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이순신공세가 ㊴

순신은 거제로 행선할 뜻을 밝혔다. 이번 길에는 적의 소굴이 되는 부산의 본거를 소탕할 터이니 전력을 다하라는 의지도 전했다. 매번 싸움에서 승리해 자신감이 생긴 제장들 역시 죽을 힘을 다해 싸울 것을 서약했다. 순신의 신묘한 지혜와 웅장한 용기에 태산 같은 신뢰심이 생긴 거였다.

▲ 순신은 거제로 가서 당포에서 달아난 적의 함대를 물리쳤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당포를 떠난 이순신은 행선을 재촉해 진주 지방인 창선도 앞바다에 도착했다. 이곳만은 조용할 것으로 여겼던 거다. 하지만 한밤 중에 군중이 크게 요란해졌다. 원균의 배에서 ‘적의 잠수 수군이 습격한다’고 야단법석을 떤 탓이었다. 순신의 기함은 적연부동(마음이 안정돼 사물에 동요되지 않음)하였다. 얼마 후 정운, 어영담 등은 영令을 내려 ‘놀랄 것 없다’는 뜻을 알렸다. 이튿날 새벽녘에는 배를 띄워 추도(경남 통영시 산양읍의 섬) 근방에 이르러 두루 수색했지만 적선의 그림자도 찾을 수 없었다.

이순신 군대는 이날 밤 고등포(경남 창원시 의창구 대신면 제동리)에서 쉬고 6월 4일 이른 아침까지 적선의 유무를 정찰했다. 오후 4시가 됐을 무렵, 웬 사람 하나가 산으로부터 뛰어내려와 순신의 주사를 보고 이렇게 고했다. “그저께 접전한 뒤 살아남은 적군이 자기편 군사의 목을 베어 한 무더기로 모아 쌓고 불을 질러 태워버린 후 육지로 달아났소. 달아날 때에 조선 사람을 만나도 죽일 뜻이 없어 보였소.”

“그날 석양 무렵에 구원하러 오던 적선 50~60척은 어디로 갔다더냐”는 순신의 질문에 그는 “구원 오던 적선은 당포싸움에서 자신들의 편이 전멸된 것을 보고는 거제로 달아나 버렸소”라고 답했다. 이 사람의 이름은 강탁姜卓이었다.

▲ 순신의 공격에 일본 수군은 물에 빠져 죽는 등 섬멸됐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순신은 거제로 가서 적의 함대를 소탕하고 싶었다. 그러나 혼자의 병력으론 형세가 약했다. 전라우수사 이억기가 아직 합류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순신은 왼쪽 어깨에 총을 맞은 상태. 여름철인지 쉽게 상처가 낫지 않아 고통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렇다고 적이 있는 곳을 알고는 뒤로 물러갈 순 없었다. 순신은 제장을 불러 거제로 행선할 뜻을 밝혔다. 이번 길에는 적의 소굴이 되는 부산의 본거를 소탕할 터이니 전력을 다하라는 의지도 전했다.

매번 싸움에서 승리해 자신감이 생긴 제장들 역시 죽을 힘을 다해 싸울 것을 서약했다. 순신의 신묘한 지혜와 웅장한 용기에 태산 같은 신뢰심이 생긴 거였다. 이때 전라우도 수군절도사 이억기가 거느린 대맹선 25척이 중소선 50여척을 이끌고 위무당당하게 합류했다. 순신의 좌도 주사 제장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불과 23척의 배로 날마다 싸움을 해야 했으니, 얼마나 피곤했겠는가. 이때 우도 주사가 합류한 건 비길 데 없는 기쁨이었다. 우도 함대는 순풍에 돛을 달고 달려왔다. 순신이 몸소 뱃머리에 나서서 이억기를 환영하였다.

순신 나타나자 왜군은 꽁무니

순신은 이억기의 손을 잡으며 “영감, 먼 길에 노고는 어떠하오. 왜 이렇게 늦었소. 이때가 어떤 때요”라고 말했다. 이억기는 “배 준비가 바빠서 길이 늦었습니다”며 늦게 온 것에 유감의 뜻을 표한 뒤 “그동안에 연전연승하셨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고 말했다. 이억기는 이순신ㆍ김시민ㆍ김덕령 등과 함께 이름이 높은 명장이었다. 그는 자신보다 연령이 15세 이상 많은 순신을 마음으로 깊이 존경하고 숭배했다. 더구나 지난 4월 일본군이 조선땅에 발을 들여놓은 후 조선의 수륙 장수들이 싸우기도 전에 달아나는 이때 오직 이순신만이 과감하게 출병해 연전연승한 걸 고맙게 여겼다. 실제로 그렇게 강하다는 일본군은 순신의 연승 이후 전라도에 발을 붙이지 못했다. 충청도 이북 바다에는 적선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순신의 배 24척과 이억기의 배 25척, 그리고 원균의 배 5척 등 삼도연합함대 판옥대맹선 50여척이 예기충천하게 당포 앞바다를 떠나 행선했다. 그리고 착량(경남 통영대교 밑을 지나는 물목) 포구에 도착해 진을 치고 밤을 지냈다. 순신은 이억기와 더불어 맹세코 적군을 소탕할 것을 약속했다. 이억기는 기쁘게 순신의 지휘를 받기를 달가워하고 또 자청했다. 이억기는 종실 심주군沁州君의 아들로 금지옥엽이다. 재상 나암懶庵 정언신의 추천으로 온성穩城부사가 돼 호적胡賊을 격파하고 대신 정철의 추천으로 이순신과 동시에 수군대장이 된 인걸이었다.

이 두 영웅이 처음 만났지만 오래된 친구 같이 한마음으로 힘껏 싸워 왕실을 돕기로 서로 결탁하였다. 아깝다, 원균이여! 어찌 함께 지내지 못하였는가? 이튿날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지척을 분별할 수가 없었다. 순신이 소선을 내놓아 적의 기미를 염탐하더니 저녁 때 이르러 안개가 걷혔다. “전일 당포 바다에서 도주한 적선이 거제에 있다가 고성 당항포(경남 고성군 회화면 배둔리 남쪽 포구)로 갔소”라고 한 어민이 고했다.

 
순신은 백성들이 자기를 기다려 적의 행동을 성심성의껏 가르쳐 주는 것에 감동 받아 “적의 칼에 어육이 되는 이 백성을 살려야지”라고 다시금 결심하였다. 순신은 전 함대를 지휘하여 견내량(거제대교의 아래쪽에 있는 좁은 해협)을 지나 당항포 앞바다에 다다랐다. 진해 쪽을 바라보니 성 밖 평야에 갑옷을 입고 말을 탄 군사 1000여명이 기를 꽂고 진을 치고 있는 게 보였다. 순신이 탐정을 보내 상황을 파악해 보니, 함안군수 유숭인이 기병해 기마병 1100명을 거느리고 적군을 쫓아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순신은 수륙으로 협공할 좋은 기회를 얻은 셈이었지만 유숭인의 용병지재를 근심하였다.

순신과 억기, 힘을 합치다

순신은 전선 3척을 보내 당항포의 산천 지리를 살피고 오라고 명했다. 만약 적선이 따라오거든 응전하지 말고 거짓으로 달아날 것을 엄히 당부했다. 다른 배들은 산 구비에 숨어 밖에서 보이지 않도록 하라고 일러뒀다. 이윽고 아까 보냈던 배가 포구 밖으로 달아나면서 신기포를 놓아 보변한다. 순신은 병선 3척을 포구에 복병하게 한 뒤 모든 함대를 재촉해 당항포로 들어가게 했다. 자신이 선봉을 서고 다음에 이억기, 그다음에 원균의 배가 순신의 지휘를 받아 양편으로 벌려서 들어갔다. 산이 강을 끼고 있고, 그 사이가 좁지를 않아 싸울 만하다고 순신은 예측했다.

실제로 이 사이로 40여척의 전선이 꼬리를 물고 들어가는 모습은 장관을 이뤘다. 순신의 함대가 소소강(경남 고성군 마암면 두호리에 있던 하천) 어구에 다다르니 검은 칠을 한 적선이 나타났다. 그 크기가 조선 판옥대맹선만한데, 대선이 9척이요 중선이 4척, 소선이 13척이었다. 이 배들은 강 언덕에 가깝게 닻을 내리고 늘어섰다. 그중 가장 큰 배 1척은 뱃머리에 3층 누각을 세우고 단청을 찬란하게 만들었다. <다음호에 계속>
정리 | 이남석 대표 cvo@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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