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왕섭의 Brand Speech

▲ 삼성전자는 프리미엄 브랜드‘갤럭시’를 저가 브랜드로까지 확장했지만 리스크가 너무 크다.[사진=뉴시스]

지난 114호 “‘악마의 대변인’, 삼성 물고 뜯었다면…”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필자는 삼성전자가 ‘갤럭시’ 브랜드를 저가 스마트폰으로 확장하는 게 브랜드 전략 관점에서 올바른 판단인지 의문을 제기했다. 강력한 브랜드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다른 기업들은 이런 경우 기존 브랜드를 훼손하지 않는 전략을 취한다. 현대차가 대표적이다.

현대자동차는 현재 ‘에쿠스’ ‘제네시스’ ‘그랜저’ ‘쏘나타’ ‘아반떼’ 등 다양한 차종을 생산한다. SUV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브랜드는 별도로 또 있다. 그렇다면 현대차가 삼성전자처럼 ‘갤럭시’라는 하나의 브랜드로 모든 시장을 포괄하는 브랜드 포트폴리오 전략을 취하지 않는 이유가 뭘까. 에쿠스나 제네시스 브랜드를 낮은 배기량, 저가 등급 브랜드로 확장하지 않는 까닭은 또 뭘까. 물론 프리미엄 이미지를 가진 브랜드 자산을 저가 브랜드로 확장해 저가의 경쟁자를 공략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전략은 프리미엄 이미지를 가진 브랜드 자산을 훼손하거나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 때문에 현대차는 프리미엄 브랜드와 중ㆍ저가 브랜드를 각각 구분해 운영하는 브랜드 포트폴리오 전략을 채택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과거 ‘참眞이슬露’이 시장의 절대적 강자로 군림하던 소주시장에서 ‘저도수 소주’인 ‘처음처럼’이 급성장했던 때가 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하이트진로는 ‘참이슬 해양심층수’로 브랜드를 확장하지 않고, ‘J(제이)’라고 하는 새로운 브랜드를 출시했다. 참이슬이라는 브랜드가 J라는 브랜드보다 몇 백배 더 강한데도 말이다. 이유는 비슷하다. 참이슬은 하이트진로가 가진 매우 중요한 전략적 브랜드였기 때문에 J가 시장에서 실패할 경우를 염두에 둔 것이다. 소비자가 제품을 구입하는 데 고려할 게 많지 않은 제품(관여도가 낮은 제품)인 소주시장에서도 강력한 브랜드 자산을 이용하지 않고, 새 브랜드를 만들어 기존 브랜드 자산을 훼손하지 않는 전략을 취했다. 관여도가 높은 스마트폰 시장을 이끌어가고 있는 삼성전자가 반드시 살펴봐야 할 대목이다.

브랜드 개발 작업은 브랜드 콘셉트, 브랜드 이름, 제품, 디자인, 광고 등 여러 프로세스로 구분돼 있고, 각 과정마다 의사결정이 이뤄져야 브랜드 개발을 완료할 수 있다. 흥미로운 건 대부분의 문제는 각 개발과정에서 이뤄지는 의사결정 단계가 아니라 최종적인 결정을 위해 진행되는 의사결정 단계(하위 직급에서 상위 직급으로 가는 수직적 의사결정 단계)에서 발생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정해진 브랜드 콘셉트에 따라 디자인을 개발했다고 해보자. 담당자는 부서장과 협의해 30개가 넘는 디자인 후보 중 4개로 압축했다. 이제 상위 직급에 결재를 맡는다. 하지만 결재가 위로 올라갈수록 당초 의도한 브랜드 콘셉트는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상위 직급에 속한 사람들의 경험과 가치관에 따라 의사결정이 진행된다. 결국 경쟁 브랜드와 차별화하고 소비자들에게 독특한 가치를 제공하려고 시작한 브랜드 개발의 의미가 퇴색한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이때 누군가는 당초 브랜드 개발을 위해 설정된 독특한 가치와 경쟁 차별화 요소가 있는지, 개인의 경험과 가치관이 아닌 브랜드 핵심가치를 담고 있는 브랜드 콘셉트를 기준으로 각각의 후보 대안들이 평가되고 있는지를 묻고 또 물어야 한다. 누군가 ‘악마의 대변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수개월동안 고민하고 정성을 다해 만든 브랜드가 시장에 나가 성과도 내지 못한 채 사라지는 것보다는 상사의 눈총을 받더라도 할 말은 하는 게 덜 속상하지 않을까. 기업이 ‘나를 따르라’는 방식의 조직문화가 아니라 의도적 반대자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민주적인 조직문화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몸에 좋은 약은 언제나 입에 쓴 법이다.
임왕섭 브랜드 컨설턴트 kingp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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