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

▲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은 새누리당의 개정안을 지지하지만 절차에는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사진=뉴시스]
“내가 냈던 공무원연금법 개정안보다 훨씬 강력하고 급진적인 안이다.” 종합편성채널 JTBC에 출현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졸속’이라는 일부 진보진영의 평가와는 조금 다른 뉘앙스의 발언이었다. 그러자 거의 모든 매체가 “유시민 전 장관, 새누리당 개정안 적극 지지”라며 이 발언을 인용보도했다. 사실일까. 유 전 장관과 좀 더 얘기를 나눠 봤다.

✚ 방송을 보니 ‘지지’ 또는 ‘찬성’이란 단어는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새누리당의 개정안을 지지하는가.
“기본 방향에서, 큰 틀에선 지지한다. 공무원연금 개혁안은 그렇게 갈 수밖에 없다고 본다.”

✚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평가한다면.
“급진적인 안이다. 현직 공무원뿐만 아니라 기존 수급자의 연금도 줄이는 걸로 돼 있어서다. 2007년 국민연금처럼 공무원연금을 개혁했다면 기존 수급권자의 권리는 인정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을지 모른다.”

✚ 새누리당의 개정안이 효과가 있을 것을 기대하는가.
“재정적 부담을 줄이는 데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새누리당의 개혁안보다 더 강력한 것은 나오기 어려울 정도다.”

✚ 새누리당의 개정안에서 더 손볼 수 있는 부분은 없나.
“하위직 공무원이 손해를 좀 많이 보는 것 같다. 고위직 공무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게 깎이지만 하위직은 기본급도 낮으니까 문제가 되는 거다. 때문에 공무원연금의 형평성을 따져서 입법 과정에서는 논의해봐야 한다.”

✚ 유 전 장관의 말을 들으면 공무원노조가 크게 반발할 것 같다.
“큰 틀에서 볼 때 재정안정화로 가는 게 맞고, 그렇게 가야 한다. 물론 국민 여론이 공무원노조측 주장을 지지하든 그렇지 않든 공무원이 헌법상 기본권을 유보당하는 것, 급여체계가 민간기업과 달라 손해를 보는 것 등은 주장할 수 있다. 정부가 IMF 외환위기 이후 공무원연금 적립금을 다른 곳에 썼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그런 요구는 공무원연금 개혁과는 별개다. 차후 법개정 등을 통해 수용할 것은 그렇게 해주는 게 옳다.”

 
✚ 정부가 너무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는 주장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공감한다. 정부가 크게 잘못하고 있는 거다. 정부가 개정안을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이해당사자는 물론 전문가와 학계, 시민단체 등의 얘기를 수렴할 필요가 있다. 개정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하기 전에는 입법예고 절차를 거치면서 공식적인 의견수렴 절차를 또 밟아야 한다. 이런 절차가 전혀 없다는 건 심각한 문제다. 이제 남은 절차는 국회에서 진행하는 공청회와 토론회뿐이다. 정기국회는 두달밖에 남지 않았고, 예산안 심의와 세월호 관련법 처리 등 산적한 문제가 한두 개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나서 연말까지 끝내라고 하는 건 국회를 민의수렴기관이 아닌 일종의 거수기로 보는 거다. 굉장히 권위주의적이고 비민주적인 처사다. 어디 이번뿐인가. 모든 정책을 수립할 때 다 그렇게 하고 있지 않나.”

의견 수렴 없으면 민주주의 아니야

✚그럼에도 공무원을 바라보는 여론이 좋지 않은 듯하다.
“각종 수치를 들이대면서 반감을 부추기는 식으로 여론을 몰고 있지 않나. 그런 면에서 정부 여당은 할 말이 없다고 본다.”

✚ ‘제 밥그릇 지키기’라는 지적도 있지 않은가.
“법개정 이후 공직을 선택한 공무원은 공무원연금 개정 사실을 알고도 들어온 거니까 문제가 없다. 다만 기존 공무원은 옛 공무원연금법이 공무원 지원의 환경 내지는 조건이었다. 그러니 공무원연금을 개혁할 땐 이해당사자인 기존 공무원의 양해를 구하는 건 당연한 이치다. 정부의 방침이고, 옳은 거니까 무조건 따라오라고 할 문제가 아니다는 거다. 기본적으로는 공무원들에게 미안하다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 정부가 공무원연금 개혁을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공무원연금 개혁은 속도전으로 밀고 나가겠다는 게 정부의 구상이다. 그러니 협의체 만드는 걸 좋아할 리 없다.”

유 전 장관은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 측의 주장을 대체로 공감했다. 다른 게 있다면 공적연금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공적연금을 탄탄히 해야 한다’는 게 전공노의 주장이라면 유 전 장관은 재정안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공노 측은 “유 전 장관이 신자유주의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 주장했지만 끝까지 들어보면 실상은 조금 다르다.

✚ 공무원연금의 개혁 방향이 재정안정화에 맞춰져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고 있다. 
“공적연금을 바라보는 국민의 의식구조를 보면, 정치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많지 않다. 하나는 공적연금의 낮은 보험료와 낮은 지급률, 플러스알파로 사적연금이 붙는 패키지다. 또 하나는 공적연금의 높은 보험료와 높은 지급률, 그리고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사적연금 패키지다. 국민은 어떤 이유에서든 전자를 선택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공적연금의 개혁방안이 재정건전화에 맞춰져야 하는 이유다.”

✚ 국민의 여론에 맞춰 개혁방향을 설정해야 한다는 얘기인가.
“2006년도에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나올 당시 애초 정부안은 보험료를 15.9%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50%로 내리는 거였다. 그런데 결국 국회에서는 9%로 올리고 40%까지 소득대체율을 낮추는 안으로 통과됐다. 보험료는 당장 내는 거고, 연금은 나중에 받는 거니까 국민이 싫어한 결과였다. 여론도 그랬다.”

▲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은 “참여정부 시절 국민연금 개혁은 국민의 선택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사진=뉴시스]
✚ 국민의 선택이니 어쩔 수 없다는 건가.
“그렇다. 그게 국민 선택이다. 미국을 예로 들어 보자. 건강보험을 확대 적용하기로 한 오바마케어는 우리 건강보험보다 못한 C급이다. 그런 의료보험을 하는데도 국민의 반대가 어마어마하게 거셌다. 미국 국민의 의식구조와 여론이 그 방향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정책도 거기에 맞춰 갈 수밖에 없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공적연금이 수익률도 훨씬 높고, 정부가 운영하니까 안정성도 있다. 안정적인 노후보장을 위해서는 당연히 공적연금을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부가 그런 역할을 잘 못했기 때문에 국민들은 불신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니까 그냥 가는 거다.” 

제도 좋아도 국민이 싫으면 그만

유 전 장관이 재정건전성에 초점을 맞춘 새누리당의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을 찬성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전공노가 아무리 공적연금 운운해봐야 국민들이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거다. 당연히 국민들도 세금이 들어가는 걸 좋아할 리 없다.

✚ 국민 의식이 바뀔 가능성은 있다고 보는가.
“경험밖에 없다.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의 수혜자는 이미 많다. 그들은 이 제도가 좋다는 걸 잘 안다. 반면 국민연금은 20년간 불입한 수급자가 2008년도에 처음 나왔다. 수급자도 적다. 아직까지 혜택을 보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나머지 국민은 돈을 내기만 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보험료를 더 많이 내는 게 좋다’며 정책을 밀어달라고 하면 통하겠는가. 그래서 공무원노조 측이 공적연금을 함께 논의하자고 해도 안 되는 거다. 국민을 설득하지 못하는 걸 들고 와서 논의하자는 건 공무원연금을 개혁하지 말자는 것과 다름없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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