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의 거꾸로 보는 오페라 | 초인종

▲ 처음 이탈리아에서 공연된 오페라 초인종은 세계 각국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사진=뉴시스]
늙고 부유한 약초상인(오늘날 약사) 안니발레(Annibale)는 아름다운 세라피나와 결혼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둘의 결혼은 정략적인 것이다. 세라피나에게는 사랑하는 애인 엔리코(Enrico)가 있다. 결혼을 원하지 않는 두 사람의 노력에도 결혼식 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공교롭게도 결혼식은 안니발레가 로마로 떠나기 전날이다. 그는 결혼식 다음날 아침 일찍 5시 로마로 떠나기로 돼 있다. 늙은 숙모로부터 상속을 받게 됐다는 소식을 전해준 공증인과의 약속 때문이다. 약속한 날 나타나지 않으면 상속을 받을 수 없다. 안니발레가 로마로 떠나기 전 서둘러 결혼식을 치르는 이유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엔리코와 세라피나는 안니발레가 떠나기 전날 밤 결혼식이 거행되는 것을 막을 작정이다. 그 후 정략결혼을 무효화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약초상인인 안니발레는 법적으로 자신을 찾아오는 손님에게 무조건 약을 지어줘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초인종 소리를 무시할 수 없다. 시종 스피리도네(Spiridone)가 손님을 대신 맞이할 수도 없다. 이를 알고 있는 엔리코는 수를 쓴다. 약을 지으러 오는 손님으로 위장한다. 이 장면에서 엔리코는 가수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여러 역할을 소화해낸다. 프랑스인 기사로 변장한 엔리코는 과식 후유증을 핑계로 안니발레에게 소화제를 부탁한다. 잠시 후 초인종이 울린다. 이번에는 엔리코가 가수로 변장하고 나타나 목소리를 되찾을 수 있는 약을 지어 달라며 호소한다.

그리고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며 간청한다. 또 다른 환자가 그를 찾아와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처방전을 내보인다. 안니발레는 처방전을 처리하느라 많은 시간을 써버린다. 밤새껏 초인종 때문에 시달린 안니발레는 새벽 5시에 예정된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고 로마로 향한다. 두 연인의 시간끌기 전략이 먹혀든 거다. 초인종(Il Campanello)이란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이 작품은 일주일이란 짧은 시간에 작곡됐다. 작곡가가 직접 대본을 쓴 이 작품은 프랑스에서는 「라 소넷 드 누이(La Sonette de nuit)」라는 책으로 출판되기도 했다.

책으로도 출판 된 원작의 ‘힘’

라 소넷 드 누이는 새벽의 초인종이라는 뜻으로 오페라 주제를 잘 살리고 있다. 작곡가 도니제티(Donizetti)는 이 작품을 작곡할 당시 부모와 부인, 그리고 딸까지 잃어버리며 일생에서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파산을 앞둔 오페라 제작자 임 프레사리오(impre sario)를 돕기 위해 오페라를 작곡했다. 이 작품은 1836년 이탈리아 나폴리 누오보 조반니(Teatro Nuovo) 극장에서 초연 이후 세계 각국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지금도 전 세계에서 공연이 이뤄지고 있고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국내에서는 공연된 적이 거의 없지만 적극 추천할 만하다.
김현정 체칠리아 sny4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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