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이순신공세가 ㊳

당포에 머물던 순신은 제군들을 쉬게 했다. 황혼이 지날 무렵, 근처 산에서 벌목하는 도끼소리가 들려왔다. 순신은 곧 제장들에게 영令을 내려 장병겸(긴 자루가 달린 낫)을 사용해 배 아래쪽을 치라고 하였다. 그랬더니 배 밑에서 사람의 머리, 허리, 팔, 다리가 끊어져 수없이 나왔다.

 
당포해전으로 10만 수군을 지휘하던 총사령관이 전사했다. 이 소식을 들은 가등청정과 소서행장 등 일본 제장은 모두 놀라고 분하고 두려웠다. 대륙경영에 좌절한 풍신수길도 크게 낙담 상심했다. 이때 조선 수군은 일본 함대의 층루선을 수색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소비포권관 이영남이 조선 여자 2명을 발견하고, 칼을 들어 치려 하자 그 여자는 이렇게 말하면서 싹싹 빌었다. “장군님, 살려줍시오. 소인네는 조선 사람이오.” 이영남은 그 여자들을 사로잡아 순신의 기함으로 데려와 바쳤다. 싸움이 끝난 뒤 석양볕이 서산에 걸린 때였다.

순신은 이영남이 포로로 잡아온 여인네를 심문하였다. 여자 하나의 이름은 나이가 어리고 얼굴이 미색인 억대億代였다. 다른 하나는 울산에 사는 하녀였는데, 이름은 모리毛里요 거제현 사람이었다. 억대가 말했다. “소인은 김씨가의 사비로 상전과 함께 피난하여 가다가 적군에게 사로잡혀 몸을 허락하였소. 적장의 성명이 무엇인지 몰라도 키가 훌쩍 크고 기력이 장사이며 얼굴이 잘났는데 나이는 30살가량 돼보였소. 낮이 되면 배 층루에 올라가 누런 비단 전포에 금관을 썼소. 그러면 모든 배에 있는 장수가 와서 꿇어앉아 장령을 듣고 혹시나 영을 어기는 자가 있으면 용서없이 목을 베어 죽입디다. 밤이 되면 소인의 방에 들어와 잠을 잤소. 소인은 일본말을 한 마디도 못 알아들었소.” 억대는 층루선 장수의 말을 이어갔다. “오늘 접전할 때 그 층루선에 조선 화살과 철환이 비 오듯 떨어지더니 적장 가슴에 꽂혔소. 그 적장은 ‘악’ 하는 소리를 치고 떨어졌소.”

▲ 순신의 거북선은 대포와 화전을 쏘면서 맹공을 펼쳤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억대의 말처럼 조선의 탄환과 화살에 맞아 쓰러진 적군의 시체는 해안과 바다에 널려 서로 이어졌다. 살아남은 적군은 그것을 돌아볼 새 없이 육지로 뛰어내려 도망하였다. 적선을 수색해 전리품을 몰수한 뒤 적선을 거의 불사르고 군사를 상륙시켜 뭍으로 달아난 적군을 추격 소탕하려 할 때였다. 탐보선이 보고하되 적의 대선 20여척이 당포를 향하여 온다고 하였다. 순신은 제장을 불러 분부했다.

“우리 군사가 사천 곤양에 이어 당포에서도 승전해 예기가 충천하나 피곤하지 않을 수 없소. 이런 상황에서 적의 새 부대와 야전夜戰을 하기 곤란하니 싸우지 아니하고 적을 물리치는 계책을 써야 하오. 가장 좋은 방법은 당포 내에 있는 적선을 끌어내 포구 밖에 세우고 불을 놓는 것이오. 그러면 새로 오는 적의 함대가 기운이 빠져 감히 싸우지 못하고 도피할 것이오”.

싸우지 않고 적을 물리치다

순신은 말을 이었다. “당포는 너무 협착하여 싸우기에 불편할 뿐만 아니라 산 위에 도망가 숨은 적병이 많소. 바다에 새로 오는 적선과 접전하면 저들이 수륙할 가능성이 있으니. 우리는 큰 바다로 나가서 좋은 진지를 잡아 싸울 준비를 해야 하오.” 명령을 들은 조선 제장들은 적의 층루선 2척과 대선 몇척을 포구로 끌어내어 불을 놓았다. 화광이 하늘을 찔러 황혼이 되려 하던 강산을 밝게 물들였다.

순신은 함대를 몰고 오비도(경남 통영시 산양읍 풍화리豊和里에 딸린 섬), 월명도(오비도에 딸린 작은 무인도) 앞바다로 나섰다. 5리가량 되는 곳에 과연 적의 함대 50~60척이 떼를 지어 장사진 형상으로 오고 있었다. 그러던 적 함대는 당포 포구 밖에 층루선 2척과 대선 몇 척이 불타는 모양을 봤다. 다른 편에선 조선 병선이 예기충천한 형세를 보이고 있었다. 그러자 일본 적선은 방향을 돌려 개도(경남 통영시 산양읍의 섬 추도) 쪽으로 달아났다. 제장들은 기운이 나서 따라가 부수기를 원했지만 순신이 말렸다. 날이 이미 저문 것이 이유였다.

이날 저녁 순신은 뱃머리를 돌려 당포 내항의 파도가 잔잔한 곳에 들어와 밤을 지내기로 하였다. 황혼이 지날 무렵, 근처 산에서 벌목하는 도끼소리가 들려왔다. 순신은 곧 제장들에게 영令을 내려 장병겸(긴 자루가 달린 낫)을 사용해 배 아래쪽을 치라고 하였다. 그랬더니 배 밑에서 사람의 머리, 허리, 팔, 다리가 끊어져 수없이 나왔다. 물빛은 벌겋게 붉어져 적군의 죽음을 알렸다. 

순신의 탄 배에 모인 제장들은 배 밑에 적군이 숨어 있었던 걸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다. 순신은 술과 음식을 나누어 주며 당포 승전의 공로를 축하하며 말을 이어갔다. “시경에 이르되 ‘벌목정정伐木丁丁이어늘 조명앵앵鳥鳴嚶嚶이로다… 앵기명의嚶其鳴矣라 유구우성猶求友聲이로다’ 하였소(나무 찍는 소리 쩡쩡, 새 울음소리 짹짹… 짹짹대는 그 울음소리여, 짝이 될 소리를 구함이로다.)

당나라 두보杜甫의 시는 ‘벌목정정산갱유伐木丁丁山更幽’라고 하였소(봄 산에 짝이 없어 홀로 그를 찾노라니, 나무 찍는 소리 쩡쩡 산은 더욱 깊구나.) 오늘 패전한 적군이 배를 버리고 산에 모여 궁여지책으로 잠수부를 뽑아 끌과 짝귀로 우리의 배 밑을 뚫어 바다에 침몰시킬 계획을 짰던 거요. 이런 난시에 누가 있어 날이 저물도록 벌목을 하겠소. 이는 정녕코 ‘짝이 되는 소리’를 구함이니 쉽게 말하면 벌목하는 소리를 응하여 선상에 있는 사람이 모르게 배 밑을 뚫자는 것이었소.” 제장들은 그제야 깨닫고 감복했다. 후인이 시를 지어 찬하였다.

忽憶潛龍句 難忘伐木詩
肩負三千里 胸藏百萬師

홀연히 떠오른 잠룡의 글
잊기가 어려운 벌목의 시
어깨에는 3000리 강토를 메고
가슴에는 100만의 군사를 담았네

春山無伴獨相求오
伐木丁丁山更幽라

봄 산에 짝이 없어 홀로 그를 찾노라니
나무 찍는 소리 쩡쩡 산은 더욱 깊구나

勝算은 可運於掌上이오
窮寇는 已在於目中이라

이길 계책을 능히 손바닥 위에서 다루고
궁한 적들을 이미 눈으로 꿰뚫고 있도다

황혼이 지난 뒤 순신은 당포는 안심할 수 없는 지역이라 생각했다. 곧바로 행선을 재촉해 진주 지방인 창선도 앞바다에 왔다. 그런데 이곳 역시 군중이 크게 요란했다. <다음호에 계속>
정리 | 이남석 대표 cvo@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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