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점 흑역사

▲ 면세점 사업은 애초부터 대기업을 위한 특혜 사업이었다.[사진=뉴시스]
지난해부터 면세점 사업(시내면세점)에 중소ㆍ중견기업들이 뛰어들었다. 하지만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갖가지 이유가 쏟아졌지만 대부분 ‘능력부족’에 초점이 맞춰졌다. 과연 그럴까.

2007년 4월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신규 공항면세점 사업자를 모집하기 위해 입찰공고를 냈다. 당시 한 중견기업이 입찰에 참여하려 했다. 요우커遊客(중국인 관광객)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해서였다. 자금은 넉넉했다. 유통을 잘 알고 있던 터라 자신감도 있었다. 하지만 이 기업은 입찰에 참가해 보지도 못하고 꿈을 접었다. 인천국제공항공사가 내건 한가지 조건을 도저히 충족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조건이었다. ‘면세점 운영 경험이 있을 것.’ 결국 당시 면세점 운영권은 호텔신라와 호텔롯데 등 기존 면세사업을 해오던 대기업에 돌아갔다. 자력으로는 충족할 수 없는 ‘경험’이라는 진입장벽으로 신규 사업자의 출현을 막은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중소ㆍ중견기업들은 이런 경험을 쌓는 게 애초부터 어려웠다는 점이다.

면세점 사업은 무한경쟁이 펼쳐지는 다른 시장과 다르다. 면세점 사업을 하려면 정부로부터 ‘특허’를 받아야 한다. 세금이 붙지 않는 물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것이니 당연하다. 정부로선 세금을 걷지 못해 손해지만 기업은 이 사업으로 돈을 번다. 면세점 사업은 정부가 기업에 내주는 일종의 혜택인 셈이다. 이에 따라 다양한 기업이 그 과실을 누려야 했다. 하지만 그 혜택은 일부 대기업만 누려왔다. 지난해 기준으로 6조8326억원의 매출을 올린 국내 면세점 사업에서 호텔롯데와 호텔신라가 총 매출의 70% 이상을 차지한 게 단순히 그들의 능력 때문만은 아니란 얘기다.

국내 면세점의 역사부터 보자. 국내 면세점 사업은 1962년(김포공항 출국장 면세점)부터 시작됐다. 그러다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정부가 외국인 관광객을 겨냥해 면세점영업 자유화 방침을 내놓으면서 면세점 산업에 불이 붙었다. 1985년 11개(시내면세점 6곳)에 불과했던 면세점은 1989년 34개(시내면세점 29곳)까지 늘었다. 파고다쇼핑ㆍ코리아다이아몬드ㆍ풍전 등 중견기업들도 있었다.

하지만 행사를 겨냥한 탓에 거품이 많았다. 올림픽이 끝나자 거품은 빠졌고, 업계는 구조조정됐다. 눈여겨볼 점은 당시 면세점 사업의 점유율이다. 1990년을 기준으로 총 면세점 매출의 51.5%를 호텔롯데가 차지했다. 삼성 계열의 호텔신라는 18.2 %, 동화(롯데 일가)는 17.2%를 차지했다. 나머지 13.1%를 파고다와 인터컨티넨탈(옛 LG), 한진(한진), 파라다이스, 코리아다이아몬드, 풍전 등이 나눠 가졌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롯데를 비롯한 일부 대기업이 면세점 시장을 장악한 거다.

 
이후 내국인의 해외여행 자율화가 이뤄진 2000년부터 면세점 사업이 다시 본격화됐다. 하지만 이전과 양상이 달랐다. 이때부터 신규 특허가 거의 없었다. 면세점 전체 매출의 60%가량을 차지하는 시내면세점의 경우는 신규 특허가 단 한건도 없었다. 2013년 관세청이 서울ㆍ부산ㆍ제주를 제외한 지방도시에 중소ㆍ중견기업들을 위한 시내면세점 특허를 내주기 전까지는 말이다.

중소ㆍ중견기업들은 원천 배제됐다. AK리테일(당시 애경그룹 계열)과 파라다이스를 제외하면 롯데, 삼성, 한진, SK가 전부였다. 더구나 파라다이스는 2003년에 사업을 접었고, AK리테일은 2010년 롯데에 인수됐다. 롯데와 신라는 면세점 특허를 받은 이후 단 한번도 연장심사에서 탈락했던 적도 없었다. 그 사이 중소ㆍ중견기업은 제대로 된 ‘경험’의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재벌에서 시작해 재벌에서 끝났다.’ 면세점 흑역사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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