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실의 묘한 덫, ‘주의의무’
과실의 묘한 덫, ‘주의의무’
  • 조준행 법무법인 자우 변호사
  • 호수 115
  • 승인 2014.11.04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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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행의 재밌는 법테크

▲ 과실상계는 신의성실 원칙의 표현이다. 그런데 참작 정도는 법원의 재량이다.[사진=뉴시스]
작은 골목에서 서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오토바이가 튀어나와 충돌했다. 차량 소유주는 당연히 과실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게 웬걸. 엉뚱하게도 과실 20%가 인정됐다. 왜 일까.

승용차 핸들을 잡은 한 여인이 주차장을 빠져나와 골목길에 들어섰다. 그 순간 오토바이 한대가 갑자기 멈춰서더니 옆으로 쓰러졌다. 여인은 차에서 내려 오토바이 운전자에게 다가갔다. 다행히 다친 데는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오토바이가 바닥에 부딪혀 부서졌다. 그런데 오토바이 운전자는 수리를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여인은 어이가 없었다. 자신에게 무슨 잘못이 있다고 오토바이를 수리해 줘야 한단 말인가. 난감하던 차에 보험회사 직원이 생각나 전화를 했다.

보험회사 직원은 이런 경우 승용차 운전자에게도 과실이 있으니, 보험처리를 하자고 했다. 여인은 왜 자신에게 과실이 있는지, 책임을 져야 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런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실상계’라는 개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채무불이행의 경우 채무자는 채권자에게 손해배상을 해줘야 하고, 불법행위를 한 가해자도 피해자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  그런데 채권자, 피해자 모두에게 잘못이 있다면 손해배상액을 정할 때 참작하는 게 공평하다. 이를 ‘과실상계’라고 한다.

구체적인 예를 보자. 트럭 운전자가 시속 20㎞~30㎞의 속력으로 중앙선을 침범해 좌회전을 하다 다른 차량과 충돌했다. 중앙선을 침범한 트럭 운전자에게는 분명 업무상 과실이 있다. 그런데 사고를 당한 다른 차량의 피해자가 혈중알코올농도 0.128%의 술에 취한 상태로 차량을 운전중이었다. 피해자는 전방을 제대로 살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전방을 제대로 살폈더라면 사고를 피하거나 손해의 확대를 막을 수 있었다.

이 사안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은 이렇다. “트럭 운전자와 상대방 운전자의 과실비율을 5대5로 본 것은 불합리하지 않다.” 술에 취해 운전한 피해자의 과실을 50% 인정한 것이다. 하나의 사례를 더 보자. A씨는 2010년께 B씨와 C씨의 공동중개를 통해 다가구주택 임대차계약을 체결했다. 주택 실소유자는 사망한 D씨로 자식들이 공동상속했다. 그러나 상속등기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D씨 손자 중 한명이 작은아버지로부터 임대차계약 대리인으로 위임을 받았다며 계약금과 잔금 5000만원을 A씨로부터 받아갔다. A씨가 입주하자 D씨의 아들 중 한 명이 “조카에게 대리권을 준 사실이 없다”며 집을 비워달라고 요구했다. 이런 상황에서 A씨는 “부동산중개인이 주택 실소유자 확인 의무를 게을리해 보증금을 손해 봤다”며 중개인 BㆍC씨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중개인들 과실을 80%로 판단해 4000만원을 배상하도록 했다. 그런데 2심은 100% 중개인들 과실로 인정했다. 대법원의 판결은 1심과 비슷하다. “주택 소유자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A씨가 중개인만 믿고 등기권리증이나 위임장 등을 통해 대리권 유무 확인을 소홀히 한 과실이 인정된다.” A씨에게도 과실이 있으므로 이를 참작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사례에서 보듯 여인이 운전자로서의 모든 주의의무를 다했다고는 할 수 없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오토바이 파손에 대해 책임이 있다. 다만 오토바이 운전자의 과실도 적지 않으므로 ‘과실상계’를 하면 여인의 배상범위는 줄어들 것이다. 보험사 직원의 조언을 받아들이는 것이 현명할 듯하다. 
조준행 법무법인 자우 변호사 junhaeng@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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