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희의 비만 Exit | 살과 사랑 이야기

▲ 미국에 유독 비만환자가 많은 이유는 식습관과 관련이 깊다.[사진=뉴시스]
얼마 전 필자는 ‘비만강의’차 뉴욕을 방문했다. 불완전하지만 그럭저럭 비만의 척도로 쓰이는 체질량지수(BMI) 30 이상의 비만인구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가 미국이다. 다이어트 전문가로서 비만 원조국가인 미국을 방문한다는 건 중요한 의미가 있다. 대체 미국인은 왜 그토록 뚱뚱해진 것일까. 운동이나 식생활을 포함한 생활패턴과 비만의 개연성을 꼭 확인해 보고 싶었다.

답은 의외로 쉽게 풀렸다. 그것도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말이다. 인천공항을 출발해 뉴욕행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디트로이트 공항을 경유할 때 얘기다. 몇시간 연착되고 탑승 게이트가 끝에서 끝으로 바뀌는 등 일정이 힘들었지만 첫날은 맨해튼에 있는 호텔로 가는 것 뿐이라 조급하진 않았다. 공항 대기실 의자에 앉아 쉬고 있던 필자의 눈 앞에 충격적인 모습이 펼쳐졌다. 코끼리 하체를 가진 여성이 무언가를 끊임없이 먹고 있었던 것이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 여성은 감자튀김과 롤 샌드위치가 담긴 그릇을 들고 있었는데 1회용 용기의 크기가 아예 컸다. 특이한 것은 작은 파우치에 담긴 각종 소스들이었다. 프렌치 프라이를 듬뿍 찍어 먹거나 심지어 샌드위치를 벌린 후 그 속에 노랗고 빨간 소스들을 집중적으로 뿌려서, 아니 쏟아부어 먹고 있었다. 뭇 여성을 뚫어지게 바라볼 순 없으므로 곁눈질로 그 여성을 관찰하다 보니 의문이 생겼다. 늘씬하고 아름다운 외모를 갖고 싶은 여성 고유의 본능이 그녀에겐 없는 것일까.

물론 그 여성을 비만으로 이끈 다양한 원인을 10여분의 관찰로 찾아내긴 불가능하다. 병적이거나 유전적인 불가항력적 요소 또는 정신적ㆍ환경적 원인 등 다양한 원인으로 저 지경에 이르렀을 수도 있다. 세상일이 그렇듯 당면 문제는 해결이 빠를수록 좋다. 하지만 그녀의 식사하는 모습을 보면 해결 의지가 전혀 없다. 공공장소에서 다른 사람의 시선쯤은 아랑곳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디트로이트 공항은 게이트 이동 통로에 승객들의 편의를 위해 평형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했다. 식사를 마친 그녀는 육중한 몸을 그 위에 싣고 어디론가 향했다. 평형 에스컬레이터의 속도가 느린 탓에 대부분 사람들이 그 위에서 걷지만 그녀만은 예외다. 그녀가 떠난 의자엔 먹고 버린 빈 용기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그 용기를 무릎 위에 올려봤는데, 작은 노트북 만하다. 그녀의 체지방 양을 늘리는데 기여한 노란 소스에서는 여전히 진한 향기가 배어 나온다.

음식을 먹되 추가 열량을 경계했다면 그녀는 각종 소스를 담은 파우치라도 음식용기 안에 남겨야 했다. 200㎏은 족히 돼보이는 그녀가 필자에게 보여준 일련의 행동은 살을 찌우겠다는 행동뿐이었다. 왜 그럴까. 다시 비행기를 타고 디트로이트를 떠나 뉴욕의 호텔에 도착할 때까지 필자의 머릿속은 온통 그녀 생각뿐이었다. 다음날 아침 뉴욕의 첫 일정을 위해 눈을 떴을 때 머리가 다 아팠다. 시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박창희 다이어트 프로그래머 hankookjoa@hanmail.net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