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공 5년 만의 ‘제철 포기’, 마침표일까 쉼표일까
완공 5년 만의 ‘제철 포기’, 마침표일까 쉼표일까
  • 김은경 객원기자
  • 호수 115
  • 승인 2014.11.05 10: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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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제철 경영권 포기한 김준기 회장

▲ 김준기 회장이 급격한 구조조정 요구에 시달리고 있다.[사진=뉴시스]
김준기(70) 동부그룹 회장이 창업 45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 애지중지 키워왔던 주력 계열사들을 하나둘씩 남의 손에 넘겨주는 아픔을 겪게 된 것. 25세에 창업해 10대 그룹으로까지 사세社勢를 불려왔던 그가 최근 급격한 구조조정 요구에 시달리고 있다. 금융 중심으로 그룹이 축소 재편될 것이란 관측마저 나오는 상황. 그가 이 난국을 어떻게 돌파할지 궁금하다.

재계 순위 17위(공기업 제외, 자산기준)인 동부그룹이 구조조정을 하겠다며 내놓은 기업은 큰 회사만 해도 5~6곳에 이른다. 동부제철, 동부특수강, 동부메탈, 동부하이텍, 동부건설, 동부발전당진 등등. 모두 동부의 비非금융부문 주요 계열사들이다. 주거래은행인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주도하는 구조조정 작업이 최근 가속도를 내면서 김준기 회장이 벼랑 끝에 몰렸다. 그가 누구인가. 국내 그룹기업 창업 1세대 중 현장을 뛰고 있는 거의 유일한 기업인이다. 또한 국내 재계 1세대를 대표하는 고故 이병철ㆍ정주영씨를 잇는 해방세대 중 유일하게 10대 그룹을 일궈낸 관록 있는 기업가이기도 하다. 이병철, 정주영 회장 등보다 30~40년 늦게 창업해 20~30년 이상 그들과 함께 활동했고, 지금까지 경영 일선을 지켜온 특이한 인물이다.

그런 그가 최근 자존심 상하는 결단을 내렸다. 지난 10월 23일 애지중지하던 동부제철 경영에서 물러나기로 한 것. 채권단 압박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40여년간 ‘산업보국産業報國’이란 신념 아래 길러온 주력 계열사 동부제철 경영권을 채권단 손에 넘겨준 심정이 어땠을까. 이와 관련, 김 회장은 산은과 경영정상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주된 내용은 ▲차등 무상감자(대주주 100대1, 일반주주 4대1) ▲당진 열연공장(전기로) 가동 중단 ▲530억원 출자전환 ▲신규자금 6000억원 지원 ▲금리인하(기존 담보채권 연 3%, 무담보채권 연 1%) 등이다.

채권단이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을 이유로 대주주의 차등 무상감자를 관철해 김 회장은 1% 미만의 소액주주로 전락했다. 경영을 맡도록 해달라고 계속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신 정상화 과정에서 김 회장이 사재 출연 등으로 기여한다면 동부제철 주식 우선매수청구권을 부여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김 회장이 동부제철 경영권을 되찾을 수 있는 불씨는 살려 놓은 셈. 하지만 결과는 예단할 수 없다.

이날 그는 임직원들에게 이메일로 자신의 심경을 알리고 당부도 했다. “동부제철의 미래는 이제 여러분 손에 달렸다. 전기로 제철사업에 바쳤던 꿈은 잠시 좌절됐지만, 세계 제일의 제철회사를 위해 끝까지 노력해 달라. 머지않아 자율협약(채권단관리)을 졸업하고 경영이 정상화되기를 바라며, 최선을 다해 동부제철을 돕겠다.” 언론들은 ‘철강왕의 꿈 내려놓다’ ‘산업보국 꿈 접어’ ‘제철사업 이 악물고 떠나보내다’ ‘30년 철강왕 도전 멈추다’ ‘못다 핀 철강왕의 꿈’ 등이란 논평을 앞 다퉈 냈다. 하지만 그는 “동부제철의 꿈은 ‘잠시’ 좌절됐지만…” “‘머지않아 자율협약(채권단관리)을 졸업하고…”라며 경영권 회복 의지를 내비쳤다. 그의 퇴진이 ‘마침표’인지 ‘쉼표’인지는 좀 더 두고 봐야겠지만, 경영권 회복이 말처럼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동부건설 경영권도 장담 못해

동부그룹은 1984년 동부제철 전신인 동진제강을 인수해 냉연강판 사업을 벌인다. 2007년엔 전기로 방식의 열연공장을 착공하며 일관제철소의 꿈에도 도전한다. 포스코(고로 방식)로부터 열연을 공급받아 철강제품을 만드는 구조에서 탈피하기 위해서였다. 투자액은 1조3000억원 상당. 2007년 11월 열연공장 기공식에서 그는 “전기로 제철사업은 원료 자립을 위한 오랜 숙원을 실현하는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2009년 완공한 열연 공장이 철강시황 부진으로 만성적자 행진을 벌이며 그룹 유동성 위기로 연결됐다. 가동 시점이 공교롭게도 글로벌 철강시장에 중국산이 넘쳐나던 시기였다. 지난해 9월엔 현대제철(포스코와 같은 고로 방식)이 당진 3고로를 완공해 열연 공급과잉은 더욱 심해졌다. 동부제철은 고로 대신 전기로를 선택해 투자비 부담을 줄였지만 가동 이후 악재가 터진 것. 고로용 철광석 가격은 하락세를 보인 반면, 전기로 원재료인 고철 가격은 상승세를 거듭했다. 제품값은 떨어지는데 원료 가격은 오르니 공장을 돌릴수록 적자가 늘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매출은 3조7812억원 상당에 그쳤고, 회사 빚은 2조원을 넘어설 정도로 커졌다. 부채비율이 높아지면서 지난해부터 금융권에서 유동성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난해 10월 김 회장은 직접 나서 “동부제철 차입구조는 정상적이며, 부채비율이 높은 것은 신사업 투자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해명했다. 시장은 해명을 받아들여주지 않았다. 결국 김 회장은 지난해 11월 3조원에 달하는 자구책을 발표하며 “구조조정에 힘쓰겠다”는 의지를 재차 밝힌다. 하지만 올 7월 채권단과 경영 자율협약(채권단관리)을 맺었고, 10월 23일엔 경영권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재계 관계자는 “다른 대기업 2ㆍ3세 오너들과는 달리 김 회장은 관록 있는 창업 1세대라는 자부심이 강해 그룹 위기상황을 좀 더 냉정하게 받아들이지 못한 것 같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동부제철처럼 기간산업이라며 김 회장이 심혈을 기울여 키운 회사는 시스템반도체 회사인 동부하이텍이다. 1997년 이래 2조원 이상의 큰 투자를 했지만 이 회사 역시 적자 행진을 계속했다. 차입금은 한때 2조4000억원까지 불어났다. 공교롭게도 그가 ‘산업보국’의 신념 아래 전자ㆍ철강 등 제조부문 계열사에 투자한 막대한 재원이 동부그룹을 흔드는 유동성 위기의 진원지가 됐다. 애착을 갖고 키워온 반도체와 제철사업을 둘 다 잃을 상황에 처한 것. 동부하이텍은 매각 절차를 진행 중이며, 제철사업은 경영권을 상실했다.

동부특수강은 지난 10월 24일 매각 본입찰 결과 현대제철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현대제철의 인수 희망 가격은 시장 예상가(2500억원)보다 높은 3000억원 내외로 알려졌다. 내년 초 대금납부가 완료되면 동부제철 유동성 개선에 기여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동부그룹의 모태인 동부건설 처리도 재계의 관심거리. 김 회장은 자력으로 정상화하겠다는 의지지만 금융권에서는 다소 회의적이다. 워크아웃 혹은 법정관리가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까지 나오는 상황. 

 
자력 정상화 의지 불태우지만…

합금철ㆍ선재업체인 동부메탈과 동부발전당진도 원매자를 찾고 있다. 1969년 고려대 경제학과 학생이던 25세의 김 회장이 자본금 2500만원을 들여 창업한 동부건설(옛 미륭건설) 경영권도 장담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그는 1970년대 초반 20대 후반의 나이로 중동건설 신화의 주역 중 한 사람이 됐다. 당시 미륭건설을 통해 큰돈을 번 다음 그룹 축성에 나서 재계 10위권까지 올랐다. 사람의 운運은 물론 사업운도 부침이 있게 마련이다. 70대에 이른 관록의 그가 지금의 난국을 극복하고 동부그룹의 명성을 다시 찾아낼지 주목된다. 
김은경 더스쿠프 객원기자 kekis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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