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왕섭의 Brand Speech

▲ 로마 교황청에서는 성인을 추대할 때 ‘악마의 대변인’을 둬 성인을 객관적으로 평가한다.[사진=뉴시스]
삼성전자가 갤럭시 브랜드를 이용해 중저가 스마트폰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갤럭시S처럼 갤럭시에 또 다른 알파벳을 붙이는 식이다. 상위 브랜드 ‘갤럭시’를 하위 브랜드로 연결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하지만 이 전략은 리스크가 크다. 갤럭시 브랜드에 ‘싸구려 이미지’가 전이될 수 있어서다. 삼성의 ‘중저가 전략’을 냉철하게 비판한 이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가톨릭에는 ‘악마의 대변인(Advocatus Diaboli)’이라는 특별한 직책이 있다. 가톨릭에서 악마의 대변인은 어떤 인물을 성인聖人으로 추대하는 과정에서 그 인물의 행적ㆍ품성에 회의적인 의견이나 근거를 제시해 성인 추대를 방해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성인으로 추대할 인물이 행한 기적이 사기였다거나 우연 혹은 과학으로 설명이 가능하다는 걸 설파하는 식이다.

당연히 악마의 대변인을 수행하는 사람은 성인 후보자를 정확히 꿰뚫어 봐야 한다. 반대로 성인을 추대하는 사람들은 악마의 대변인이 내놓는 반대 논리를 성공적으로 방어해야만 그 인물을 성인으로 추대할 수 있다. 마더 테레사(Teresa)의 복자 추대를 앞두고 로마 교황청이 무신론자인 크리스토퍼 에릭 히친스(Christopher Eric Hitchens)에게 테레사 수녀의 연구를 요청한 것은 가톨릭 성직자가 아닌 세속 학자가 악마의 대변인을 맡은 사례로 유명하다.

악마의 대변인은 가톨릭에서만 사용하는 게 아니다. 논리학ㆍ정치학ㆍ행정학ㆍ심리학 등에서도 이런 방법을 활용한다. 집단적 사고에 의한 오류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다. 기업의 존폐를 좌우하는 전략을 결정하는 회의에서 집단적 사고의 오류로 잘못된 의사결정이 나온다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 막강한 권력을 가진 몇몇 사람들의 뜻에 회의 참석자들이 동조하거나 함몰된다면 그 의사결정은 기업이 의도한 긍정적 결과를 가져올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전략회의에서 나온 예측결과의 값이 99% 진실이라도 소수의 누군가는 그 의사결정에 의문을 던져야 하는 이유다. 그래야 행여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결과를 피할 수 있고, 결정된 전략의 실행 과정에서 나타날 장애물도 제거할 수 있다. 

브랜드 전략을 짤 때도 마찬가지다. 기업은 시장에서 경쟁사와 어떻게 싸워 이길 것인지 전략을 결정해야 한다. 브랜드 개발과정에서도 수많은 의사결정이 필요하다. 때문에 악마의 대변인은 반드시 필요하고, 소수 반대자의 의견도 수렴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삼성전자의 브랜드 전략에 이런 과정이 있었는지 의문이다. 언론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최근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에 빼앗긴 점유율을 되찾기 위해 중저가 스마트폰 브랜드를 선보이기로 했다. 갤럭시S처럼 갤럭시 뒤에 다른 알파벳을 붙이는 식이다. 상위 브랜드인 ‘갤럭시’를 하위 브랜드인 고가의 ‘S’, 중가의 ‘A(예시)’, 저가의 ‘B(예시)’로 연결하겠다는 거다. 장담할 수는 없지만 이 전략은 단기적 매출 증가에는 도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론 ‘갤럭시’ 브랜드에 긍정적이지 않을 듯하다.

물론 이를 통해 중국의 저가 스마트폰 경쟁자를 공략할 수는 있다. 그러나 중국의 저가 스마트폰 소비자들이 중저가 갤럭시가 아닌 중국 저가 스마트폰으로만 유입된다면 프리미엄 시장에 포지셔닝된 갤럭시S마저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 더구나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에서 확고한 영역을 구축한 애플 아이폰과 경쟁하겠다던 삼성의 전략은 더 멀어질 게 분명하다. 지금도 갤럭시S 브랜드 경쟁력이 애플 아이폰과 비슷하다고 보기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저가 전략으로 갤럭시 브랜드에 ‘싸구려 이미지’가 전이된다면 어떨까. 삼성전자로선 상상하기도 싫은 결과일 것이다. 삼성전자에 ‘글로벌 삼성이 보증하는 신규 브랜드’ 전략을 주장할 수 있는 악마의 대변인이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브랜드 포트폴리오 전략이 나왔을까.
임왕섭 브랜드 컨설턴트 kingp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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