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가 만난 프랜차이즈 CEO | 최광호 꾸꾸루꾸 대표

▲ 최광호 대표는 "2015년 미국 댈러스를 비롯 아시아 등지에 진출할 예정"이라고 포부를 밝혔다.[사진=지정훈 기자]
치킨전문점은 특별할 게 없다는 생각이 많다. 그래서 아무나 할 수 있는 창업 아이템 1순위로 거론되기도 한다. 하지만, 기술력이 있어야 맛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이가 있다. 35년 동안 치킨전문점의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는 꾸꾸루꾸 최광호 대표다. 그의 치킨 사랑가歌를 들었다.

치킨은 대중적인 먹거리다. 그만큼 창업시장에서도 경쟁이 치열하다. 국내 치킨 프랜차이즈만도 수백여개에 이른다. 문제는 기술력이다. 브랜드마다 독특한 요리법과 맛을 강조하지만, 차별화된 기술력을 보유한 브랜드는 손에 꼽을 정도다. 치킨 프랜차이즈 본사가 육가공과 기계공장을 모두 가지고 있지 못하는 이유다. 이런 의미에서 꾸꾸루꾸 치킨 브랜드의 경쟁력은 눈에 띈다.

꾸꾸루꾸는 1997년 한국에너지기술연구소-한국원자력연구원과 바비큐 로스터 공동개발에 들어갔다. 꾸준한 연구개발을 통해 2008년 연기 없는 700도 원적외선 바비큐 로스터 개발에 성공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ㆍ일본ㆍ중국에서도 특허를 인정받았다. 최근에는 이런 기술력으로 치킨 창업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오고 있다. 꾸꾸루꾸가 이렇게 기술에 매달린 이유는 최광호 대표의 열정에 있다. 20대 일본에서 잠시 생활했던 최 대표는 1979년 서울 독산동 동아출판사 앞에 43㎡(약 13평) 크기의 매장을 오픈하게 된다.

당시 유행했던 OB비어 가맹점을 하려는 이유였다.  하지만 인근에 OB비어 매장이 있다는 이유로 가맹점 신청은 거절된다. 결국 안주에 대한 경쟁력을 찾기 위해 아이템 고심에 들어갔다. 치킨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미군 부대서 바비큐를 먹던 기억이 났어요. 짠 맛이 강했던 미국식 바비큐를 한국식으로 바꾸면 되겠다고 생각했죠.” 아내와 함께 개발에 들어갔다. 버린 닭만 수십 트럭이 됐다. 전국의 유명한 치킨 맛집도 찾아다녔다. 그러다 눈에 띈 게 숯불이었다. 닭을 양념에 재워서 숙성시킨 후 숯불에 구위 제공하기 시작했다. 1979년 말 닭을 숯불에 굽는다는 것에 놀란 고객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입소문이 나면서 전국에서 매장을 내 달라는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당시 그의 브랜드명은 유진바비큐였다. 전수창업으로 매장을 하나하나 내주면서 그는 바비큐 기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1988년 숯불을 이용한 자동회전식 바비큐 기기다. 국내와 세계 모두에서 발명 특허를 획득했다. 1990년 유진물산 회사를 설립하고 김포에 물류공장을 만들면서 본격적인 가맹사업에 들어갔다.

17개 고속도로 휴게소 매장 오픈, 롯데ㆍ뉴코아 등 7개 백화점 입점, 가맹점 230개 오픈 등의 성과를 이끌어냈다. 그 와중에도 최 대표는 바비큐 기기에 대한 아쉬움을 접을 수가 없었다. 숯불을 이용하기 때문에 연기가 발생했던 것. 점포 앞에 후드닥트를 설치할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연기로 인한 민원이 종종 발생하기도 했다. 다시 기술개발에 들어갔다. 2004년 원적외선 바비큐 기기가 나왔다.

“문제는 맛과 시간 단축이었죠. 매장에서의 요구는 빠른 조리 시간과 육즙이 살아있는 맛이죠. 다시 매달렸죠.” 2008년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700도 원적외선 바비큐 기기 개발에 성공했다. 최광호 대표는 “치킨업계는 기술은 없고, 광고에만 의존한다”고 일침을 가한다. 기술개발로 경쟁력을 갖춰야만 오래동안 사랑받고 생존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1999년부터 벤처기업 인증을 받고 아직도 기술개발에 매달리는 이유다. 치킨 프랜차이즈 업계에도 특허 기술력 시대가 오고 있다.
이호 더스쿠프 기자 rombo7@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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