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이순신공세가 ㊲

사천ㆍ곤양에서 적을 격파한 순신은 더 많은 적선이 당포 앞바다에 있다는 정보를 듣고 밤새도록 행선해 당포에 이르렀다. 과연 적선이 많았는데, 그중 대선이 9척, 중선ㆍ소선이 아울러 12척이니 합 21척이었다. 순신의 두번째 전투가 시작되고 있었다.

▲ 순신은 거북선을 적장이 탄 배를 향해 전진시켰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순신의 함대가 꽁무니를 빼자 적군들은 의기충천해 고함을 치고 조총을 쏘면서 싸움을 돋우었다. 바로 그때 청천벽력이 일어나고 풍랑이 솟아오르며 검은 안개가 일어 하늘을 덮었다. 물결은 바다를 뒤집어 일본 병선 15척이 태산 같은 파도 속으로 파묻쳐 몰사하고 말았다. 이 광경을 멀지 않은 곳에서 바라보던 조선의 제장들은 그제야 순신의 선견지명을 탄복하며 물었다.

순신은 뜻밖에도 이렇게 말했다. “우리 인생은 시적 취미를 가졌으니, 옛 성인도 노래와 춤을 가르쳤소. 그러니깐 그대들은 고시를 잘 읽으오. 고시는 또 일종의 병서요. ‘독룡잠처수편청毒龍潛處水偏淸(당나라 중당中唐 때 시인 노륜盧綸의 시구)’이라. 독룡이 잠긴 곳에는 물이 맑다 하였다. 우리가 진을 쳤던 그곳은 물빛이 극히 맑기 때문에 반드시 사나운 이무기가 있을 것이오. 그때는 이무기가 잠들어 있을 때라 우리의 함대가 이동하면서 북ㆍ나팔ㆍ함성으로 이무기의 잠을 깨운 것이오. 우리가 떠난 뒤 사나운 물결이 일어난 연유가 여기에 있소.”

삼도의 제장과 군졸은 “순신은 성인聖人일 것이며 당세의 제갈량”이라고 숭배하였다. “요행히 들어맞은 것이겠지, 어찌 그럴라고?”라며 투덜거리는 원균을 제외하고 말이다. 후인이 시를 지어 찬하였다.

水淸龍臥處 月黑雁飛時
籌策通神物 威聲振蠻夷
물이 맑은 곳은 용이 누운 곳
달이 어둑할 때는 기러기 날 때
지모는 귀신과 사물에 통하고
위엄은 사방을 진동시킨다

물론 이 이야기는 야사에 나오는 거다. 용이란 동물은 상고시대의 수서水棲동물로 석척류(도마뱀의 한 종류)에 속한다. 그 행동이 변화무쌍해 고대로부터 숭상하여 왔지만 지금 시대에는 실로 보기 어렵다. 세상 사람들이 용을 상상동물이라고 치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용이 세상에 전혀 없었던 동물이라고 단정해선 안 된다. 고사古史를 보면, 신라 시조왕 때 두 마리 용이 금성정金城井, 미추왕 땐 용궁지龍宮池에 나타났다. 그밖에도 일일이 예를 다 들기 어렵다.

▲ 두번째 출정에서도 대승을 거둔 순신의 군대는 기세등등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중국에도 예로부터 이룡기관, 황룡부주(황룡이 배를 지고 간다) 등 용을 활용한 문구가 무궁무진하다. 용의 유무는 고사하고 용의 형상은 대개 이렇다. “몸은 뱀과 같고, 머리는 낙타와 같고, 뿔은 사슴과 같고, 눈은 귀신과 같고, 귀는 소와 같고, 비늘은 잉어와 같고, 턱밑에 역린이 있고, 발바닥은 호랑이와 같고, 발톱은 매와 같다(「본초강목本草綱目」”. 어찌됐든 이순신공세가에선 이 용을 바다와 강에 있는 큰 뱀의 종류라고 추정한다.

물 속 독룡을 이용한 전략

조수의 진퇴와 독룡의 발작, 다시 말해 자연적 힘을 이용해 사천ㆍ곤양의 적을 격파한 순신은 더 많은 적선이 당포 앞바다에 있다는 정보를 듣고 밤새도록 행선, 창선도 사량도를 거쳐 당포에 이르렀다.
과연 적선이 많았는데, 그중 대선이 9척, 중선ㆍ소선이 아울러 12척이니 합 21척이었다. 그중 제일 큰 배에는 상당히 높은 누각이 있고 그 외면外面은 붉은 비단으로 만든 장막이 둘러져 있다. 적병은 순신 함대의 진격에 대항해 일제히 조총을 놓아 철환의 비를 내려 퍼붓는다.

순신은 높은 누각이 있는 배에 적의 대장이 탔을 것으로 짐작하고 즉시 거북선을 출동시켜 맞부딪치게 하였다. 거북선은 용의 머리를 번쩍 들어 굉굉轟轟한 소리를 지르며 대포를 쏘아 현자 철환을 보냈다. 또한 천자 지자총통으로 대장군전을 방사해 그 배를 깨뜨렸다. 거북선의 뒤를 이어 제장선이 돌입, 일제히 총통ㆍ화전ㆍ장편전을 쏘았다. 그때 중위장 순천부사 권준이 적의 철환을 무릅쓰고 대장선 밑으로 달려들어 활을 쏘아 적장의 이마를 맞혔다.

하지만 적장은 이마에 박힌 살을 빼고 태연자약하게 싸움을 감독한다. 그러자 권준의 두번째 화살이 그 적장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는 층루에서 떨어졌다. 사도첨사 김완과 군관 진무성陳武晟이 그 배에 뛰어올라 넘어진 적장의 머리를 베고 그를 구하는 적장의 근시 6인을 베었다. 우후 이몽구는 그 배에 남은 군사를 사로잡고 배를 탈취하였다.(1592년 6월 2일, 2차 출전의 두번째 싸움, 당포 해전.)

 
대장군전이라는 무기는 쉽게 말해 ‘대포의 철환’이다. 그 제조 방식은 대포의 철환보다 한층 무서운 것이다. 파괴력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머리는 쇳덩어리요, 몸통은 참나무에 6개의 날개가 있고, 꼬리에는 쇠공이가 첨부돼 날아가는 도중에도 쇠공이가 튕겨 힘을 증가시켰다. 능히 10리 밖 성곽이나 누각선을 당파할 만했다. 이 대장군전을 개발한 이는 순신이었다. 이순신은 ‘충무전서 당포전승 장계’에 이렇게 썼다. “… 거북선이 층루선 아래를 파고들었다. 거북선 입으로는 현자 철환을, 천자 지자총통으로는 대장군전을 방사해 배를 당파했다….”

순신이 발명한 대장군전의 위력

우후 이몽구는 적의 층루선을 수색해 적장의 책상 위에 있는 금단선(금으로 만든 단선. 단선은 납작하게 펴진 부챗살에 종이나 비단을 붙여서 만든 둥근 모양의 일반적인 부채)을 얻었다. 부채 오른편에 ‘우시축전수羽柴筑前守’라는 5자를 쓰고 한가운데엔 ‘유월팔일수길六月八日秀吉’이라는 6자를 썼다. 왼편에는 ‘구정유구수전龜井琉球守殿’이라는 6자가 쓰여 있다. 이몽구는 이 부채를 순신에게 바쳤다.

우시는 풍신이 되기 전까지 수길의 성이니 이 금단선은 수길이 우시씨氏로 있던 시대에 유구琉球태수로 있는 구정龜井씨에게 선물로 증여한 것인 듯하다. 이번 해전에서 조선수군에게 패해 사망한 일본대장의 이름이 유구태수인 ‘구정자구龜井茲矩(가메이 고레노리)’ 다시 말해 충승沖繩(오키나와) 도주라는 게 밝혀졌다. [※ 참고: 물론 다른 설도 있다. 이때 죽은 사람은 가메이 고레노리龜井茲矩가 아니라 구루시마 미치유키來島通幸(구루시마 미치후사來島通總의 형)라는 분석도 있다. 그렇다면 구루시마 미치유키와 가메이 고레노리는 함께 출정해 미치유키는 목숨을 잃고, 고레노리는 부채를 잃었다는 것이 된다. 하지만 구루시마 미치유키는 이번 당포해전이 아닌 2차 출전의 네번째 싸움인 율포해전에서 패해 자결했다는 말도 있다.] <다음호에 계속>
정리 | 이남석 대표 cvo@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