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성 고려대 경영대 교수

▲ 장하성 교수는 “회사(삼성전자)가 망하게 생겼으면 회사를 살려야지 이건희 회장 가족이 경영권을 유지하는 게 중요한가”라고 지적했다.[사진=뉴시스]
ㅁ“국민소득 99.9%의 원천이 임금소득입니다. 그런데 임금으로 분배되는 부가가치의 비중이 지난 15년 간 지속적으로 줄어들었어요. 분배 구조뿐만 아니라 임금 구조도 왜곡돼 있어요. 단적으로 비정규직 포함해 삼성전자 직원의 평균임금이 약 1억800만원인데 이 회사에 납품하는 2ㆍ3차 하청기업 평균임금은 3000만~4000만원 수준입니다. 지금 한국사회는 세금 거둬서 하는 재분배가 아니라 원천적으로 왜곡돼 있는 분배가 문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재분배를 논하는 건 진보세력이 화두를 잘못 잡은 거예요.”

장하성(61) 고려대 경영대 교수는 “우리 사회가 극도로 나빠진 분배 문제를 다루지 않고 복지를 통한 재분배에 매달리는 건 진보 진영이 어젠다를 잘못 설정한 탓”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한국 자본주의-경제민주화를 넘어 정의로운 경제로」라는 책을 낸 장 교수와 만났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한국 경제를 둘러싼 제대로 된 논쟁이 시작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한국 자본주의는 대체 구미 선진국의 자본주의와 어떻게 다른가요?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은 비슷한 게 많습니다. 대표적인 게 불평등이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불평등이 가장 극심한 나라가 미국인데 우리나라가 미국과 거의 비슷한 정도로 불평등합니다. 그런데 불평등의 원인이 달라요. 자본주의 역사가 250년 된 구미 선진국은 그동안 자본 축적이 많이 이뤄져 자본과 노동의 대립관계로서의 불평등, 즉 자산(재산) 불평등이 핵심 이슈입니다. 반면 자본주의의 역사가 사실상 20년인 한국은 근로소득의 비중이 절대적입니다. 배당ㆍ이자 소득의 대부분이 상위 1%에 집중돼 있다고 해 논란이 됐지만 단적으로 그 규모가 임금소득의 2.8%에 불과합니다. 산업구조 면에서 구미 각국은 제조업 일자리가 줄고 저숙련ㆍ저임금 서비스업 일자리가 늘어나는 게 문제인데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제조업 비중은 두번째로 높고 서비스업 비중은 세번째로 낮습니다. 우리나라 저임금 구조가 산업구조 때문에 생긴 게 아니라는 거죠. 부자들의 출신 성분도 다릅니다. 포브스가 발표한 미국의 400대 부자를 보면 자수성가형 부자가 70%를 차지하는 반면 우리는 반대로 100대 부자의 74%가 상속 받은 부자예요. 미국은 여전히 계층 이동성이 높지만 한국은 개천에서 용 난 지 20년이 넘었습니다. 또 미국은 산업계 부자와 금융계 부자의 비율이 약 3대1인데 우리나라엔 금융계 부자로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이 유일합니다. 무엇보다 구미는 경제적 계층 갈등의 구조가 고착돼 있지만, 한국은 아직 계층 형성조차 안 됐고 본격적인 계급 갈등을 겪은 적도 없습니다. 불평등이라는 현상만 보고 그 원인이 다른 것에 주목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대안을 내놓을 수가 없습니다. 잘못된 우리 사회를 바로잡을 수도 없죠.”

✚ 경제민주화를 둘러싸고 논의가 분분합니다.
“경제민주화를 모든 사람이 1인1표를 행사해 경제적 의사결정을 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 때문이에요. 경제민주화란 민주주의를 강화해 자본주의를 민주적으로 견제하자는 거지 결과를 평등하게 분배하자는 게 아닙니다.”

 
✚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민주화를 내걸어 당선되고도 공약 이행을 하지 않습니다. 단임제인 데다, 책에서 지적하신 대로 계급반대투표, 기억상실투표 등 우리 국민의 유별난 투표성향 탓에 선거를 통한 심판도 무망해 보입니다. 대안세력도 보이지 않습니다. 결국 이 불평등 구조가 조만간 바뀌기는 쉽지 않을 듯싶은데요?
“우리나라는 자본주의 역사도, 민주주의 역사도 짧습니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성됐다고 해서 실질적 민주주의가 이뤄지는 건 아니죠. 지난 대선에서 보수 세력이 경제민주화를 내걸어 집권한 건 세상이 바뀔 때가 됐다고 국민들이 봤기 때문이라고 저는 봅니다. 대통령이 약속을 안 지키고 있지만 국민이 묵과하지 않을 거예요. 그러나 반복적 학습의 과정은 필요하죠.”

✚ 대선 당시 안철수 의원과 손잡고 정치실험도 시도하셨는데,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는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요? 실질적 민주주의를 어떻게 이룰 수 있다고 보나요?
“큰 틀에서 보면 우리나라도 이제 계층 분화가 이뤄져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중산층에 속하는 교수들도 스스로 서민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아울러 각 정당이 지향하는 가치에 따라 계층적 지지 기반을 만들어야 합니다. 새정치연합과 소수당은 집권에 힘쓰기보다 정체성에 충실한 정치를 해야 합니다. 사실 계급이니 계층이니 하는 말을 사용하는 걸 한국인들은 두려워합니다. 다행히 20~30대, 40대 초반 세대는 과거 역사의 굴레로부터 자유로워 보입니다.”

✚ 불평등 문제에 대해서는 보수ㆍ진보를 막론하고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보수 우파는 반경쟁적인 기득권을 지키는 독점 구조를 유지하려 들고, 규제완화 관련해서도 새 도전자의 진입 규제 완화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공정거래 차원의 규제 완화만 요구합니다. 진보는 우리 현실을 다루면서 구미의 논쟁을 수입해 적용하거나 이념 경도적, 대중 영합적인 경향을 보입니다. 불평등 문제가 깊어지기까지 보수세력이 주도적 역할을 했다면 일부 진보세력은 이런 현상을 유지ㆍ강화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 부제에 쓰신 ‘정의로운 경제’란 어떤 건가요?
“경제에서 정의로움이란 분배에 방점이 있습니다. 함께 잘사는 자본주의가 정의로운 자본주의죠. 자본주의가 만들어 내는 불평등을 분배 과정에서 어떻게 정의롭게 교정하느냐가 과제입니다.”

“원천적으로 왜곡된 분배가 문제”

✚ 한국에서 불평등 문제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재벌입니다. 재벌 총수의 경영권을 과연 보장해 줘야 하나요?
“우리나라는 주주자본주의가 아니라 총수자본주의를 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일단 구미엔 경영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습니다. 경영자란 책임을 지고 이해당사자에 대한 의무를 다해 경영을 하는 거지 경영할 권리란 성립하지 않습니다. 경영권이란 한국에만 있는 개념일뿐더러 더욱이 경영할 권리가 세습된다는 건 그야말로 총수자본주의적 발상입니다. 심지어 일부 진보적인 학자들도 총수의 경영권을 인정해 주자고 하는 게 한국 자본주의의 현주소입니다. 북한의 권력 세습은 비판하면서 경제 권력의 세습을 당연시하는 건 난센스예요. 사유재산의 세습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 장하성 교수는 “경제가 성장하는 만큼 임금이 늘지 않는 건 기업이 이익을 분배하지 않고 내부에 유보하기 때문”라고 말했다.[사진=뉴시스]
✚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탁월한 경영 성과를 내면서 촉발된 이건희 효과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경영권이 넘어가면 경영 성과가 떨어질 거라는 우려가 있는데 경영권을 보호해 주면 경영 성과가 커진다는 것이야말로 어리석은 가정입니다. 구미의 탁월한 기업들이 경영권을 보호해 줘서 잘나가나요? 한마디로 삼성전자는 성공했지만 이건희 회장이 실패한 사업이 수두룩합니다. 그 사업들은 경영권 보호가 안 돼 실패했나요? 실패하는 게 잘못이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숱한 실패를 딛고 어느 하나가 성공하는 것인 만큼 경영권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거죠.”

✚ 삼성전자 오너에게서 경영권을 빼앗으려면 100조원가량이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해서 나온 숫자인가요?
“현재 경영하고 있는 주주의 뜻에 반해 기업을 탈취하는 적대적 인수ㆍ합병(M&A)을 하려면 시장에서 절대 지분의 주식을 확보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외국인 투자자가 삼성전자 경영자와 지분 확보 경쟁을 벌인다면 최소 100조원이라는 천문학적 규모의 돈이 필요하죠. 이런 규모의 기업을 상대로 한 적대적 M&A는 자본주의 역사상 시도된 적이 없고, 당연히 성공사례도 없습니다. 이거야말로 ‘시장괴담’이고 저는 삼성이 스스로 만들어낸 자작극이라고 봅니다. 그렇다고 삼성전자의 경영권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갈 가능성을 배제하는 건 아닙니다. 삼성자동차, 홈플러스 등 삼성도 경영권을 넘긴 회사가 여럿이거니와 경영 실적이 안 좋으면 넘어갈 수 있습니다. 회사가 망하게 생겼다면 회사를 살려야지 이건희 회장 가족이 경영권을 유지하는 게 중요합니까?”

✚ 소수 재벌의 지배력이 위험 수위에 이르렀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세계경제포럼이 144개국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는데 소수 그룹의 지배력에서 우리나라가 120위권입니다. 재벌그룹의 시장 장악력, 경제 지배력이 외환위기 때보다 더 강합니다. 기득권이 상당히 공고한 사회라는 거죠. 한국 사회 전체가 경제 구조에 예속돼 있다면 경제 구조는 재벌에 예속돼 있어요. 정치권은 말할 것도 없고 관계, 법조계, 언론계 심지어 문화계마저 재벌 눈치를 봅니다.”
 장 교수는 페이스북에서 한국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 제기를 이어가고 있다. 책 안 읽는 시대 보통 사람들과 소통하려 그동안 백안시해 온 소셜 미디어에 입문했다.

성과 위해 경영권 보호? 어리석은 가정

✚ 한국 자본주의의 불평등을 완화할 실효성 있는 대안 세 가지만 꼽아주시기 바랍니다.
“우선 바로 효과를 낼 수 있는 게 초과내부유보세입니다. 경제가 성장하는 만큼 실질임금과 가계소득이 늘지 않는 건 기업이 이익을 분배하지 않고 내부에 유보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업은 이익 창출의 주체이자 분배의 주체입니다. 이익을 냈으면 공급대금, 임금 및 보수, 이자, 세금, 배당 등으로 분배하고 미래를 위해 투자를 해야죠. 이 세금은 반시장적ㆍ반자본적인 것도 아니고 구미의 여러 나라가 현재 걷고 있습니다. 이 정책을 통해 중산층ㆍ서민에 대한 분배를 늘릴 수 있고, 해당 기업이 투자를 늘리면 고용도 창출할 수 있죠. 고용을 늘린 기업엔 다시 혜택을 줄 수 있고요. 초과내부유보세는 이렇게 다양한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내도록 시행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발표된 정부안에선 그런 내용들이 빠졌죠. 다음으로 비정규직 해소책인데 정규직 전환의 기준을 근무 기간에서 해당 업무의 존속 기간으로 바꾸는 겁니다. 가령 기간제보호법을 시행한 지 거의 10년 됐는데 그동안 지속된 업무라면 담당자를 정규직으로 쓰는 겁니다. 분배 문제 해결에 상당한 도움이 될 거예요. 셋째로 고소득층에 대한 세금을 대폭 강화하는 겁니다. 개인소득뿐만 아니라 법인세의 누진율을 높이는 겁니다. 17조원 벌어들이는 삼성전자와 20억원 버는 중소기업의 세율이 같아서는 안 됩니다. 세율 구조를 고치면 세금으로 내기 싫어서라도 분배를 강화할 거예요. 이렇게 2~3년이면 효과를 볼 정책을 왜 쓰지 않는지 답답합니다.”

✚ 재벌 등 기득권 세력이 가로막는 것이겠죠. 카르텔이랄까요?
“저는 관료, 정치권, 재벌이 이 점에 관한 한 한 통속이라고 봅니다. 정치권만 하더라도 여당이든 야당이든 기득권의 틀을 깨려들지를 않아요.”

✚ 자본주의 자체에 대해서는 어떻게 전망하나요? 자본주의의 종말이 올 수도 있다고 봅니까?
“자본주의의 종말이 온다는 건 합리적 전망이 아닙니다. 첫째 자본주의의 대안이 없습니다. 둘째 자본주의의 역사를 보면 위기마다 역동적인 자기 교정의 과정을 거쳐 진화합니다.”

 
✚ 한국 경제는 어떻게 전망합니까?
“저는 희망적으로 봅니다. 매사를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이기는 합니다만. 근거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우리 국민은 우수할뿐더러 향상 욕구가 강합니다. 정치가 아무리 개판이라도 역동성을 만들어 낼 겁니다. 둘째 제가 비판한 숱한 기득권 틀이 깨지면 엄청난 잠재력이 발휘될 거예요. 마지막으로 이번에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중국과의 관계입니다. 중국은 경제 강국 미국의 최대 무역적자국인데 중국의 최대 무역적자국이 바로 한국입니다. 중국은 이제 생산기지가 아니라 시장입니다. 한ㆍ중 FTA로 시장은 확대되겠지만 중국경제의 불확실성이 우리 경제에 커다란 위험변수가 될 수도 있어요. 중국의 최대 무역적자국이라 대중의존도가 높은 점, 중국 위안화 평가절상에 따른 자본이동에도 대비해야 합니다. 상품부문에서 자동차 및 부품이 제외된 건 좀 아쉽습니다.”

기자는 5년 전 장 교수와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의 대담을 진행했다. 그 얼마 전 그는 윤 회장이 낸 책 「긍정이 걸작을 만든다」에 저자 인물평을 실었는데 이런 대목이 있다. “재벌그룹들이 모든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척박한 창업 토양에서 기적 같은 2세대 창업 신화를 이뤄낸 사람이 바로 윤석금이다.” 윤 회장은 지금 계열사를 부당 지원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 윤석금 회장의 조락을 지켜보면서 나름의 소회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기업을 재벌처럼 안 해서 성공한 분인데 재벌 흉내 내다가 무너졌습니다. 남들이 ‘책 장사, 물 장사 그게 돈이 돼’ 할 때 그 시장에 뛰어들어 성공한 분인데. 가깝게 지냈고 그래서 싫은 소리를 자주 했습니다. 재벌같이 하지 말라고 했는데 건설사, 저축은행 인수하고 사옥 마련하고 했죠. 사옥이 왜 필요합니까? 과거엔 대출 받으려 장만했다지만.”
이필재 더스쿠프 인터뷰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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