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산동 B아파트 단지 ‘사기분양’ 논란

▲ 부동산 매매전문가는“근본적인 문제는 선분양 시스템에 있다”고 지적했다.[사진=뉴시스]
내년 6월 완공을 앞둔 주상복합 아파트 서울 마포구 당산동의 B아파트가 최근 부동산 업계에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투자기피 물건’이 됐다. 분양대행사가 ‘사기분양’을 했다는 입소문이 퍼져서다. 한 투자자가 인터넷 블로그에 올린 글이 화근이 됐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당사자간 소송이 진행 중인 사건으로 실명을 거론하면 법원 판결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일시적으로 이니셜 처리 함 - 편집자주]

올해 6월 초 직장인 김상국(가명)씨는 B아파트 단지(2015년 6월 완공 예정)의 분양 물량 중 조합원 해지 물량 일부가 할인돼 나온다는 소식을 접했다. 솔깃했다. 일반 분양가(5억9900만원)보다 수천만원 싼 가격에 할인을 받을 수 있는데다 지하철역(영등포구청역ㆍ영등포시장역ㆍ당산역)과 가까워 투자가치가 높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생각이 족쇄가 될 줄은 몰랐다.

분양대행사인 H사가 김씨에게 제시한 첫 할인율은 5%. 같은 아파트가 1억원이나 싼 4억9000만원(할인율 약 18%)에 분양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김씨는 분양대행사에 따졌다. 그제야 분양대행사 관계자는 “그 가격에 분양하는 아파트가 하나 남아 있다”며 계약을 권했다. 김씨는 1000만원의 가계약금을 H사에 입금하고, 조합원 자격을 얻었다. 할인율이 너무 높은 게 의심스러웠던 김씨는 수차례에 걸쳐 ‘가계약 해지시 계약금 전액을 돌려받을 수 있는지’ 확인했고, 분양대행사 측은 그때마다 ‘그러겠노라’ 약속했다.

 
한발 더 나아가 분양대행사 관계자는 “특별히 7%의 할인율을 적용해 주겠다”며 추가 계약도 권했다. 나쁘지 않은 조건이라 생각한 김씨는 아내와 어머니 명의로 가계약 2건을 추가했다. 각 3000만원씩 6000만원을 다시 H사에 입금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 다른 분양대행사에서 같은 아파트를 10% 할인해 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김씨는 H사에 이 사실을 따져 물었고, 분양대행사 측은 터무니없다는 주장이라며 일축했다. 그래도 의심이 풀리지 않은 김씨는 결국 계약 해지를 결심했다.

김씨는 약속했던 대로 계약을 파기할 것을 요구했다. 분양대행사 측은 계좌번호를 보내주면 곧 해결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한동안 연락이 없던 분양대행사는 김씨에게 내용증명 한통을 보냈다. “애초 1000만원의 가계약금을 넣은 물건(첫번째 가계약)의 중도금을 납입하지 않아 가계약금을 분양대행사에 귀속시킨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유심히 살펴보지 않았던 가계약서에는 분명 그런 내용의 특약이 있었다. [※ 참고: 김씨의 어머니와 아내 명의로 된 계약서에는 이런 내용이 없었고, 예금주도 달랐다.] 김씨는 기가 막혔다.

분양대행사 측은 “중도금을 넣어 본계약을 하면 다른 사람에게 전매해 계약금을 돌려주겠다”고 김씨를 다시 설득했다. 믿음이 가지 않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어 어머니 명의로 된 가계약의 중도금을 분양대행사 측에 입금했다. 하지만 그들이 약속한 기간까지 전매는 이뤄지지 않았고, 계약금도 지급되지 않았다. 말뿐이었던 거다. 오히려 분양대행사 측은 아내 명의의 가계약까지 본계약으로 할 것을 종용했다.

“가계약 깨려니 중도금 내라”

완전히 속았다고 직감한 김씨는 결국 B아파트를 홍보하는 블로그에 자신의 얘기를 올렸다. 영업에 방해가 되자 분양대행사 측에서 만나서 원만하게 해결하자며 연락이 왔지만, 약속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김씨는 “가계약금을 돌려받고 모든 게 없던 일이 됐으면 좋겠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그러나 분양대행사는 중도금을 모두 입금하고 전매를 통해 계약금을 돌려받는 게 최선이라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김씨는 “더 이상 분양대행사의 말만 믿을 수는 없다”며 분양대행사 측에 “전매 이행을 강제할 수 있는 담보를 제공하고, 조합 관계자를 포함해 3자간에 적용되는 이행각서를 작성해 달라”고 요구했다. 분양대행사는 이를 거절했고, “계약 해지로 우리만 손해를 보게 생겼다”며 법적인 대응에 나섰다. 결국 김씨도 소송을 준비했다. 여기까지가 김씨의 주장이다.

분양대행사의 주장은 완전히 달랐다. B사 임원의 말이다.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이니 그 사람(김씨) 말이 진실이라면 법원에서도 그렇게 판결할 거다. 하지만 내용이 완전 다르다. 첫번째 계약의 경우엔 계약금이 우리에게 귀속된다는 조항이 있었고, 그걸 알고 도장을 찍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계약해지를 해주려 최선을 다했다. 가계약 당시에 물건을 살 사람이 생겼으니 해약할 거면 빨리 팔라고 조언도 했다. 그런데 좀 더 상황을 지켜보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한 거다. 말을 바꾼 건 우리가 아니라 그 사람이다. 잔금을 치러야 할 시기에 해약해 달라고 하면 어떻게 되나. 우리도 손해가 막심하다. 다른 곳에서 더 높은 할인율을 제시했다는 얘기도 하더라. 증거를 대보라 하니 증거도 없더라. 그 사람의 단순 변심 때문에 우리는 몇개월간 영업도 못했다. 인터넷에 글을 올리고, 언론에 제보까지 하는 바람에 손님도 다 떨어져 나갔다.”

B사 임원은 또 “해당 주택이 무주택 세대주에게만 자격이 부여됨에도 김씨는 3건이나 가족 명의를 빌려 계약했다”며 “하지만 시세가 위례신도시처럼 오르지 않자 여러 이유로 해약을 요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분양 현장에는 이처럼 시세 차익을 노려 계약했다가 해약을 요구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며 “오히려 김씨가 전형적인 투기사범”이라고 주장했다.

누가 진실을 깨물고 있는 걸까. 소송 중이라 진실은 알긴 어렵다. 다만 몇가지 살펴볼 만한 사안이 있다. 먼저 ‘가계약 해지시 분양대행사 측에 계약금이 귀속된다’는 내용을 포함한 특별한 단서 조항은 언급했듯 김씨의 첫번째 계약서에만 등장한다. 어머니와 아내 명의의 계약서에는 그런 내용이 없다.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이는 큰 문제다. 가계약이든 본계약이든 계약서는 모두 동일한 형식을 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익명을 원한 부동산매매 전문가는 “계약서는 시공사ㆍ시행사ㆍ분양대행사 3곳에서 나올 수 있지만 계약서는 모두 똑같아야 한다”며 “계약서마다 내용이 다르다면 누군가 사문서를 위조했다고 볼 수 있다”고 조언했다.

또 하나는 분양대행사 명의의 계좌로 계약금이 들어갔다는 사실이다. 부동산매매 전문가는 “청약을 제외한 어떤 경우에도 분양대행사는 직접 입금을 받아서는 안 된다”며 “분양대행사가 직접 계좌 송금을 받는다면 ‘먹튀’의 위험성이 있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누가 손해를 봤냐를 떠나 분양대행사의 분양 행위 자체에 하자가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거다. 실제로 2007년 경기도 양주의 한 아파트 단지 입주자들이 아파트 소유권을 법적으로 다투다 분양대행사 측에 계약금을 입금했다는 이유로 소유권을 인정받지 못한 대법원 판례도 있다. 시행사나 시공사가 전권을 위임해도 분양대행사가 돈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게 전문가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B사 임원은 이렇게 해명했다. “아파트의 정계약 금액이 크기 때문에 모든 분양대행사는 청약서나 가계약서를 통해 가계약금을 받는다. 특히 모든 가계약서에는 단서조항을 달아 가계약금 전액을 정계약시 정계약금으로 전환한다는 내용과 정계약 체결 후 가계약서의 효력이 상실한다는 걸 명시해두고 있다. 서로 다른 가계약서를 쓴다고 해서 전혀 문제될 게 없다. 또 계약금을 받는 주체를 문제 삼는데, 해당 아파트는 이미 분양이 완료된 현장이다. 분양대행사는 매수인과 매도인의 모든 위임을 받아 중개인의 역할을 한 것이다. 때문에 계약금을 받는 주체가 잘못됐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계약이 완료된 후의 중도금은 당연히 분양대행사가 아니라 신탁사인 대한토지신탁으로 납부한다.”

하지만 부동산매매 전문가는 “중개인의 역할을 했다고 하면 임의대로 달라지는 가계약서를 들이밀 게 아니라 오히려 중개사협회의 표준계약서를 들이미는 게 일반적”이라며 “부동산업계의 상식적인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는 행동은 아니다”고 꼬집었다.

분양만 되면 끝, 선분양이 문제

분양대행사의 분양과정에 법적인 하자가 있는지의 여부는 다시 따져볼 일이다. 하지만 B사의 영업행위는 부동산업계 관계자들도 그리 쉽게 수긍할 만큼 매끄럽지는 않은 듯하다. B사의 분양 영업을 도왔던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도 B사의 시스템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을 정도다.

문제는 분양대행사가 왜 이런 모험을 하느냐는 점이다. 핵심은 모델하우스를 기본으로 선분양을 하는 시스템에 있다. 이는 투자자들을 모으고, 그 투자금으로 물건을 만들어 판매하는 구조다. 허점은 ‘분양만 되면 끝’이라는 거다. 분양 이후의 일은 시공사든, 시행사든, 분양대행사든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그러니 업자들은 물량 털어내기에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할인분양’과 동시에 ‘사기분양’이 판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부동산매매 전문가는 “일단 분양 계약이 성사되면 계약을 파기하려 해도 추가적인 시간과 비용이 들어 법적인 대응을 하기 힘들다는 걸 악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팔면 끝’인 선분양 시스템이 지속되는 한 ‘사기분양’ 논란도 끝나지 않을 거란 얘기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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