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의 소굴 앞에서 냉정하게 숨고르다
적의 소굴 앞에서 냉정하게 숨고르다
  • 이남석 대표
  • 호수 118
  • 승인 2014.11.28 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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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이순신공세가 ㊶

초저녁이 될 무렵, 거제 송진포(경남 거제시 장목면 송진포리)로 돌아와 밤을 지낸 순신은 이튿날인 8일에 창원 마산포ㆍ안골포ㆍ제포ㆍ웅천 등지에 탐망선을 보내 적의 종적을 염탐했다. 이번에도 역시 ‘적군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보고만 들어왔다. 이제 어찌 할까. 순신의 고민은 ‘적의 소굴인 부산을 어떻게 칠까 하는 것’이었다.


이순신은 싸우고 난 다음날인 6월 7일 아침 웅천 증도(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바다에 이르러 진을 치고 탐망선을 보내 천성 가덕 등지의 적의 종적을 염탐하게 하였다. 탐망선 선장 진무 이전李筌과 토병 오수吳水 등은 적병의 수급 둘을 베어가지고 돌아왔다. 그들은 이렇게 보고했다. “소인들이 가덕 바다로 갈 때 어떤 배 한척에 적병 3인이 함께 타고 오다가 소인들의 배를 보자 북쪽으로 달아났습니다. 이를 추격해 3인을 잡아 목을 벴지만 그중 수급 하나를 경상우수사 원균의 군관에게 강제로 빼앗겨 수급 둘만 가지고 왔습니다.” 그들은 분통을 터뜨리며 덧붙였다. “경상우수영 놈들은 산 적병을 보면 무서워서 하나도 못 잡는 놈들이 죽은 적병의 머리 주워 모으기만 할 줄 아는가. 경칠 놈들!”

순신은 말을 삼가라고 엄명했다. 이전과 오수 등에게 술과 음식을 먹게 하고 다시 천성으로 가서 적군의 종적을 알아오라고 명했다. 일반적으로 일본 수군의 기 색깔은 서로 달랐다. 전일 옥포의 적은 적赤기, 사천의 적은 백白기, 당포의 적은 황黃기, 이번 당항포의 적은 흑黑기였다. 순신은 “그 사연을 쫓아 본다면 아마 부대를 나눠 전후좌우 또는 중앙으로 표시한 듯하다”고 말했다. 순신은 함대를 몰고 거제도 영등포 앞바다에 다다랐다. 영등포는 부산을 눈으로 볼 수 있는 거리에 있어 멀지 않았다.

▲ 율포해전에서 승리한 순신은 부산공략에 신중을 기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선봉선은 ‘적선이 보인다’는 의미가 담긴 마황기를 들었다. 실제로 대선 3척과 중선 2척이 율포에서 나와 부산을 향하여 달아난다. 조선 수군은 바람을 거슬러 노를 재촉, 적선을 따라잡았다. 창황망조한 적선들은 배에 실려 있던 군량, 병기, 화약을 물에 내버렸다. 우후 이몽구가 용기 있게 앞서 나가 대선 1척을 점령하고 적수 7급을 벴으며, 또 다른 1척도 불살랐다.

사도첨사 김완은 대선 1척을 바다에서 빼앗고 적수 20급을 벴으며, 녹도만호 정운이 대선 1척을 점령하고 적수 9급을 벴다. 광양현감 어영담과 가리포첨사 구사직은 힘을 모아 중선 1척을 불사르고, 구사직이 적수 2급을 벴다. 여도권관 김인영 역시 적수 1급을 베고, 소비포권관 이영남이 소맹선을 타고 적선중으로 돌입해 적수 2급을 베고 중선 1척을 탈취했다.

순신의 전승, 달아나는 적군

적병은 물에 빠져 죽거나 목이 베여 죽었고, 오직 중선 1척만 달아나는 데 성공했다. 1592년 6월 7일, 2차 출전의 네번째 싸움 ‘율포 해전’의 전공이었다. 제장들은 이 1척마저 끝까지 추격하려 했다. 하지만 순신은 징을 울려 군을 거뒀다. 조선 수군의 위력과 힘이 어떻다는 걸 부산의 적소굴에 전파하기 위해서였다. 순신은 함대를 좌우 양쪽으로 가른 후 가덕 천성을 거쳐 동래땅 몰운대로 나아갔다. 꼼꼼하게 수색을 했지만 적선의 그림자는 없었다. [※ 참고: 몰운대는 부산시 사하구 다대동 낙동강 하구의 최남단에 있다. 16세기 무렵엔 섬이었지만 낙동강 토사의 퇴적에 의해 다대포와 연결됐다.]

그 지방 사람들에게 적의 동태를 물었더니 다음과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이곳저곳에 터를 잡고 있던 적의 수군들이 그동안 우군 함대가 연전연패해 죽기가 바빴다는 소문을 듣고는 모두 겁을 집어먹고 부산 본영으로 달아났습니다.” 초저녁이 될 무렵, 거제 송진포(경남 거제시 장목면 송진포리)로 돌아와 밤을 지낸 순신은 이튿날인 8일에 창원 마산포ㆍ안골포ㆍ제포ㆍ웅천 등지에 탐망선을 보내 적의 종적을 염탐했다. 이번에도 역시 ‘적군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보고만 들어왔다.

이제 어찌 할까. 순신의 고민은 ‘적의 소굴인 부산을 어떻게 칠까 하는 것’이었다. 정운, 어영담 같은 기개 있는 장수들은 이 길로 부산의 적의 근거지를 쳐 무찌르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순신의 생각은 조금 달랐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 지난 5~6일 동안 거의 하루도 쉴 사이 없이 큰 싸움을 여러 곳에서 계속했다. 그래서 사졸의 예기가 피폐하고, 군량도 떨어져 가고 있다. 그렇다고 경상도 연해에서 식량의 운송 길을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또한 사졸 중에는 전사한 자도 있고 상한 자도 적지 않지만 인력을 보청하기 어렵다. 이런 형세에서 적군의 근거지인 부산의 적을 친다는 건 가당치 않다.

둘째로 양산의 적을 먼저 치지 않고선 부산의 적을 칠 수 없는 형세다. 이는 뒤의 적을 두고 나아가 앞의 적을 치는 셈이다. 그런데 양산의 적을 치려면 낙동강이 좁아 병선 하나가 겨우 통과할 정도다. 적선은 분명 험고한 자리를 잡아 웅거할 것이고, 우리가 싸우려 하면 나오지 않을 게다. 싸움도 못하고 물러나면 도리어 우리의 약점만 보일 것이니, 육군의 도움 없이는 양산의 적을 격파할 도리가 없다.

네번째 싸움에서도 ‘대승’

셋째 전라병사의 관문에 따르면 경상도 연해에서 자기네의 수군이 연전연패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군이 한성 서강西江에서 조운선漕運船(각도 각읍의 조세미를 한성으로 수운 상납하는 관선)을 빼앗아 호남을 향하여 내려오고 있다. 경기ㆍ충청 양도에도 수군절도사가 있어 조운선을 빼앗길 리는 만무하지만 의외의 변고가 있을 수도 있다. 이 또한 경계해야 마땅하다. 순신은 이런 세가지 이유에서 각기 본영에 돌아가 준비를 더 열심히 하라고 일렀다. 제장들은 순신의 주도한 방략에 꿈을 깬 듯 알아듣고 찬동하였다.

순신은 다시 말했다. “이번에 작전을 펼친 후 분멸한 적선의 수량이 72척이요, 사망한 적군의 수는 3000명은 훨씬 넘는다. 또 살아서 육지로 도망한 적군이 수만이 넘을 것인즉 우리의 힘이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니 적병은 가볍게 가덕 이서를 엿보지 못할 것이다. 이제 돌아가 전사한 군사의 장례를 치러주고, 부상한 군사를 치료하고 새로 장정을 모집할 때다. 또 군량을 준비하고 병기ㆍ화약 등을 제조해 적군의 소굴인 부산ㆍ양산을 소탕할 계획을 세워야 한다.” <다음호에 계속>
정리 | 이남석 대표 cvo@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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