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금융 ‘15년의 발자취’

▲ 사회적 금융을 지원받아 창업에 성공한 이들은 사회적 문제 해결에도 적극적이다.[사진=아름다운재단 제공]
서민에게 대출은 ‘양날의 검’이다. 대출을 받으면 ‘자금 숨통’이 트이지만 갚지 못하면 온갖 수모를 다 겪는다. 신용등급이 낮을수록 턱없이 높아지는 금리도 목을 조인다. 여기 이런 대출관행에 경종을 울리는 ‘시스템’이 있다. 이른바 ‘사회적 금융’이라는 건데, 신용등급이 낮은 이들에게 대출을 해주면서도 낮은 금리를 유도한다. 뜻밖에도 상환율도 상당히 높다. 이유는 간단하다. 돈을 빌려주고, 그 돈을 갚을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사회적 금융 15년, 그들의 발자취를 쫓아가 봤다.

그동안 서민들은 금융권에서 소외받기 일쑤였다. 금융권 문턱이 매우 높아서다.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연 2.00%로 낮아진 지금도 다르지 않다. 기준금리 인하로 시중은행(1금융권)의 대출금리가 적게는 0.2% 포인트, 많게는 0.8% 포인트까지 떨어져 서민의 대출도 쉬워졌을 것 같지만 아니다. 담보대출이 아닌 신용대출 금리는 여전히 평균 5%대를 웃돌고 있다.

당연히 신용등급이 낮으면 금리는 더 뛴다. 1금융권 기준으로 5등급의 평균 신용대출 금리는 연 5.6%, 6등급은 연 6.85%, 7등급은 8.85%로 1등급에 약 1%씩 오른다. 특히 1금융권 10곳의 금리별 신용대출 취급 비중을 보면 78.4%가 연 금리 6% 미만이다. 신용등급이 5등급 이상은 돼야 1금융권을 이용할 수 있는 셈이다. 저축은행의 신용대출 금리는 더 높다. 최저 연 13.88%에서부터 최대 연 34.9%로 평균 신용대출 금리는 연 25% 수준이다. 일반 대부업체 금리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서민 숨통 트는 곳, 사회적 금융

문제는 가난할수록 신용등급이 낮아 1금융권 대출이 어려운 탓에 높은 이자를 물고 돈을 빌릴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가계금융조사에 따르면 소득 5분위(연 소득 1억원 이상)의 경우 81.9%가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 하지만 4분위(연 소득 5000만원 수준)는 68.6%, 소득 3분위(연 소득 3000만원 수준)는 70.2%, 소득 2분위(연 소득 2000만원 수준)는 67.1%, 소득 1분위(연 소득 1000만원 이하)는 57.0%였다. 1금융권 문턱이 높은 탓에 연 소득이 낮을수록 1금융권보다 금리가 훨씬 높은 비은행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는다는 얘기다. 은행거래가 많지 않은 사람, 신용등급을 잘 관리하지 못한 사람, 사업 실패로 신용등급이 뚝 떨어진 이들에게 1금융권의 신용대출은 ‘그림의 떡’이다. 담보대출 역시 사업에 실패했을 때 집도 없이 길바닥에 나앉을 각오를 하지 않으면 받기 어렵다.

 
이런 이들의 숨통을 터주고 있는 게 바로 ‘사회적 금융(Social Finance)’이다. 전통금융이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했다면 사회적 금융은 ‘사회적 가치 실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회적 금융은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 등 사회공동체적 가치를 실현하는 자금 수요자에 대출ㆍ투자, 서민자활지원을 위한 ‘마이크로 크레디트’ ‘임팩트 금융(Impact Finance)’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취지는 좋지만 15여년 전 사회적 금융이 한국에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우려가 많았다. 첫째는 신용등급이 낮아 1금융권 대출심사에서 탈락한 이들이 대출 수요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성실한 수요자를 어떻게 찾느냐였다. 전통금융의 대안이라는 점 때문에 강제적 채권 추심이 어려운데 상환율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 낮은 금리를 적용하는 데 운영비는 감당할 수 있는지 등도 관건이었다. 사회적 금융, 과연 어떻게 흘러가고 있을까.

빈민들의 자활을 돕는데 돈을 빌려줘 성공을 거둔 방글라데시 그라민 은행의 ‘마이크로 크레디트’ 시스템을 그대로 한국에 도입한 ‘신나는 조합’을 보자. 1999년부터 사업을 시작한 신나는 조합은 지난해까지 900여명에게 약 110억원의 자금을 대출해줬다. 자금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자금(96억5000만원), 후원금 등 기업의 민간자금(13억5000만원)으로 조달했다. 대출 용도는 주로 창업자금, 긴급생계자금, 사회적 기업 경영개선 자금 등이다. 대출 금리는 용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략 2~3%대를 유지하고 있다. 상환율은 90% 수준이다. 신나는 조합으로부터 대출받은 이들 대부분이 신용등급이 낮은 축에 속한다는 걸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상환율이다. 신나는 조합 관계자는 “최근엔 5~6등급에 해당하는 이들도 있지만, 2012년 전까지만 해도 모두 7등급 이하였다”고 설명했다.

 
사회 취약계층의 자활을 돕는다는 취지로 2003년 발족한 사회연대은행은 어떨까. 지자체와 공공기관의 정책자금, 기업의 후원금 등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사회연대은행의 운용기금은 약 650억원에 이른다. 대표적인 사업이 저소득층 창업지원(무지개가게)인데, 올 8월 현재 약 360억원을 지원했다. 지원을 받은 ‘무지개가게’는 약 1850개에 달한다. 대출금리는 2% 내외다. 1금융권 문턱을 넘지 못한 낮은 신용등급의 대출자가 대부분인데, 신나는 조합과 마찬가지로 상환율이 꽤 높다. 사회연대은행은 2003~2008년 저소득층 창업지원에 148억여원을 투입하고, 2009~2013년 145억여원의 지원금을 회수했다. 시차가 있기 때문에 단순 계산하긴 어렵지만 대출상환이 통상 3~5년 내에 이뤄진다는 걸 감안하면 80~90% 이상의 상환율을 기록한 셈이다.

정책자금 없이 순수 민간자금으로 운영되는 곳도 있다. 2004년부터 한부모 여성가장의 창업을 지원하고 있는 아름다운재단의 ‘희망가게’ 사업이 대표적이다. 올해로 10년째를 맞고 있지만 총 대출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지금까지 216개 점포에 약 80억원을 대출했다. 임차보증금은 7년간 무이자, 운영자금은 2000만원까지 연 2% 금리로 지원하고 있다. 돈을 빌리러 오는 이들은 여지없이 1금융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재단 관계자는 “한부모 여성가장은 결혼 후 전업주부가 된 경우가 많아서 1금융권 신용등급은 당연히 낮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 사업의 경우 초창기엔 개점 이후 영업을 종료하는 비율이 높아 상환율이 낮았지만, 지금은 문 닫는 점포가 많지 않아 상환율은 87% (2014년 기준)를 나타내고 있다.

지난해 3월 청년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돕겠다며 출범한 토닥토닥협동조합(토토협) 역시 순수 민간재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조합원이 출자를 해서 2~3%의 낮은 금리로 조합원에게 20만~50만원까지 생계형 대출을 해주는 방식이다. 그동안 모인 출자금은 약 5500만원. 지난해 11월부터 81명의 조합원이 약 3400만원을 대출해갔다. 전문대출기관이 아닌 탓에 조합원이 돈을 갚지 않으면 떼일 가능성이 있지 않느냐는 우려도 있었다. 직장을 구하지 못한 젊은이를 대상으로 하는 만큼 신용등급도 별 볼일 없을 게 뻔했다. 조금득 토토협 대표는 “아직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상환율을 얘기하기는 어렵지만, 워낙 소액대출이라 그런지 대부분 몇달 안에 갚는다”며 “11월이 딱 1년인 만큼 계산해봐야 알겠지만, 상환율은 대략 95%선일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사회적 금융 15년, 우려보다 기대감 커

사회적 금융을 담당하고 있는 곳의 재무상태가 우려했던 것보다 건전하게 운영되고 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재무적 건전성만을 따져 대출을 해주고, 상환기간이 도래하면 채무자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돈을 회수해가는 전통 금융권과 달라서다. 창업을 하려 하면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도록 재무관리 등을 지속적으로 컨설팅하고, 상환기간이 도래했을 때 여의치 않다고 판단되면 기간을 연장해준다. 신나는 조합 관계자는 “은행처럼 채권추심을 하지 않으니까 대출금을 회수할 방법은 창업을 성공적으로 도와주는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창업자금이 아닌 생계형 자금을 대출해주는 토토협 역시 대출금을 갚을 수 있도록 재무관리나 일자리 알선 등 무형의 지원을 쏟는다.

 
사회연대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성공한 A씨의 사례는 사회적 금융의 역할을 명확히 보여 준다. 그는 한때 갈빗집과 치킨집을 차렸다가 실패해 가정이 파탄 날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사회연대은행으로부터 2000만원을 대출받아 국수집을 차려 성공했다. 중요한 건 그가 국수집을 차린 후 1~2년 뒤에 대출금을 모두 갚을 수 있었지만, 사회연대은행은 상환을 재촉하지 않았다는 거다. 되레 수익금을 시설에 재투자하라고 조언했다. 결국 그는 대출금을 5년에 걸쳐 갚았다. 이후 A씨는 어떻게 했을까. 자신처럼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이 같은 국수집을 차릴 수 있도록 노하우를 무료로 전수했고, 정기적으로 노인들을 위한 무료급식도 시작했다.

사회적 금융의 지원을 받은 이들이 모두 A씨처럼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실패도 한다. 주목할 점은 사회적 금융의 리스크가 우려했던 것만큼 크지 않을뿐더러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성과까지 거두고 있다는 거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사회적 금융이 ‘돈 빌려주고 돈 받는’ 대출의 관점을 바꿔놓을 수 있다는 점이다. 돈을 빌려주고, 돈을 갚을 수 있도록 후방지원을 아끼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적 금융의 가치가 더 조명돼야 하는 이유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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