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시장의 판도 변화

▲ 대체에너지원의 등장으로 OPEC의 입김이 약해지고 있다.[사진=뉴시스]
에너지 가격이 빠르게 하향 안정화하고 있다. 세계 경기 회복세가 더뎌 수요가 줄고, 대체에너지원 생산이 늘어서다. 정유업계는 정제마진 하락으로 수익성이 떨어질 것으로 보이고, 화학업계는 기로에 서 있다. 태양광이나 풍력 등 대체에너지 분야만 확실한 빛을 볼 것으로 보인다.

2000년 들어 중국을 중심으로 세계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석유ㆍ석탄ㆍ천연가스 등 에너지원 가격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를 제외하면 강세 일변도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국제유가 등 에너지원 가격은 약세로 반전했다. 국제유가는 두바이유의 경우, 배럴당 109달러였던 2012년을 정점으로 2013년엔 배럴당 105달러, 올해 10월말 기준으로는 83달러까지 떨어졌다. 문제는 이런 저유가 기조가 당분간 이어질 거라는 점이다. 근거로는 먼저 세계 경기의 더딘 회복을 들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세계 경제성장률은 2013년 3.2%, 올해 3.3%, 2015년 3.8%로 회복세가 더디다. 2000~2008년 세계 석유 소비는 BRICs 등 개도국의 높은 경제성장에 힘입어 연평균 1.6%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2010년엔 글로벌 유동성 위기에서 벗어나면서 한때 3.3%의 수요 성장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부터 세계 석유 수요는 1.0% 초반의 저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 세계 석유 소비 증가량은 0.8% 성장세가 예상되고 있다.

전통 에너지 시장, 꾸준한 악재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제외한 국가들을 중심으로 셰일가스 등 비전통 석유 생산량을 늘리고 있다는 점도 에너지 가격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 OPEC 내에서도 리비아나 이라크 등 공급 차질을 빚던 국가들의 석유 생산설비가 정상화되면서 OPEC의 석유 잉여생산능력도 늘어날 전망이다. 화석연료 보조금의 폐지ㆍ감축 논의도 석유 수요를 줄일 것으로 보인다. 2009년 G20 회원국들은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화석연료 보조금’을 2020년까지 합리화 혹은 폐지하기로 했다. 매년 한국을 포함한 11개 국가는 비효율적 화석연료 보조금 단계적 폐지를 위한 전략과 이행 계획을 보고하고 있다.

 
화석연료 보조금은 소비자 보조금(요금할인ㆍ연료비 보조금)과 생산자 보조금(세금감면ㆍ세액공제)으로 나뉜다. 소비자 보조금은 빈곤층의 에너지 접근성 강화, 인플레이션 억제 등과 같은 순기능이 있다. 하지만 국제 에너지 시장 가격 변화에 국내 수요ㆍ공급이 빠르게 반응하지 못하고, 연료 소비 증가로 인한 무역수지 악화, 친환경 에너지에 대한 투자 부진, 정부 재정악화 등 부정적 영향도 적지 않다. 특히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12년 기준, 세계는 석유ㆍ석탄ㆍ천연가스 등 화석 연료 보조금으로 약 5440억달러를 지출한 것으로 보고했다. 같은 기간 신재생에너지 정부 지원이 약 1010억 달러에 불과하다는 걸 감안하면 화석연료 보조금이 5배나 많다. 각국이 화석연료 보조금을 줄이자고 하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친환경에너지 비중 확대로 인해 석유 자원 의존도도 낮아질 전망이다. 실제로 세계 경제성장률 대비 석유 소비증가율인 탄성치는 1980년대 0.54포인트, 1990년대 0.51포인트로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하지만 2000년 들어 0.43포인트, 2011년 이후 0.33포인트로 낮아졌다. 게다가 1997년 교토의정서 체결 이후 신재생에너지는 발전차액보조금 등 정부보조금 정책을 강화한 유럽을 중심으로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2008년 유럽 재정위기 이후 친환경에너지 시장은 정체 혹은 축소되기도 했지만, 아시아와 북미지역의 설치량이 확대되면서 세계 친환경에너지 생산 비중은 오히려 확대됐다.

그뿐만 아니라 친환경 에너지는 제품가격 하락으로 태양광이나 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 설치 단가도 낮아졌다. 때문에 EU를 포함한 미국, 중국, 일본, 호주 등이 신재생에너지의 전력 생산 비중 목표를 정책적으로 상향하고 있다. 태양광ㆍ풍력 등 재생에너지의 전력 생산 단가도 꾸준히 낮아지고 있다. 경기 불황으로 재정 상황이 나빠진 EU 등 주요 국가들의 보조금 삭감, 재생에너지 과잉설비에 따른 가격 하락 등이 주요 원인이다. 재생에너지 기술 발전, 생산 효율 개선도 한몫했다.

에너지 효율 개선도 강화되고 있다. IEA에 따르면 세계는 2035년까지 에너지부문에 총 48조 달러의 투자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중 40조 달러는 에너지 공급, 나머지 8조 달러가 에너지효율에 대한 투자로 예상된다. 또 2015년 이후 강화될 환경 규제로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도 더 높아질 전망이다. 이런 상황은 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일단 타격을 받는 산업은 정유업계다. 정제마진은 약세를 벗어나기 쉽지 않다. 최근 10년간 복합정제 마진은 배럴당 평균 7달러를 기록했다.

하지만 2014년 하반기 들어 배럴당 5달러 이하로 급락했다. 석유 수요 부진과 함께 중국을 중심으로 한 역내 정유 생산능력 확대, 미국 셰일가스 생산 증가로 인한 석유제품의 순수입량 감소 등에 따른 것이다. 향후 원유판매가격 인하, 정유사의 석유정제시설(CDU) 가동률 조정 등을 통해 반등 가능성이 있지만, 중국ㆍ중동의 정유 설비 증설, 미국의 석유제품 수출 증가 등으로 인해 정제마진은 여전히 약세가 예상된다. 더구나 최근 3년간 정유업체의 화학제품 중 자금줄 역할을 해온 파라자일렌(PX)까지 공급과잉으로 돌아서면서 화학부문 수익성 하락까지 예상되고 있다. 반면 대체에너지 분야는 살아날 가능성이 크다. 친환경에너지의 세계 전력 생산 비중은 약 10%로 이미 전력 생산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 정유업계는 화석연료 에너지 가격 하락으로 수익성 하락이 예상된다.[사진=뉴시스]
향후에도 각국 정부와 지역의 보급 확대 정책 등으로 성장이 예상된다. 화학업종은 다운사이클이 3년째 이어지고 있지만 쉽사리 변화를 예고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세계 경기의 더딘 회복으로 화학제품 수요 부진이 계속되고 있고, 중국의 공격적인 설비 증설 등으로 다운사이클을 벗어나기도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국제유가 약세 등 저렴해진 원재료 가격도 제품 가격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살펴볼 점은 있다. 첫째, CTO (석탄에서 올레핀 추출)와 MTO(메탄올에서 올레핀 추출) 프로젝트와 같은 중국의 석탄화학, 북미 셰일가스를 활용한 에탄-에틸렌 프로젝트 등 탈脫 나프타(원재료) 설비들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화학, 다운사이클 속 기회

둘째, 중국 내 자급률을 높이기 위한 다운스트림(광물자원을 이용한 2차 산업) 증설 등으로 인해 범용 제품 확대는 약세를 보일 전망이다. 단시일 내 회복할 가능성도 높지 않다. 이는 국내 화학기업에 위기다. 하지만 동시에 기회이기도 하다.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기 위해선 화학제품 품질 개선으로 고기능성 제품 판매 비중을 확대하고, 제품 포트폴리오 다양화를 통한 이익의 안정성을 높여야 한다. 또 화학외 부문 역량 강화를 통한 성장동력 확보가 관건이다. 이를 위해 신수종사업 발굴과 인수합병(M&A) 활용 등 적극적인 전략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최지환 NH농협증권 연구원 jihwan21@nhi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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