근까지 총 5척의 LPG선을 발주했다. 흥아해운의 경우 중소형 컨테이너의 선가가 최저 수준을 기록하던 2013년에 총 6척의 1000TEU 컨테이너와 1만DWT 미만의 소형 케미칼선 6척을 발주했다. 비운항원가와 운항원가를 모두 줄인 업체는 대한해운을 들 수 있다. 이 회사는 고가용선선박의 계약을 해지하면서 운항원가를 대폭 낮췄다. 고금리 부채를 상환해 해운업체의 비운항원가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자비용을 줄였다.

▲ 머스크, 일본유센 등 글로벌 해운업체가 다양한 전략과 정부 지원에 힘입어 성장 국면에 진입했다. [사진=뉴시스]
이제 선종별 업황을 보도록 하자. 소형 컨테이너 시장은 장기간 소외되면서 공급량이 자연스럽게 조절됐다. 선박 대형화에 따른 수송원가 절감 경쟁이 심해지면서 소형 컨테이너 선박 투자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1000~2000TEU급 컨테이너 선박 수는 2012년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현재 163척의 동급 선박이 발주돼 대부분 2016년까지 인도될 예정이다. 연간 인도량은 60~70척 사이가 될 것으로 보이는데, 해체량이 인도량보다 많아 선복량 증가가 매우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된다. 2014년 들어 1000~2000TEU 선박이 총 26척 인도된 반면, 50척이 해체됐다. 해체된 선박의 평균선령은 22년으로 선박의 기본적인 내용연수 30년을 크게 하회한다. 현재 1863척의 동급 선박 중 2년 이내 선령이 20년을 넘어서는 선박 수는 320척이나 된다.

공급은 줄어드는 반면 수요 성장은 강세를 이어왔다. 소형 컨테이너는 주로 한국-중국-일본 사이의 거래나 동남아 지역의 수송에 투입된다. 물동량 증가율이 선진국 시장보다 높다. 반면 해당지역 항만에서 기항 가능한 선박 사이즈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대형사가 무조건 유리한 시장이라기보다는 영업네트워크가 중요하다. 한진해운ㆍ현대상선ㆍ팬오션과 글로벌 상위 컨테이너 업체가 시장에서 발을 빼기 시작한 것도 시황개선에 크게 일조했다. 2013년에는 팬오션, 2014년에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해당 노선에서 영업 비중을 줄이면서 기존 참여자들이 반사이익을 보고 있다. 수요는 성장하는 반면 공급은 제한적이고, 경쟁강도는 약화되고 있다. 전체 선종을 통틀어 소형컨테이너는 시장의 펀더멘털이 가장 원만한 개선 추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LNG 시장은 수송화물이 증가하기 이전에 선박의 인도량이 과도하게 늘면서 운임이 하락했다. 일본 대지진 발생 이전에 일일 6만 달러 수준이었던 LNG 선박 기간용선운임은 16만 달러까지 상승했다가 최근에 다시 6만 달러를 기록 중이다. LNG 시장은 장기계약 위주로 운영되고, 스팟(Spot) 시장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2011년 일본 지진 발생 이후 발주된 물량은 투기적인 측면이 있었는데 해당 선박들이 인도됨에 따라 시장운임이 큰 폭으로 하락했다. 현재 시장에는 약 400척의 LNG 선박이 있다. 올해 말까지 총 38척이 인도되고,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차례대로 32척, 30척, 26척이 인도될 예정이다.

LNG 시장 수송수요는 2017년부터 시작하는 미국 셰일가스 수출과 함께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시장에서 운항 중에 있는 선박들은 2017년에 늘어날 수요를 고려하면 과잉발주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수요 공백이 예상되는 2015년과 2016년에는 LNG 선주 입장에서 보릿고개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17년 이전에도 호주와 동남아지역의 수출개시 프로젝트들이 있지만,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인도되기 시작한 선박들을 모두 소화하기는 어렵다.

LPG선은 소형 컨테이너만큼은 아니지만 일반화물운송선 시장의 호황기에 소외된 선종 중 하나다. 덕분에 2007년부터 2008년까지 이어진 선박 과잉발주에 동참하지 않았고, 상대적으로 공급과잉 우려에서 벗어나 있었다. 하지만 2013년과 2014년 LPG 운임이 대폭 상승하면서 발주량이 늘어났고, 2년 동안 발주된 선박은 향후 2년간 대부분 인도될 예정이다.

초대형 LPG운반선인 VLGC(Very Large Gas Carrier)를 기준으로 하면 2013년과 2014년(연초 대비 3분기 동안)에 각각 39척과 52척이 발주됐고, 해당 선박들은 2015년에 36척, 2016년에 49척이 인도될 예정이다. 시장에 총 164척의 VLGC가 있는데 선복량 대비 50% 정도 선대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앞서 LNG 시장에서 확인한 것처럼 장기적인 화물증가가 화물과 선박의 증가시기가 일치하지 않으면 운임은 조정받는다. LPG가스도 미국발 셰일가스 수출 증가가 있기 전까지 중ㆍ단기간 화물부족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돼 2015년과 2016년에는 운임이 소폭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형 컨테이너 시장, 끝나지 않은 치킨게임

벌크시장의 2007년 호황은 전용선 계약을 통해 운송이 이뤄져야 하는 화물이 스팟 시장으로 흘러나오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선가가 크게 하락하고, 인도량도 늘어나면서 대형화주들이 전용선 계약을 늘리고 스팟 시장에 물량을 다량 내놓는 경우가 줄어들었다. 벌크선 운임지수인 발틱운임지수(BDI)는 1985년 1월 4일부터 발표된 지수다. 지수를 처음 발표할 당시 1000포인트에서 시작했고, 지수가 발표된 이후로 2000년대 이전까지는 1000~2000포인트 사이의 박스권에 머물렀다. 수주잔량을 기준으로 보면, 향후 2년간은 각각 선복량이 8.1%, 6.5%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요 증가를 4~5% 정도 가정했을 경우 수급상 크게 불균형을 초래하는 시기는 아니라고 판단된다. 벌크시장은 1990년대 모습을 다시 보여주는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대형 컨테이너 시장의 점유율 싸움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올 9월 세계 1등 컨테이너 선사인 머스크는 2019년까지 초대형 컨테이너 선단을 42만TEU 늘린다고 발표했다. 용선을 포함해 운영하고 있는 280만TEU의 15%에 해당하는 선대확장계획이다. 2011년 대우조선해양에 1만8000TEU 컨테이너 선박 20척을 발주한 후 밝힌 첫 투자 내용이다.

머스크는 2011년 이후 추가 투자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선사들의 투자가 이어지면서 시장은 공급이 조절될 기회를 찾지 못했다. 수주잔량 기준으로 8000TEU 이상의 대형 컨테이너 인도 스케줄을 예상해보면 2016년 상반기까지 공급증가율이 크게 줄어들긴 힘들다. 전년대비 20% 내외의 공급증가는 아시아-미주, 아시아-유럽, 미주-유럽 노선의 물동량으로 커버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또한 대형 컨테이너 시장은 상위 업체의 대규모 동맹 구축으로 점유율 싸움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동맹 구축을 통해 시장 구조조정이 더욱 늦어지고 있어 2015년에도 시장회복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엄경아 신영증권 선임연구원 um.kyung-a@shinyo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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