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상 치른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

▲ 이웅렬 코오롱 회장은 전 임직원에게 변화와 혁신을 통한 비전을 주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웅열(58) 코오롱그룹 회장이 최근 부친상을 치렀다. 4년 전 모친상을 치렀으니 이제 그는 부모를 모두 여읜 소위 고애자孤哀子가 됐다. 국내 30위 그룹기업인 코오롱의 앞날이 3세 오너 경영자인 그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게 됐다. 조부(고故 이원만 창업자)와 선친(고 이동찬 명예회장)이 일으켜 놓은 60년 된 코오롱을 유지ㆍ발전시킬 책임이 고스란히 그에게 넘어온 셈이다.

지난 8일 한국 섬유업계의 산증인이던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이 92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상주인 이웅열 회장은 줄지어 찾는 각계의 문상객들을 맞았다. 재계도 각별히 그의 별세를 애도하는 분위기를 보였다. 숙제투성이인 한국 재계에 그가 남긴 족적이 아주 크고 또렷했기 때문이다. 코오롱을 반석 위에 올려놓은 그는 생전에 한국 재계와 스포츠계를 위해서도 많은 일을 했다. 1982~1997년 15년간 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을 맡아 격동기의 한국 노사관계 정립에 헌신한 일은 특히 기억된다.

 
사실 경총 회장직은 재계 인사들이 맡기를 꺼린다. 까다롭고 골치 아픈 일이 많기 때문. 1983년부터 3년간은 섬유산업연합회(섬산련) 제3대 회장을 맡아 한국 섬유업계를 대표하기도 했다. 왕성하게 활동했던 그는 18년 전인 1996년(74세) 아들 이웅열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고 은퇴했다. 회장 취임 20년 만이었다. 이후 그림 그리기, 등산, 골프 등 취미생활과 사회봉사 활동을 하며 유유자적悠悠自適 지내다 이번에 타계한 것이다. 이웅열 회장에게 선친의 이런 족적은 부담이 될까 아니면 자랑스러운 원군援軍이 될까.

이 회장은 올해 회장 취임 19년째다. 그동안 아버지의 훈수가 없을 수 없었겠지만, 그래도 이 기간 독자적으로 경영권을 행사하며 자신의 색깔을 그룹 경영에 많이 심어왔다. 이번 부친의 타계로 명실 공히 ‘이웅열 시대’가 열린 셈이다. 그의 회장 재임 기간은 벌써 선친 이동찬 명예회장의 회장 재임 기간 20년과 거의 맞먹는다. 이래저래 온전히 자신의 목소리로 지휘하고 책임도 져야 할 때를 맞았다.

올해 창립 60년을 맞은 코오롱은 자산 9조4000억원, 계열사 37개로 재계 순위 30위를 마크하고 있는 한국 굴지의 기업군이다. 이 회장은 1977년 21세 때 ㈜코오롱에 입사해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 부친 이동찬 회장이 55세의 나이로 그룹 회장직에 막 올랐을 때다. 이어 경영수업 19년만인 1996년 41세 때 아버지로부터 그룹 회장직을 물려받았다. 그간 회장 19년을 포함해 38년간 코오롱에 몸담았다.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다. 그런가 하면 코오롱 오너 4세도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이 회장의 장남 규호씨(31)가 2012년 말 코오롱인더스트리 구미공장에서 후계자 수업에 들어간 것.

선친의 족적, 이 회장 짓누를까

그는 1년간 현장 근무를 마친 뒤 지난해 건설수출입 부문 계열사인 코오롱글로벌 경영전략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부장인 그의 임원 승진 이야기는 아직 들리지 않고 있다. 아버지 이웅열 회장이 입사 8년 만인 29세 때 임원승진을 한 만큼 그의 임원 승진도 그리 멀어 보이진 않는다. 창업자인 고 이원만 회장과 그의 아들 이동찬 명예회장이 반세기에 걸쳐 코오롱을 축성했다면 34세 오너 이웅열 회장과 이규호 부장은 코오롱 100년 대계를 도모할 처지에 있다고나 할까.

코오롱 가문은 재계에서 보기 드물게 아들이 귀한 집안이다. 창업자인 이원만 회장은 슬하에 2남 4녀를 두었다. 하지만 이 명예회장은 1남 5녀, 이웅열 회장은 1남 2녀로 각각 아들은 하나씩밖에 두지 않았다. 코오롱가家 오너 경영의 특징은 장남만 경영에 참여시킨다는 점이다. 딸들과 사돈가의 경영참여는 철저히 배제해 다른 그룹들과 차별화된다.

이 명예회장이 한때 숙부인 이원천씨와 코오롱 경영권을 놓고 피 튀는 분쟁을 한 쓰라린 경험이 있어 그런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코오롱은 1990년대 부터 이미 이웅열 회장으로의 승계구도를 갖춰 왔다. 그 결과 지주회사 격인 코오롱에서의 이웅열 회장 지분율은 44%에 이른다. 이 명예회장 사후에도 코오롱의 장자 후계구도는 굳건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일부 호사가들은 34세에 내려와서도 코오롱이 쪼개질 가능성은 없는지 좀 더 두고 볼 일이라는 말도 한다.

 
‘Lifestyle Innovator-’. 이웅열 회장이 코오롱그룹의 지향점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코오롱은 화학소재바이오, 건설레저서비스, 패션 및 유통, 환경분야 등에서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이들 사업을 통해 고객의 생활의 질을 향상시키고 라이프스타일을 혁신시키는 ‘Life style Innovator’가 되겠다는 각오다. 여기에 이 회장의 19년 회장직 경험이 다 녹아 있는 셈이다.

선친이 일궈 놓은 주력분야 화섬업종은 중국의 저가공세로 날이 갈수록 경쟁력이 위협받고 있다. 그래서 기존의 섬유소재를 첨단화해 새 돌파구를 찾는 데 관심이 많다. 섬유소재에 IT를 접목해 유기태양전지나 전자섬유로 사업을 재편하려 힘을 쏟고 있다. 2007년부터 투자해 온 유기태양전지 분야는 메로시아닌프탈로시아닌 같은 유기물을 기반으로 만드는 태양전지다. 코오롱의 강점인 패션아웃도어 분야에 응용할 경우 섬유산업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울 것이라며 기대가 크다.

2008년엔 섬유에 전자회로를 인쇄한 전자 발열섬유 ‘히텍스’를 상품화한 바 있다. 옷을 입으면 건강상태가 자동 점검되고 음악 청취나 인터넷 이용도 가능한 ‘웨어러블 정보기기’에도 관심이 높다. 모두 섬유에 전류를 흐르게 해서 가능해진 사업 분야다. 이를 위해 서울 강서구 마곡동에 2017년까지 2500억원을 들여 ‘미래기술원’을 만들고 그룹 연구개발(R&D)의 중추로 삼을 방침이다.
 
신성장동력 ‘웨어러블 정보기기’

사실 이 회장에게 올해는 무척 보기 드문 시련의 해로 기억될 것 같다. 지난 2월엔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지붕 붕괴 사고로 부산외대 신입생 등 10명이 숨지고 100여명이 부상하는 참사가 발생해 보상과 사후 처리에 곤욕을 치렀다. 이 일로 코오롱의 이미지는 크게 손상될 수밖에 없었다. 최근엔 부친상을 당했으니 그 이상 큰 시련이 또 어디 있을까. 이 회장은 올해를 경영의 ‘턴 어라운드’ 원년으로 삼아 구조조정과 수익구조 개선에 힘써왔는데 그에 비례해 주어진 시련의 강도도 더욱 높았다.
 
이 회장은 5명의 누이들 가운데서 컸지만 성격은 무척 남성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포츠와 영화를 무척 좋아하는 것으로도 전해진다. 일단 시작하면 끝을 보며 활달하고 사교적인 성격이어서 재계 모임에도 비교적 많이 참석하는 편이다. 재계에서는 그가 선친보다 창업자인 할아버지 성격과 더 닮은 것 같다는 얘기들을 한다. 조부는 풍류가 많고 정재계를 넘나든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반면 선친은 근검절약이 몸에 밴 서민풍이었다. 15세 때부터 부친(이원만)의 사업을 도우며 안살림을 살아온 경험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재계는 그를 창업자인 아버지와 함께 사업을 한 1.5세 오너라고 부르기도 한다. 부친 별세 후 이웅열 회장의 경영행보가 어떻게 전개될지 지켜볼 일이다.
김은경 더스쿠프 객원기자 kekis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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