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형 SNS 앱 인기몰이

▲ 직장인들의 마음을 공유할 수 있는 폐쇄형 SNS가 인기를 끌고 있다.[사진=지정훈 기자]
수직적 소통문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야근에 지친 업계 종사자들끼리 맘놓고 수다를 떨 수도 있다. 마치 고해성사를 하듯 못할 얘기가 없다. 최근 폐쇄형 SNS 애플리케이션 ‘블라인드’가 인기다. 익명성 보장으로 ‘속 시원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다. 역설적이게도 개방형 SNS가 비밀스러워졌다.

# 게임개발 업체 엔씨소프트에 다니는 김씨는 ‘블라인드’라는 애플리케이션(앱)을 하루에도 몇번씩 열어본다. 어떤 글이 업로드될지 궁금해서다. 글도 자주 올리는 편이다. 오늘 먹은 음식의 레시피를 올리기도 하고, 좋아하는 연예인 얘기를 할 때도 있다. ‘구내식당의 메뉴를 개선해 달라’ ‘사무실 공기가 좋지 않다’는 내용의 불만사항도 업로드 대상이다. 그가 활용할 수 있는 게시판은 두개. 하나는 회사 사람들만 쓸 수 있는 게시판, 다른 하나는 IT 업계 종사자들이 이용하는 게시판이다.

업계 게시판은 모두의 라운지(라운지)라고 하는데 이곳에는 보다 다양한 글을 올라온다. 의견을 공유할 수도 있다. 이직을 원하는 회사에 대해 궁금한 점을 올리기도 한다. ‘투표’글을 만들어 올릴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연봉이 얼마인가요’라는 제목으로 글을 게시할 수 있다. ‘3500만원 미만, 3500만~4000만원’ ‘4000만~4500만’ 등 원하는 항목도 직접 만들어 올린다. 그러면 곧바로 실시간 댓글이 달린다. 26개 IT기업 종사자들이 모여 있는 공간이라 업계 동향을 살피기도 좋다.

가끔 IT기업이 몰려 있는 판교에서 ‘번개 모임’이 열리기도 한다. 김씨는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직장인 스트레스가 가중되고 있다. 일은 많은데, 소통할 공간이 없어서다. 불만이 있어도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다. 미운털이 박히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사내 인트라넷의 ‘익명게시판’이 잠잠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때문일까. 새로운 개념의 앱 ‘블라인드’가 뜨고 있다. 지난해 12월 론칭된 이 앱은 IT업계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최근엔 신세계ㆍ롯데쇼핑ㆍ홈플러스 같은 유통업체뿐만 아니라 아모레퍼시픽ㆍLG생활건강 등 화장품 업체도 블라인드 게시판을 사용한다. 블라인드엔 현재 총 58개 기업의 게시판(11월 14일 기준)이 있다.블라인드는 ‘폐쇄형 SNS’에 그룹 기능을 조합한 앱이다. 쉽게 말해 같은 회사 사람들끼리 사용할 수 있는 비밀 SNS다. 처음에는 NHN 1곳의 SNS(게시판)로 시작했다. 알음알음 소문이 퍼지자 넥슨ㆍ엔씨소프트ㆍSK커뮤니케이션즈 등 IT기업 26곳에 게시판이 개설됐다.
 
IT업계가 많은 판교에서 이 앱을 모르면 ‘간첩’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인기다.  무엇보다 NHN 직원 중 90% 이상 이 앱을 사용한다. 앱 론칭 초기부터 블라인드를 사용한 IT기업 8곳의 직원 80% 이상도 유저다. 전체 사용자 중 45%는 이 앱을 매일 사용한다. 정영준 팀블라인드 공동대표는 “이용자는 하루 평균 4번 방문해 27분 동안 블라인드를 쓴다”며 “이는 페이스북과 유사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동료들과 마음 터놓는 익명 SNS

이 앱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익명성’에 있다. 무엇보다 개인정보를 입력하지 않아도 회원가입이 가능하다. 자신이 다니는 회사 계정의 메일주소만 있으면 끝이다. 한 게임업체 개발자는 “카카오톡 등 대부분의 SNS는 개인정보를 입력해야 가입할 수 있다”며 “그래서 개인정보가 해킹될 가능성이 작지 않은데, 블라인드는 그럴 리스크가 없다”고 말했다.

개인정보가 없다 보니, 특정인이 어떤 글을 업로드했는지 알 수 없다. 앱을 만든 개발자조차 어떤 사람이 어떤 이메일 계정을 통해 글을 썼는지 확인불가다. 정영준 공동대표는 “제 아무리 좋은 엔지니어라도 뛰어난 해커의 공격은 막아내긴 어렵다”며 “블라인드는 원천적으로 누가 어떤 글을 썼는지 알 수 없는 구조로 서비스를 설계했다”고 말했다. 보안업체인 안랩이 사용할 만큼 보안 안정성을 인정받은 앱이다. 인기 요인은 또 있다.

직장인의 외로움을 달래주고 스트레스를 풀어줘서다. 블라인드에 올라오는 글의 주제는 그야말로 다양했다. 인사담당자에게 묻기 껄끄러운 월급인상 시기나 복리후생 질문부터 회사 광고모델 평가, 임직원 거취소문, 최근 회사이슈 등을 기록한 글도 많다. 주목할 점은 개인적인 글이 상당수를 차지한다는 거다. 사내 연애자의 고민, 직장상사의 폭언 등 각종 고민이 수두룩하다. 

반응이 좋자 이 앱을 만든 팀블라인드는 동종업계끼리 공동으로 쓰는 게시판 ‘라운지’를 별도로 개설했다. 라운지는 IT업계, 금융업계, 항공업계, 방송업계 4곳이 열렸다. 가령 KTㆍLG전자ㆍNHNㆍ카카오 등 26개 IT기업, 신한은행ㆍ기업은행을 비롯한 8개 은행, 대한항공ㆍ아시아나항공 2개 기업, 지상파 방송 3사ㆍCJ E&M가 라운지로 묶여 있다. 업계 라운지엔 다양한 주제의 글이 올라온다. 연봉과 인센티브ㆍ복지ㆍ조직개편 같은 주제부터 맛집 공유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간다. 이직 고민 상담도 많이 올라온다. 경쟁사 직장인 사이에선 열띤 토론이 벌어지기도 한다.

안랩도 보안 인정한 SNS

단점도 있다. 여러 기업의 사람들이 모이는 대화공간이다 보니 다른 회사를 비방하는 글이 올라올 때가 있다. 얼마 전엔 IT업계 라운지에선 다음카카오의 ‘사이버 검열’을 비판하는 글이 올라오면서 NHN과 다음카카오 직원이 격론을 벌이기도 했다. 이런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라운지에 게시글을 올리면 사용자 아이디 옆에 회사명이 붙는다. 익명성을 보장하기 위해 한달에 5번 아이디를 바꿀 수 있도록 했지만 일 횟수를 ‘한번’으로 제한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이디를 바꿔가며 여론몰이를 할 수 있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블라인드의 인기가 언제까지 계속될진 알 수 없다. 익명성을 보장하고 있다지만 회사는 언제나 ‘익명의 그림자 속 주인공’을 귀신처럼 찾아내기 때문이다. 대형 유통채널에 근무하는 한 직장인은 “블라인드의 익명성이 대단하다고는 하지만 그곳에 올라오는 글 하나하나를 인사담당자가 예의주시한다는 말이 많다”며 “그래서 속시원한 글을 올리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고 귀띔했다.

한 홍보 담당자는 “아무래도 폐쇄된 공간에서 회사 이슈가 종종 거론되다 보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며 “그럼에도 이 앱의 사용을 막을 수 없어 주시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유야 어찌 됐든 이 앱은 막을 수 없는 대세가 됐다. 동료끼리 업계 종사자끼리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라서다.
김미선 더스쿠프 기자 story@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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