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제한 최소화 위해 헌법소원까지 모색”

 

▲ 롯데면세점의 관세법 개정 대응방안이 적시된 내부문건이 공개돼, 파문이 일 전망이다. [사진=뉴시스]

국내 면세업계가 심상치 않다. 2013년 ‘경제민주화 바람’을 등에 업고 면세시장이 진출한 중소기업이 줄줄이 무너지고 있어서다. 그러자 ‘면세업은 역시 자본력과 경험을 가진 재벌이 운영해야 마땅하다’는 괴상한 논리가 퍼지고 있다. 과연 그럴까. 더스쿠프가 한 재벌 면세점의 내부문건을 단독 입수했다. 면세업 동반성장을 취지로 개정된 관세법을 무력화하려는 전략, 중소 면세업체를 우회지배하기 위한 전략 등이 담겨 있다. 그 내용을 공개한다.

 

정부의 ‘면세업 상생’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작성된 롯데면세점의 내부문건이 공개됐다. 더스쿠프가 국회 기획재정위 윤호중(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로부터 단독 입수한 내부문건에 따르면 롯데면세점은 관세법 개정(2013년 1월) 이후의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획재정부ㆍ관세청 등 유관기관, 언론, 심지어 헌법소원제도까지 활용할 계획을 세웠다. ‘대ㆍ중소기업 동반성장’을 취지로 개정된 관세법의 효력을 떨어뜨릴 목적으로 여론전戰에 소송전까지 준비한 셈이다.

롯데면세점은 또한 2013년 한국관광공사의 인천국제공항 면세점(KTO) 사업권이 중소기업에 넘어갈 것에 대비, ‘고급 수입브랜드 등 수입품의 소싱전략’을 마련했다. 이는 수입브랜드의 계약ㆍ주문ㆍ수급을 자신들이 도맡겠다는 뜻으로, KTO 사업권을 따낸 중소기업을 우회지배하겠다는 전략이다. 롯데면세점은 연 매출이 3조원에 달하는 국내 면세점 업계 1위(시장점유율 51.1 %ㆍ2012년 기준) 업체다. 윤호중 의원은 “지금껏 국가의 비호를 받으며 글로벌 수준으로 성장한 재벌 면세점이 자신들의 사업권을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재벌 면세점의 시장 장악을 막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주장했다.

헌법소원 플랜=이번에 입수한 롯데면세점 내부문건은 제1편 관세법, 제2편 인천 KTO로 구성돼 있다. 제1편엔 관세법 개정에 따른 대응방안이 담겨 있다. 정부는 지난해 관세법 개정을 통해 면세점 특허수(매장수 기준)의 20% 이상(2018년부터 30%)을 중소ㆍ중견기업에 주고, 대기업(상호출자제한기업)은 60% 미만으로 못 박았다. 관세법을 개정한 이유는 간단하다. 국내 면세점 업계의 ‘재벌 과점 문제’가 워낙 심각했기 때문이다.

롯데면세점(을지로 본점)과 신라면세점의 특허는 각각 1979년, 1986년 이후 지금까지 자동갱신돼 왔다. 두 공룡이 면세시장을 장악하는 동안 중소기업은 별 기회를 얻지 못했다. 1988년부터 2012년 상반기까지 면세점 특허를 받은 중소기업이 단 한 곳도 없을 정도다. [※ 참고: 면세점 사업을 하려면 정부의 특허가 필요하다. 정부가 세금이 붙지 않는 물품을 팔 수 있도록 혜택을 주는 거다.]

기득권 지키려 여론전ㆍ소송전 준비

흥미롭게도 한국 면세시장은 이 기간에 가파른 성장을 거듭했다. 시장규모는 2001년 1조7824억원에서 2012년 6조3292억원으로 255% 커졌다. 요우커(遊客ㆍ중국인 관광객) 등 아시아 관광객이 성장에 한몫했다. 롯데면세점과 신라면세점의 매출은 각각 3조2511억원, 1조9018억원(2012년 기준)을 찍을 정도로 크게 늘어났다. 두 업체는 2012년 글로벌 유통전문지 ‘무디리포트(Moody Report)’가 선정한 세계 4위, 8위 면세점에 오르는 영예도 누렸다. ‘면세업 성장’의 열매 대부분을 재벌 대기업이 따먹은 셈이다. 정부가 관세법 개정을 추진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기획재정부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 정부는 이번 관세법 개정을 통해 중소ㆍ중견기업 면세점 수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아울러 대기업과 중소ㆍ중견기업의 새로운 동반성장이 유도될 것이다….” 롯데면세점 역시 이런 분위기를 잘 꿰뚫어 본 듯하다. 이 회사의 내부문건엔 다음과 같은 분석이 실려 있다. “대ㆍ중소기업 동반성장정책으로 중소기업 보호 분위기 확산, 면세업 대기업 독점 논란, 향후 관세법 개정을 통한 중소기업 특허 확대 예상.”

그 대응방안으론 한국면세협회와 함께 기획재정부ㆍ관세청 등 유관기관을 적극 설득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관광서비스ㆍ한류진흥을 내세워 문화체육관광부에 정책을 건의하자는 전략도 세웠다. ‘재벌 면세업 과점’의 명분을 정부부처와 유관기관에 전파해 중소업체의 활로를 막겠다는 거다. 여론몰이 전략도 있다. 국가연구기관(대외경제정책연구원ㆍ한국조세연구원) 컨설팅, 대학교수의 언론기고를 통해 ‘재벌이 면세업을 맡을 수밖에 없다’는 당위성을 알리는 게 골자다.

언급했듯 헌법소원을 활용한 대응전략도 모색했다. 이도 저도 안 되면 관세법 개정안의 정체성을 꼬집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윤호중 의원은 “국내 면세시장은 재벌 대기업(롯데면세점ㆍ신라면세점)이 30년 넘게 독점적으로 운영했고, 그 결과 두 업체는 글로벌 수준의 면세점으로 성장했다”며 “그럼에도 재벌 면체업체가 관세법 개정의 취지인 ‘대ㆍ중소기업 동반성장 콘셉트’를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이 내부문건을 통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겉으론 상생, 속내는 독식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사업권에 중요한 변화가 몰려올 수 있는 상황에서 기업이 대응전략을 수립하는 건 당연하다”고 전제한 뒤 “문건에 담긴 내용은 상황에 따른 대응방안 중 하나였고, 실제론 시행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설득력을 얻기 어려울 듯하다. ‘재벌 대기업의 입김이 면세업 상생 콘셉트를 흔드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어서다. 윤 의원은 “김낙회 신임 관세청장이 최근 ‘면세점 추가허용에 대기업ㆍ중소기업을 구분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언론 인터뷰를 했다”며 “이 발언은 정부와 여야가 함께 추진한 면세점 상생기조를 뒤집는 것으로, 재벌 대기업의 바람과 설득이 투영된 결과로 보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中企 우회지배 플랜=내부문건 제2편 ‘인천 KTO’엔 롯데면세점의 중소기업 우회지배 전략이 구체적으로 기록돼 있다. 2012년 말 인천국제공항공사는 KTO(한국관광공사 인천공항 면세점) 자리에 새 사업자를 선정하는 입찰을 냈다. 입찰참가자격은 자산 5조원 미만의 중견ㆍ중소기업으로 못 박았다. ‘면세업 상생’을 위한 조치였다.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매출은 연 2조원에 육박한다. 매출 측면에서 인천공항 면세점과 자웅을 겨룰 만한 곳은 두바이국제공항뿐이다. 더구나 KTO의 시장점유율은 2012년 당시 9%, 매출은 연 1753억원에 달했다. KTO가 시장에 나오자 수많은 중견ㆍ중소 면세업체가 눈독을 들인 이유다.

[※참고: KTO 입찰은 2012년 12월, 2013년 2월과 8월 세 차례 유찰됐다. 많은 기업이 군침을 흘렸음에도 유찰된 까닭은 ‘높은 최저보장액’에 있었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면세업체에 공간을 내주고 일종의 임대료인 ‘최저보장액’을 받고 있는데, 한국관광공사는 연 530여억원을 냈다. 그런데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새 사업자에겐 연 700억원 넘는 최저보장액을 요구했다. 당시 입찰 참가를 고려했던 중소 면세업체 관계자는 “KTO의 연 수익은 대략 30억원이다”며 “이런 상황에서 최저보장액의 수준을 그렇게 높이면 앉은 자리에서 손해를 보라는 건데, 어떤 기업이 선뜻 입찰에 참가하겠나”고 털어놨다.]

그런데 엉뚱한 일이 벌어졌다. 롯데 측은 인천 KTO를 통해 시장지배력을 강화하는 전략을 수립했다. 인천공항 면세시장 점유율이 50%의 육박했음에도 그랬다. 내부문건에 따르면 롯데면세점은 ‘새 사업자(중소기업)가 선정되면 BTQ(부티크)의 수입품을 소싱하고 물류서비스를 담당하겠다’는 플랜을 마련했다. BTQ는 루이뷔통ㆍ샤넬ㆍ에르메스ㆍ구찌ㆍ프라다 등 글로벌 브랜드의 매장을 말한다. 수입품 소싱은 이런 브랜드와 매장개설에 합의하고, 공급계약을 체결해 상품주문ㆍ수급을 가능케 하는 것 이다. 쉽게 말해 롯데면세점은 루이뷔통ㆍ샤넬 등 수입브랜드의 상품주문ㆍ수급을 자신들이 담당하겠다는 전략을 세운 셈이다.
 

물류서비스도 마찬가지다. 내부문건에 적시된 ‘물류서비스 담당’이라는 뜻은 상품의 반입ㆍ반출을 맡겠다는 거다. 이렇게 수입품 소싱과 물류서비스를 패키지로 대행하면 면세점의 핵심기능은 사업자가 아닌 롯데면세점으로 넘어간다. ‘수입품 소싱-물류서비스 담당’을 롯데의 우회확장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는 이유다. 윤호중 의원은 “내부문건에 기록돼 있는 수입품 소싱전략은 중소기업이 시장에 진입하더라도 돈이 되는 유통 부문은 잡겠다는 것”이라며 “유통을 지배당하면 실제 사업이 종속되는 효과가 발생해 제아무리 능력 있는 중소기업이라도 수익을 올리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법무법인 정도의 양창영 변호사도 “수입품을 소싱하면 롯데는 해당 면세점(가령 인천 KTO)의 실질적 운영자가 된다”며 “공정거래법을 굳이 따지지 않아도 이 전략은 중소 면세업체 육성이라는 취지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고 비판했다.

롯데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관세법 개정 이후 손해가 막심한데, 지나친 비판이 아니냐’는 거다. 롯데 관계자는 “수입품 소싱전략은 주요 브랜드를 유치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중소 면세업체를 도와주기 위한 것”이라며 “지금도 중소기업 시내 면세업체의 수입품 소싱을 담당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얻는 이득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물류 서비스를 담당하겠다는 것 역시 중소 면세업체의 물류 부문을 도와주겠다는 의미”라며 “상품 발주 요청, 보세차 운송 등 물류 업무와 매장 운영권은 전적으로 중소기업 면세점에 있다”고 덧붙였다.

“대기업 면세점수 감소했지만…”

롯데의 또 다른 관계자는 “우리는 지방 중소 면세업체의 오픈을 지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해외판로 개척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상생원칙’을 지키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는 거다. 그는 또 “관세법 개정으로 대기업의 특허수가 제한돼 김해ㆍ제주공항 면세사업권을 포기했다”며 “우리가 대응전략을 수립해 적극적으로 실행에 옮겼다면 이렇게 어려움을 겪고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 중국 국경절 연휴 첫날인 지난 10월 1일 오후 서울 롯데백화점 면세점이 중국인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사진=뉴시스]

그러나 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긴 어렵다. 롯데측 주장대로 관세법 개정 이후 대기업 특허수는 2012년 말 59.4%에서 2013년 8월 55.9%로 3.5%포인트 줄었다. 그렇다고 매출까지 감소한 건 아니다. 관세청 자료를 종합하면, 롯데ㆍ신라면세점의 독과점 비중(면세점 총매출 대비 롯데ㆍ신라면세점 매출)은 같은 기간 81%에서 83%로 2%포인트 높아졌다. 면세점 숫자는 줄었지만 재벌 대기업의 영향력은 더 커진 셈이다. 익명을 원한 중소 면세업체 관계자는 “대기업의 견제가 만만치 않아 유명 브랜드를 유치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며 “대기업이 중소 면세업체를 지원한다는 건 생색내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목청을 높였다.

2013년 11월. 롯데면세점은 중소 면세업체 7곳과 동반성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면세업계의 상생발전을 실현하자는 게 취지였다. 일부 언론은 이 MOU를 대ㆍ중소기업의 훈훈한 미담으로 소개했다. 하지만 롯데면세점은 상생보단 ‘지배력 강화’를 부심했다. 상생 콘셉트로 개정된 관세법도 마뜩지 않게 여겼다. 롯데면세점 내부문건에 담긴 불편한 진실이다.
이윤찬ㆍ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chan4877@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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